직장 내 괴롭힘을 조사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런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저 사람이 절 괴롭혔어요.”
“어? 저 사람이요? 사실은 제가 피해자예요.”
그리고 그날, 한 사안을 두고 두 건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서가 올라온다.
두 사람 다 진심이다.
두 사람 다 억울해한다.
그리고 두 사람 다 자기 방식으로 피해를 호소한다.
1. 같은 사건, 다른 이야기. 누가 피해자고 누가 가해자인가?
최근 A사원은 B책임의 언행이 상습적인 모욕이고, 위계적 괴롭힘이라고 제보했다.
구체적으로는 메일 상 공개 지적, 반복적인 업무 재지시, 불필요한 야근 등.
HR은 바로 조사에 들어갔고, B책임을 면담했다.
그런데 B책임은 도리어 A사원의 태도가 문제라고 말한다.
업무 지시를 무시하거나, 회의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직원들에게 본인 및 상사 험담까지 했다는 것.
곧장 “저도 괴롭힘을 당했습니다”라는 역신고가 접수되었다.
그리고 HR은 난감해진다.
이 둘 중, 누구 말이 맞는 걸까?
둘 다 맞는 걸까?
둘 다 틀린 걸까?
2. 직장 내 괴롭힘은 ‘느낌’이지만, HR은 ‘기준’으로 본다
직장 내 괴롭힘은 감정이 섞여 있다.
피해자 입장에서는 고통스럽지만, HR 입장에서는 ‘사실’과 ‘기준’이 먼저다.
법적으로 괴롭힘은 아래 세 가지 기준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업무상 지위 또는 관계 우위를 이용했고
업무상 적정 범위(필요성)를 초과했고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었거나 업무환경을 악화시켰는가
이 사건을 들여다보면, 서로 같은 상황을 전혀 다르게 해석한다. B책임은 단순한 업무지시 및 후배 사원의 업무 능력도가 낮다고 생각하고, A사원은 그 지시 방식이 반복적으로 모욕적이었고 폭력적이었다고 느낀다.
그럼 이건 괴롭힘일까, 단순한 갈등일까, 아니면 정당한 업무 지시일까?
이 질문에 답하기란 생각보다 훨씬 어렵다.
3. 맞고소의 진짜 문제는 ‘관계’다
HR이 조사하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저 사람 성격이 원래 그래요”다.
다들 감정은 말하지만, 증거는 없다. 상호 간 대화도, 문제도 모두 ‘정황’에 기대어 있다.
맞고소는 결국 감정의 전면전이다.
조직은 그 틈에서 구조적 권력관계, 반복성, 영향 범위를 파악해야 한다. A의 말이 맞을 수도 있고, B의 말이 더 구체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누가 더 상처받았느냐가 아니라, 조직에 어떤 영향이 있었느냐다.
4. 징계는 ‘규정 위반’이 핵심이다
직장 내 괴롭힘을 판단할 땐, 당사자의 감정과 관계의 맥락이 중요하다.
A가 B의 말이나 행동을 반복적으로 모욕적이라고 느꼈다면, 그 감정이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괴롭힘 여부는 주관적인 요소가 많고, 개인의 느낌도 판단에 큰 영향을 준다.
하지만 징계는 감정으로 할 수 없다.
징계는 회사의 취업규칙이나 인사 규정 위반이 있었는가를 중심으로 본다. ‘기분 나빴다’는 이유로 징계할 수는 없다. 명확한 규정 위반, 업무 방해, 명예훼손, 폭언, 폭행 같은 행위 그 자체가 증거로 입증돼야 한다.
5. 징계 이후에도 회사생활은 계속된다
많은 사람이 징계를 ‘끝’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선, 징계 이후가 더 어렵다.
징계를 받은 직원은 위축되고, 주변은 조심스럽다.
해당 팀에서는 미묘한 분위기, 기피, 낙인 같은 2차 문제들이 생긴다.
HR 입장에서는 "징계는 했는데, 분위기는 더 안 좋아졌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가 많다.
이럴 땐 조직이 징계 그 자체보다, 그 이후를 어떻게 회복시킬지 고민해야 한다. 리더는 징계가 관계 단절이 아닌 재정비의 신호가 되도록 분위기를 조율해야 하고, HR은 감정 회복과 심리적 안전망도 챙겨야 한다.
마무리: ‘징계’는 늘 애매한 선택이다
직장 내 괴롭힘 제보가 들어오면, 그것이 진짜 괴롭힘인지, 오해인지, 아니면 감정 갈등인지 판단하는 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보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
당사자는 억울해하고, 주변은 감정적으로 흔들리며, 조직은 조용히 지나가길 바라지만, HR은 절차와 균형을 지켜야 한다.
때론 회사 규정으로는 징계하기 어려운 사건도 있고,
어떤 경우는 감정적 충돌이 조직 전반의 신뢰를 흔드는 중대한 리스크로 번지기도 한다.
결국 HR의 역할은 '판단자'가 아니라,
갈등을 조정하고, 조직이 건강하게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판을 정비하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