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이탈리아_03. 스위스 그린델발트, 피르스트, 하더클룸, 튠 호수
루체른 마지막 날.
이렇게 화창한 모습을 마지막 날에야 보여주다니!
아름답구나. 아름다워.
아쉬운 마음에 교각 위에서 루체른 호수를 보며 인사를 나눴다. 또 올일이 있을까?
아마도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아 그 아쉬움이 더 컸다.
이제 그린델발트로 떠난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대가 컸던 곳. 그린델발트.
루체른에서 인터라켄 ost 역으로 이동한 후 거기서 다시 그린델발트로 향하는 기차를 타야 한다.
루체른에서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열차는 거의 다 골든패스라인인 것 같다.(SBB 앱에서 PE라고 적혀있다.)
천장에도 창이 있기 때문에 개방감이 좋은데 사실 다른 열차랑 크게 다른 건 못 느꼈다.
그리고 루체른 -> 인터라켄의 경우 좌측에 앉아야 경치가 좋다고 하는데 나는 양쪽 다 상관없다고 느꼈다.
왜냐하면 brienz 역인가? 그즈음에서 차가 방향을 바꿔 역방향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나는 블로그 글만 보고 왼쪽에 앉아서 브리엔츠 호수 뷰를 보기를 고대하다가 갑자기 기차가 역방향으로 이동하면서 옆 자리로 옮겨 브리엔츠 호수를 감상할 수 있었다.
호수가 끝이 없다.
브리엔츠 호수와 튠 호수가 인터라켄을 중심으로 양쪽으로 자리하고 있는데 두 개의 호수 모두 규모가 굉장히 크다.
저 브리엔츠 호수 옆으로 기차가 달린 시간만 2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그동안 취리히 호수, 루체른 호수를 질릴 만큼 봤다고 생각했는데 이곳 호수는 또 뭐랄까. 좀 더 연한 빛이 감도는 색상이라 그런지 그 감상이 또 다르다.
인터라켄 ost 역(인터라켄 동역)에서 내려서 계단을 내려가면 그린델발트행 열차 플랫폼을 찾을 수 있다. 내가 갔을 때는 항상 2번 플랫폼에 그린델발트행 열차가 있었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그린델발트가 무척이나 아름답고 조용하고 좋았기 때문에 만족스러웠고 후회가 없었다.
다만 대형 마트가 하나고, 그린델발트로 향하는 열차는 30분 주기이지만 항상 매우 붐볐으며, 산악지형이기 때문에 융프라우를 제외하면 특별히 즐길 거리가 없었다.
그래서 다음에 다시 스위스를 갈 일이 있다면 융프라우 때문일 테고, 그렇다면 인터라켄에서 주로 머물고 그린델발트는 당일치기로 가서 하루 종일 놀거나 하루 정도 머무를 것 같다.
하지만 그린델발트 역에 내려서 보는 아이거 북벽 뷰는 감동 그 자체였다.
말해 뭐 해. 입만 아프지.
너무 아름다운 뷰를 보면서도 나는 숙소를 찾기 위해 풍경 촬영도 못하고 제대로 그 감동을 즐기지도 못한 채 구글 맵을 보며 헤매면서 숙소로 향했다.
https://maps.app.goo.gl/dMGAcVhqpEx4eYRe6
내가 예약한 숙소는 호텔 카바나.
전망이 정말 좋은 숙소였다.
도착한 시간이 1시 정도로 아직 일렀기 때문에(체크인 시간이 4시다) 짐만 맡기고 나와야겠다 생각했는데 프런트에 직원이 없었다.
프런트 데스크의 안내문을 보니 스키방에 짐을 셀프로 보관하면 된다고 적혀있어서 입구 쪽에 있는 스키방에 가서 짐을 내려놓고 제대로 구경을 하기 위해 길을 나섰다.
산악 지형이기 때문에 그린델발트에서는 중심가를 제외하면 어디를 가나 오르막 내리막을 걸어야 한다.
이곳이 이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coop 매장.
배가 고픈데 식당은 마땅치가 않고 (이상하게 이탈리안도 먹고 싶지 않고 퐁듀 당연히 안당기고 딱히 먹고 싶은 음식이 없었다) 일단은 coop 마트로 가서 한 끼 식사할 만한 것이 없는지 찾아보러 들어갔다.
첫눈에 닭다리살이 눈에 띄었는데, 너무 맛있어 보이나 번거로울 것 같아 패스를 하다가 결국은 먹을만한 빵이 마땅치가 않아 닭다리살과 오트밀 음료와 물을 사 와서 나왔다.
