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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Mar 13. 2022

디자이너의 취미 생활

메이커스 마크(Maker's Mark)


프롤로그

요즘 위스키를 즐기는 취미가 생겼다. 자기 전에 한잔 정도 향과 맛을 즐긴다. 한국에서 술 마시는 것이 취미라고 한다면 아마 술꾼이나 술을 엄청 좋아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겠지만, 위스키의 맛과 향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 취미라고 한다면 사뭇 느낌이 다르다. 나는 술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술이 이성을 잠식한 술자리의 엔트로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위스키를 음미하는 것은 점점 좋아지고 있다. 위스키를 접하면서 위스키에 대한 역사, 종류, 이야기가 궁금해 찾아보기 시작했다. 모든 브랜드에는 이야기가 있다. 나는 그것을 서사라 칭한다. 내가 칭한 일명 위스키 서사는 각 브랜드마다 다 달랐고 또 재미있는 이야기 들이 많았다. 위스키 서사에는 마케팅과 브랜딩 그리고 디자인까지 모두 포함되어 있다. 나는 디자인을 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문득 내가 즐기는 취미들을 디자이너 관점으로 풀어보고 기록하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요즘 취미인 위스키로 그 첫 번째를 시작해보려 한다. 첫 에피소드는 미국 버번위스키의 핸드메이드 브랜드 '메이커스 마크'다. 한국에서는 입문용 버번 위스키 3대장 중 하나이며 내 책장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녀석이기도 하다.





Handmade Kentucky Straight Bourbon Whisky
- Maker's Mark -





달콤한 버번 위스키

위스키의 종류는 재료 그리고 생산지에 따라 크게 두 가지 카테고리로 나뉜다. 아일랜드에서 생산되는 아이리시 위스키도 있지만 크게 스카치와 버번으로 정리해보자. 흔히 말하는 스카치 위스키는 스코틀랜드에서 정한 엄격한 제조법을 준수해 만든 위스키다. 스카치 위스키라고 하는 것들은 모두 스코틀랜드에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내가 요즘 마시고 있는 버번 위스키는 미국 켄터키 버번에서 제조한 위스키다.

위스키의 종류

스코틀랜드에서는 주로 보리 100%로 위스키를 만드는데 이걸 몰트 위스키라고 칭한다. 그리고 미국 켄터키에서 51% 이상의 옥수수를 재료로 만든 위스키를 버번 위스키라 한다. 버번 위스키는 서부 개척 시대 옥수수가 잘 자라는 켄터키에서 남는 옥수수로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시초가 됐다. 미국으로 이주한 이주민들이 고향의 위스키 제조법으로 옥수수를 활용해 위스키를 만든 것이다. 버번은 특이하게 참나무로 만든 오크통을 불로 태워서 사용한다. 태운 오크통으로 숙성하면 바닐닌이라는 것이 나오는데 바닐라와 캐러멜의 풍미를 만들어 준다. 그 이유로 첫맛이 달다. 하지만 처음에는 단 맛을 느끼지 못했다. 쓰기만 했다. 그런데 점차 단 맛이 느껴지더니 달콤한 향까지 나기 시작했다. 위스키 애호가들은 위스키를 향으로 마신다고 하니 나처럼 비염이 있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풍부한 향을 느낄 수 없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천천히 음미하면서 즐기다 보니 비염인 나도 바닐라와 캐러멜 향을 느끼니 말이다.




메이커스 마크, 브랜드 스토리

메이커스 마크는 새무얼스 가문이 1680년 무렵 스코틀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된다. 그 후 켄터키에 정착하면서 남은 옥수수를 활용해 위스키를 만들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이웃들에게 선물용으로 만들기 시작했지만, 위스키가 맛있다고 소문이 나자 1840년 후대 자손이 증류소를 상업적으로 허가받아 운영하기 시작한다. 그러다 미국의 금주법 시행으로 1919년 문을 닫고, 1933년 금주법 폐지 후 다시 판매를 시작했지만 오랫동안 운영하지 않은 터라 위스키의 맛은 형편없이 떨어져 있었다. 증류소를 물려받은 가문의 후손 빌 새무얼스 시니어는 그런 이유로 1943년 증류소를 매각해 버린다. 하지만 위스키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던 빌은 1952년 거금을 들여 지금의 메이커스 마크 증류소의 부지를 사들인다. 메이커스 마크는 그렇게 시작됐다. 메이커스 마크의 증류소는 축구장 570개의 면적을 사용한다. 하지만 그중 증류소의 시설은 5%에 불가하다. 나머지 95%는 아무런 시설 없이 자연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다.

메이커스 마크의 증류소 부지

이유는 물 때문이다. 메이커스 마크는 부지 내에 자연 호수를 가지고 있다. 위스키를 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물인데 상업 시설로 인해 물이 오염될까 봐 95%는 건드리지 않고 보존하고 있다. 물 맛이 바뀌면 위스키 맛도 바뀌기 때문이다.

