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만 둘 있는 집에 첫째 아들과 결혼하여 '오'씨 집안의 첫째 며느리가 되었다.
그리고 도련님이 결혼하게 되면 이 집안에 둘째 며느리도 생기게 된다.
시집에 시누이들이 많으면 고생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난 시누이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럼 동서는 괜찮을까?
내 주변 지인들 중에 이미 동서가 있거나 본인이 동서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몇 있었는데, 애석하게도 하나같이 들리는 이야기가 껄끄러운 동서와 형님 간의 에피소드들이라
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형님의 입장에서 들은 한 에피소드는
"우리 동서는 생각이 없는 거 같아"
"왜?"
"상추를 씻으라니까, 따듯한 물로 한 장 한 장 세월아 네월아 씻고 있는 거 있지?"
"진짜?"
"누가 채소를 따듯한 물로 씻냐고! 내가 속이 터져 가지고"
"어려서 모를 수 있지"
"어리지도 않아, 나랑 1 살 차이! 일부러 일하기 싫어서 못 하는 척하는 거 같아"
그리고 또 다른 모임의 동서의 입장에서 들은 에피소드.
"우리 형님은 너무 얌체 같아"
"왜?"
"대학병원 간호사인데, 엄청 바쁜척해. 맏며느리인데도 맨날 바쁘다고 얼굴 만 겨우 비춰. 시댁 가면 맨날 나만 일 다 하잖아"
"아, 어머님이 뭐라고 안 하셔?"
"어머님은 용돈 받으시니까 좋으시겠지. 아, 얄미워 죽겠어. 그리고 말투도 얼마나 쎈지.
수 간호사라 그런가? 완전 꼰대 스타일"
달랑 이 두 에피소드만으로 이 세상의 형님과 동서 사이를 단정 지을 수는 당연히 없다.
뭐, 누구는 비슷할 수도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친 자매보다 더 좋은 사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난 어떻게 될까? 이런 무시무시 한(?) 이야기들을 듣고 한 가지 생각한 것은, 욕은 내가 안 하면 되는 것이고, 욕먹는 것은 내가 욕먹지 않게 조심하면 되는 것이니, '최소한 꼰대는 되지 말자'였다.
몇 년 후, 도련님은 어떤 어여쁜 처자와 결혼을 하여 드디어 나에게도 동서가 생겼다.
나와 남편의 나이는 아래로(?) 딱 좋은 3살 차이라 남편보다 2살 어린 동생은 본인보다 4살 어린 부인을 얻었기에 동서와 나의 나이는 무려 9살이나 차이가 났다. 어머님이랑 나랑 딱 20살 차이인 것을 보면 동서에게 난 거의 막내 이모 벌이었다. 난 최선을 다해 꼰대가 안되도록 노력하리라 다짐했다.
내 다짐이 무색하게도 동서는 나이는 어렸지만 집 안에 장녀로 자라 살림도 곧잘 해왔는지 집안일도 이미 능숙했고 전직 영어유치원 선생님이어서 아이들도 잘 다루고 성격도 애교스럽고 눈치도 빨라 웃어른(나를 비롯하여)한테도 싹싹하게 잘했다. 결혼 5~6년 차인 나보다도 여러 면으로 완벽했으므로 내가 꼰대가 될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막 결혼해서 사과를 굳이 토끼 모양으로 깎아보려 30분이 넘게 사과 한 알과 실랑이 하던 내 모습을 어이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시던 시부모님 얼굴이 새삼 아련하게 떠오른다)
내가 허점투성이 며느리였기 때문에 동서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일은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라도 나의 말 한마디가 아랫사람에게 들리기에는 강요나 부담으로 느껴질까 봐 매사 조심스러웠다.
사실 내가 이렇게까지 조심하는 이유는 사회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어느 회사 디자인팀에 있을 때의 일이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론칭하기 위해 나와 바로 아래 부하직원이 디자인 샘플을 각각 만들게 되었는데, 꼭 론칭이 되어야 하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내 거에 정신이 팔려있어서 그 직원의 디자인을 봐주기는 했지만 잘 챙기지는 못했었다. 그 프로젝트가 끝나고 한참 후에 어떤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 속의 난 부하직원의 작업에는 관심도 없고 자기 거만 챙기기 급급한 얄미운 상사가 되어 있었다.
난 그 직원의 작업물에 혹평을 한 기억도 그 직원을 나무란 기억도 없었다. 그게 이렇게 욕먹을 일이야? 그 당시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나름 그 직원과 사이가 좋았다고 생각했었는데 서운했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하는 사소한 행동이나 말들이 권력이 없는 사람들한테는 큰 의미가 되고 상처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권력자에게 인정받지 못했을 때 자신의 능력을 의심하고 자괴감에 빠진다는 것을 말이다.
난 좋은 동료는 될 수 있어도 아랫사람을 잘 다루는 따스한 리더십을 가진 상사는 될 수 없었던 것이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뒤늦게 깨달은 진리이지만 다행히 결혼 후 동서가 생기고 형님 역할에도 적용할 수가 있었다.
전달할 말이 있을 때 전화 통화보다는 가급적 메시지로 간략하게 보냈고 통보식보다는 의견을 물어보는 식으로 의사를 전달했다. 괜히 말하면 지적이 될 수 있는 말이나 질문 등은 말을 아꼈다. 그리고 잘한 부분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나름 이런저런 노력을 했는데도 동서 입장에서는 혹시 모르는 불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억울하게 생각할 수만은 없다.
왜냐하면, 나와 어머님의 관계를 생각해 보아도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 어머님은 자식들에게 부담 주지 않는 신식 시어머니가 되려고 노력하신다.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살고 있으면서도 집에도 잘 안 오시고, 전화도 안 하신다. 물론 나에게 전화하라고 강요도 안 하신다. 그리고 거의 나에게 요구하고 바라시는 게 없으시다. 정말 남들이 바라는 완벽한 꿈의 시어머니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어머니한테 서운한 것이 한 개도 없냐고 하면 또 그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런 내 마음을 아신다면, 어머님은
'내가 그렇게 널 편하게 잘 해주는 데도 불만이 있냐?' 하시겠지만, 윗사람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아랫사람만이 느끼는 미묘한 서러움이 있기 때문이다.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말이다.
누구든 윗사람이 되기도 하고 아랫사람의 위치가 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 이해 못 할 것도 없다. 조금만 서로의 위치에서 생각하고 조심하고 배려한다면 서로 욕하고 미워하지 않아도 될 텐데...
하지만 인간은 이렇게 간단하게 정의하여 해결하기에 너무나 복잡 미묘한 생물이기 때문에 트러블이 생기는 것도 어쩔 수 없긴 하다.
평등한 관계에서도 힘든 것이 인간관계인데, 평등하지 못한 관계에서 좋은 밸런스를 유지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일까.
원래, 서운함은 상대에게 보낸 내 관심과 애정이 기대한 것만큼 충족되지 못했을 때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관계일수록, 서로에 대한 적당한 관심과 적당한 정 그리고 적당한 기대를 하는 것이 제일인 듯싶다.
특히 시어머니와 며느리, 형님과 동서의 관계에서 말이다. 추가로 잘은 모르지만 시누이와의 관계도 그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