먹을 만한 곳을 찾는데 저 마트 옥상이 공원이다.
아래 영상과 같이 사방이 산 뷰로 둘러싸여 있어 멋진 조망을 구경할 수 있는 장소이고 곳곳에 벤치와 같이 쉴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여기서 마트에서 산 나름의 도시락을 펼쳐 먹는데.
띠로리!! 닭다리 무슨 일이야! 너무 맛있잖아!
너무 맛있어서 단숨에 먹어치운 닭다리. 정말 강추다. 맥주 안주로 그만이다.
이런 경치를 보며 점심을 때우고 본격적으로 동네 구경에 나섰다.
그린델발트 동네 자체는 굉장히 작기 때문에 조금 걸으면 동네 전체를 모두 구경할 수가 있다.
다른 스위스 지역에서 한국인들을 종종 볼 수 있었지만 그린델발트는 한국인 신혼부부가 정말 정말 정말 많다.
얼마나 많냐면 내가 묵은 숙소에 조식을 먹으러 내려가면 모든 테이블이 한국인 신혼부부들이었다.
그래서인지 한 가게에서는 한국어로 된 간판을 볼 수 있었다.
처음 의도는 천천히 쉬엄쉬엄 동네 구경을 하는 것이었는데 좀 걷다 보니 피르스트 곤돌라 정류장이 보였다.
조금 더 가니 하이킹 코스 같은 것이 보여서 그쪽으로 쉬엄쉬엄 올라가는데 세상에! 이런 뷰가!
얼마 올라가지도 않았는데 뒤로는 피르스트, 앞으로는 융프라우 산의 전경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조금 더 올라가니 알파카들도 보이고.
우연히 나선 산책길에서 이런 뷰를 만나다니 행운이 아닐 수가 없다!
조금 더 걷다 보니 피르스트 곤돌라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첫 번째 정류장이 나올 때까지 좀 더 걸어볼까 고민을 하다가, 나는 어차피 내일 피르스트에 올라갈 거 기 때문에 내려오면서 하이킹을 하면 되겠다.라는 나와의 약속을 하고 내려왔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어 다시 동네로 내려왔다.
coop에 들러 저녁거리를 장을 보고 숙소로 돌아왔다.
의외로 그린델발트 coop 매장은 먹을 것들을 굉장히 많이 전시해 두고 요리해먹을 재료들도 풍부했다.
내가 묵은 숙소는 취사가 불가능해 아쉬웠지만, 샬레에 묵으면서 직접 요리를 해 먹으며 이 풍경들을 본다면 예술일 것 같다.
나는 스위스/이탈리아 9개 도시에서 묵을 계획이었고 숙소 예약을 한 번에 하면서 별다른 고민 없이 가장 좋은 리뷰의 가장 첫 번째 가성비 숙소를 예약했다.
그래서 초반에 이야기 한대로 숙소 운이 지지리도 없었다. 이걸 숙소 운이라고 표현해도 되나? 내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고 평소처럼 성급하게 결정한 것이었으니까.
어쨌든 이 전망 좋은 숙소에 묵으면서 굳이 후면 뷰의 숙소를 예약했다.
나는 처음에 이게 뽑기 운이 잘 못 된 건 줄 알고 체크인을 좀 서둘러서 했으면 전망 좋은 방에 배정됐을 텐데 하며 속상해했는데 알고 보니 내가 예약한 방은 가격이 싼 후면 뷰였다. 마주 보는 건물과 바로 앞의 도로 때문에 커튼을 꼭꼭 닫고 있어야 하는.
일단은 샬레처럼 취사가 가능한 숙소에 머무는 것을 추천하는데 그게 실패했거나 취사가 굳이 필요 없다면 호텔 카바나 추천한다. 다만 돈이 좀 들더라도 꼭 전망 좋은 룸으로 예약하시길.
숙소 -2층이었나?
어쨌든 아래로 내려오면 저렇게 오픈된 공용 공간에 테이블들이 있다.
꽤 넓고 쾌적한 공간이어서 좋은 전망을 보면서 쿱에서 사 온 와인과 안주들을 먹었다.
아... 그 맛과 경치와 냄새와 온도가 생생하게 기억이 나네.
그립고도 그립다. 저 시간이.
이 맛에 여행을 하고 이 맛에 블로그를 하는 것 같다.
되돌아가고 싶은 순간 중 하나이다.
다음 날!
사실 나는 융프라우 VIP pass가 뭔지도 몰랐었다. 스위스 트래블 패스를 샀으면 됐지 융프라우 VIP pass를 또 따로 판다고!? 이 도둑놈들!
그린델발트에 도착할 때 즈음 유튜브나 블로그 검색을 해보니 많이들 융프라우 vip 패스로 자유롭게 융프라우 산악 지형을 즐기는 것 같았다.
vip pass로 여러 지역을 가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냥 피르스트만 가도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을 했다.
융프라우 가봤자 크게 실망할 것도 같았고 길게 줄 서있는 사람들을 보면 벌써 기가 질렸다.
그러다가 멘리헨이라는 산이 트래킹 하기 굉장히 좋다는 것을 보고 고민고민 하다가 그냥 vip pass를 지르기로 했다.
융프라우 vip 패스 2일권을 스위스 트래블 패스 할인받아 30만 원 정도에 구매를 했다.
그린델발트 역에서도 살 수 있었고 줄도 그다지 길지 않았기 때문에 vip 패스를 개시하는 당일에 구매를 해서 바로 피르스트로 향했다.
피르스트 곤돌라 정류장은 그린델발트 역에서 생각보다 좀 걸어가야 한다.
역시나 사람이 많지만 8시에 출발해서 저 정도인거지 내가 하산했을 때는 단체 관광객들로 많이 붐볐었다.
피르스트든 융프라우든 아침 일찍부터 움직이는 것을 추천한다.
올라가는 동안 날씨가 나쁘지 않아서 다행이다, 리기산에서의 구름 산행은 피할 수 있겠다 싶었는데 피르스트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구름이 많아졌다.
초원이 가득했던 아래와 달리 만년설에 뒤덮인 정상 부근.
정상에 도착하니 군데군데 눈밭이었다.
이제 막 녹기 시작하는지 살얼음 눈길이어서 운동화 신은 나는 조심조심 걸어야 했다.
스위스 여행에는 등산화가 필수인 것 같다.
정상뷰는 역시나 장관이다.
아래에서 봤을 때와는 다르게 360도 뷰로 만년설이 쌓인 산봉우리들을 볼 수 있다.
여기서 바흐알프제 호수까지의 트래킹 코스가 좋다고 해서 나도 트래킹을 위해 길을 나섰다.
그런데 웬걸?
눈길을 헤치며 트래킹 코스 초입으로 갔더니 길이 닫혀있었다.
이때 알았다. 한여름이 아니면 알프스 산의 트래킹 길들은 대부분 닫혀있다는 것을.
이럴 줄 알았으면 아마 여행 일정을 뒤로 미루었을 텐데.
나는 한국에서도 한양도성길 완주를 종종 할 정도로 등산과 걷기를 무척이나 좋아하기 때문에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눈물을 머금고 전망대로 발걸음을 돌렸다.
옆 길을 따라 걸으면 절벽을 따라 철길이 나있다.
이곳이 First view라는 전망대로 가는 길이다.
진짜 아찔하다.
저 끝에 있는 전망대에서 나도 사진을 찍었는데 저기 흔들린다.
나는 놀이기구도 잘 타고 고소공포증도 없는데 흔들리는 전망대는 안무서울 수가 없다.
진짜 무섭다. 스릴 만점.
피르스트는 원래 각종 액티비티로 유명한 산이다.
나도 마운틴카트 정도는 탈까 고민을 했는데, 계속 고민을 해 보았으나 혼자 타는 게 그다지 흥이 나지 않을 것 같았다.
따로 타는 장소랑 가격도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고민하다가 그냥 내려왔다.
유튜브 동영상으로 각종 액티비티를 보긴 했던지라 그것으로 대리만족 하기로 했다.
다음번에 스위스는 꼭 동반자와 올 거고 그때 못해봤던 거 다 할 거다. 스위스는 한번 더 와도 좋을 것 같다.
자 그럼 이 비싼 vip 패스로 남은 하루 무엇을 해볼까나.
융프라우는 사람이 붐빌 것이기 때문에 다음날 아침 일찍 가기로 하고 멘리헨 트래킹은 융프라우와 같은 터미널에서 출발하니까 그것도 내일.
그렇다면 오늘 남은 시간은 인터라켄에서 즐겨야겠구나 라는 결론을 내리고 인터라켄으로 향했다.
그린델발트 역에서 인터라켄으로 향하는 열차는 항상 길게 줄이 늘어서 있다.
나는 계획은 안 세우는 주제에 조급증은 있는 인간이라 15분 전에 도착해서 긴 줄을 기다렸다가 인터라켄으로 향했다. 아직까지는 익숙하지 않은 그린델발트 열차.
인터라켄에 내려서 일단은 하더 쿨룸을 먼저 가보기로 했다.
여기도 사람이 많았지만 생각보다 줄이 길지는 않았다.
줄을 서고 얼마 안 있어 푸니쿨라가 도착해 탑승을 시작했다. 오오. 바로 타나? 했는데 바로 내 앞에서 딱 끊겨버린 탑승.
30분 텀이라 꽤 오래 기다려야 해서 슬펐는데, 이게 좋은 게 푸니쿨라 맨 앞 좌석 당첨이라는 것이다.
한 20분 정도 기다리니 푸니쿨라 탑승을 시켜줬고 역시나 맨 앞에 앉아 전망을 즐길 수 있었다.
생각보다 경사가 굉장히 가파르기 때문에 아찔하다.
올라가는 내내 아름다운 경치를 구경할 수 있는데 게다가 맨 앞자리라니.
다시 한번 행운이라고 생각하며 10여분 정도의 탑승을 마치고 내렸다.
하더쿨룸 전망대로 향하는 길의 전망도 굉장히 멋있었지만 이 날 구름 때문에 제대로 구경을 하지는 못했다.
바로 하더클룸 전망대로 고고!
와.. 사람 많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저 전망대에서 튠호수와 브리엔츠 호수를 동시에 볼 수 있으니 이걸 보시는 분들은 꼭 줄 서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시길.
나는 줄 서는 것은 애초에 포기하고 여기서 또 오니기리를 먹었던 것 같다. (한 달 전 기억을 되새기며 쓰고 있다 보니... 내가 언제 오니기리를 샀지? 싶은데 아마 피르스트에서 먹으려고 쿱에서 샀었나 보다.)
다 먹고 나서 안 사실인데 외부 음식 취식 금지였다.
바로 위에 전망 좋은 놀이터가 있으니 혹시라도 외부 음식을 먹을 거면 그쪽에 가서 먹으면 될 것 같다.
그리고 큰 식당이 있기 때문에 굳이 음식을 싸가지 않아도 거기서 맥주나 음식을 시켜 먹으면 되겠다.
의도치 않게 진상을 부리고(스미마센. 외국에선 스미마센이다.) 더 높이 있는 놀이터로 고고.
이곳에 앉아서 충분히 전망을 구경했다.
벤치가 곳곳에 있어서 앉아서 사진도 찍고 사람구경, 개구경, 풍경구경을 하면서 힐링을 했다.
놀이터다 보니까 사람들 노는 소리가 조금 시끄럽긴 하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풍경이 힐링 그 자체였다.
즉흥적으로 오른 곳이었지만 아주 만족스러웠다.
일정이 넉넉하면 하더 쿨룸도 꼭 올라가 보기를 추천한다.
그다음으로는 튠 호수 유람선 타기.
아주 오늘 vip 패스 뽕을 다 뽑을 테야! 의 기세로 튠 호수 유람선을 타기 위해 부두로 향했다.
호수 유람선은 탑승 시간의 텀이 굉장히 길었다.
겨울에는 하루에 한 번만 운행한다는 것 같았고 내가 갔을 때도 운행 빈도수가 높지가 않았다. 하루 3~4번이었던 것 같은데 정확하지는 않다.
어쨌든 유람선 정류장에 도착하니 대기가 한 시간 정도 되어서 마침 가지고 다녔던 휴대용 돗자리를 펼쳤다.
네이버에서 휴대용 돗자리를 치면 초경량 돗자리가 나오는데 그거 하나씩 사시라. 정말 추천템이다. 등산이든 여행이든 잘 쓰고 있다.
피르스트 갈 때 산 음식이 오니기리뿐만은 아닌가 보다. 가방에 있던 복숭아와 초콜릿을 꺼내 먹으며 망중한을 즐겼다.
저 복숭아 정말 맛있었다. 처음에 쿱에 갔을 땐 1프랑에 3개 행사를 하길래 샀는데 먹어보고 너무 맛있어서 스위스 여행 내내 저 복숭아를 사 먹었다. 자두 아니다. 복숭아다. 천도복숭아 맛이다.
납작 복숭아도 파는데 아직 맛이 안 들었는지 니맛도 내 맛도 아니었다. 나중에 이탈리아에 가서 먹어보니 꿀 맛. 계절에 따라 다른 건지 지역에 따라 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스위스는 천도복숭아(?), 이탈리아는 납작 복숭아가 맛있다. (반대로 이탈리아는 저 천도복숭아(?)가 맛이 없었다. 아마도 제철 여부가 관건인 듯하다.)
거의 드러누워서 간식 먹으며 쉬고 있으니 시간이 술술 잘도 갔다.
하지만 마지막에 인도인 커플이 굳이 내가 누워있는 돗자리를 밟아가며 사진을 찍어대서 짜증이 났다. 그 넓디넓은 잔디밭에서. 굳이. 왜 그러는 거야 정말.
배가 들어오고 탑승을 하려고 주섬 주섬 짐을 챙겼다.
내가 드러누워 노는 동안 남들은 이미 한참 전부터 줄을 서있었으므로 당연히 나는 거의 줄의 마지막에 서서 탑승을 기다렸다.
거의 모든 자리가 사람들로 차 있었는데 뱃머리 쪽 가운데 벤치에 빈자리가 보여 운 좋게 앉을 수 있었지만, 내 뒤에 온 노부부가 내 자리에 앉기를 원해서 안쪽으로 자리를 양보하면서 사람들 틈에 끼어 탈 수밖에 없었다.
사전 정보 없이 타서 얼마나 타야 하는지도 모르고 탔는데 세상에 종점까지 거의 1시간 반을 타야 하는 거였다.
그런데 주변에 또 단체여행객들이 많다 보니 세상 도떼기시장 그런 도떼기시장이 없다.
도대체 유람선을 타면서 왜 풍경 구경은 안 하고 끝도 없이 서로를 마주 보면서 수다를 떠는 건지. 사진 찍을 때 빼고는 정말 끝도 없이 떠들어서 1시간 반 내내 머리가 아팠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인을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젤발트에 내려서 동네 구경을 하고 버스를 타고 다시 인터라켄으로 돌아오는 것 같았다.
이젤발트가 사랑의 불시착 드라마의 배경 중 한 곳이라고 한다.
와.. 이걸 모르고 도떼기시장 안에서 거의 두 시간을 버텼네.
게다가 사람들 속에 파묻혀 있어서 풍경도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고난과 역경 속에 드디어 종점 브리엔에 도착!
여기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인터라켄으로 갈지 아니면 다시 유람선을 타고 되돌아갈지 검색을 해보았는데 유람선을 타고 되돌아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 계속 타고 앉아있었다.
이번에는 나도 좋은 풍경을 보겠다며 사이드의 벤치에 앉아 대기를 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브리엔에서는 사람들이 많이 타지 않아서 다행히 천막 안쪽으로 자리를 옮겼는데 그 안 까지 비가 들이 칠 정도로 거세지기 시작하고 강풍이 불기 시작해 실내로 피신할 수밖에 없었다.
허허... 내가 관광을 하는 건지 고생을 하는 건지.
거의 왕복 3시간의 생고생을 마치고 유람선에서 내릴 수 있었다.
유람선은 탈 거면... 코스를 고민을 좀 해보고 타시길 바란다. 안 그래도 내내 타고 있으면 지겹다는 평이 많은데 나는 너무 관광객이 많아서 시끄럽고 구경도 제대로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다른 블로거들이 추천한 이젤발트에 내려서 관광하고 버스로 돌아오는 코스를 추천한다.
이젤발트가 생각보다 볼 게 없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 호수 뷰의 고즈넉한 마을 산책을 하는 것이 훨씬 권장된다.
다시 인터라켄 역으로 돌아와서 그린델발트행 열차를 타고 지친 몸을 이끌고 쿱에 가서 저녁 장을 봐왔다.
어제 먹었던 닭다리 맛이 기억나서 욕심껏 두 개를 사고 과일도 좀 사고 맥주도 세 캔을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닭다리 두 개는 너무 많았던 것일까?
하나는 정말 맛있게 먹고 샤워를 하고 나와서 남은 닭다리 하나를 먹는데 배가 부르다기 보단 질리는 느낌.
너무 질리지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곳이 없어 꾸역꾸역 내 뱃속에 버렸다.
그리고 체해서 다시는 저 닭다리를 사 먹지 않았다. ㅎㅎㅎ
그냥 하나씩만 맛보세요.
두 개는 좀 질립니다.
저 때 체하지 않았으면 아마 스위스 여행 내내 저 닭다리는 매일 먹었을 것 같다.
(아 또 먹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