 빌 새무얼스 시니어와 그의 아내 마저리 여사.(메이커스 마크 설립자)

빌 새뮤얼스 시니어는 지금의 메이커스 마크 증류소 부지 사들이면서 170년 된 가문의 위스키 레시피를 불태웠다. 처음부터 다시 새롭고 부드러운 위스키를 만드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이제 이런 건 필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위스키를 만들 때 레시피를 매시빌(mash bill)이라고 한다. 매시빌은 곡물의 황금 배합 찾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결과물을 확인하는데만 3, 4년이 걸린다. 시간이 너무 걸리자 빌 새뮤얼스는 빵을 구워 곡물의 조합을 찾아냈다. 메이커스 마크의 매시빌은 옥수수 70%, 가을밀 16%, 맥아보리 14%다. 그리고 메이커스 마크는 위스키의 맛을 위해 소량 생산, 핸드메이드로 제작된다.

메이커스 마크

그만큼 처음에는 가격이 비쌌다. 일반 버번 위스키가 2달러 할 때 메이커스 마크는 6달러에 위스키를 판매했다. 무려 3배가량 비싼 가격으로 빌 새무얼스의 생각만큼 팔리지 않았다. 가격의 차이만큼 다른 위스키와 큰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소비자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메이커스 마크는 위스키 맛이 좋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메이커스 마크, 디자인 스토리

메이커스 마크는 차별화된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맛도 좋지만 병 디자인은 내가 본 위스키 병중 가장 특이하다. 상단 밀봉이 붉은 왁스가 흘려내리는 형상을 하고 있다.

메이커스 마크의 시그니처

이 아이디어는 빌 새무얼스 시니어의 부인인 마저리 여사의 아이디어다. 또 라벨과 병 디자인 또한 그녀의 아이디어다. 그녀는 메이커스 마크의 브랜드 디렉터인 셈이다. 그녀는 가족회의 때 병의 상단 밀봉을 일일이 하나씩 왁스로 밀봉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하지만 빌 새무얼스 시니어는 인건비와 재료비가 들기 때문에 반대했다. 위스키가 맛만 좋으면 되지 무슨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냐며 반대했다. 그러자 마저리 여사는 대학시절 누가 공부를 잘했는지 따지기 시작했다. 둘은 대학 동창이었는데 마저리 여사는 과 수석으로 졸업했지만 빌 새무얼스 시니어는 꼴찌에 가깝게 졸업했다. 그렇게 메이커스 마크의 독보적인 디자인 시그니처가 탄생했다. 그녀는 메이커스 마크라는 네이밍 또한 개발했다. 영국제 백랍 제품을 수집해 온 그녀는 장인들의 제품에는 항상 장인들의 표지(mark)가 새겨져 있는 것에 영감을 받는다. 장인들의 표지(Maker's Mark), 메이커스 마크라는 이름이 그렇게 탄생했다. 소량 핸드메이드로 제작되는 제조 철학과 딱 맞아떨어지는 브랜드 디자인이 탄생한 것이다. 한 마디로 위스키계의 장인이라는 이미지로 브랜딩을 한 것이다. 아래 이미지는 1966년에 진행한 광고다.

1966년 메이커스 마크 지면 광고

대충 해석하면 "비싼 맛이 나고 비쌉니다. 4세대 켄터키 디스틸러인 빌 새무얼스의 독창적인 고전 레시피로 만들었습니다."라는 내용이다. 한마디로 비싼 만큼 비싼 이유가 있다는 광고다. 1966년 시대 정서를 생각하면 다소 파격적인 광고다.

Maker’s Mark Whisky Bottle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라는 1964년의 광고. 1960년대의 병 디자인을 지금까지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롭다. 아마 위스키 브랜드 전체를 통틀어 초기 병 디자인을 동일하게 유지하고 있는 브랜드는 몇 안 될 거라 생각한다. 그건 처음 병 디자인의 퀄리티가 매우 높다는 반증이다. 퀄리티가 높기 때문에 그 형태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이유라 생각한다. 그리고 약 60년 동안 동일한 메이커스 마크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멋지지 않은가! 혹시라도 다 마신 병을 버리려 하는가? 그렇다면 잠시 생각을 해보길 바란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빈병은 60년 동안 유일한 하나뿐인 메이커스 마크 병이다. 그 이유는 아래 디자인 헤리티지 부분을 참고하길 바란다. 그 후 흘러내리는 붉은 밀봉을 시그니처로 현대까지 브랜딩을 전개하고 있다.

온난화로 지구가 위험하다.
진보와 보수







메이커스 마크, 디자인 헤리티지

위스키는 병 디자인에 모든 철학이 담겨 있다. 병의 밀봉 방식 그리고 문양 또 타이포그래피까지 병을 보면 그 위스키의 역사와 철학을 짐작할 수 있다. 먼저 로고를 살펴보자. 로고는 브랜드를 인식시키는 상징적인 시각요소로 브랜드가 추구하는 정신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메이커스 마크의 로고는 새무얼스 가문의 S와 증류소가 있는 스타 힐 농장을 의미하는 별 그리고 증류소를 4대째 운영하고 있는 장인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다. 그리고 앞에서 말한 붉은 왁스로 밀봉하는 방식은 일일이 사람이 손으로 작업한다. 붉은 왁스에 병 입구를 담그고 꺼내 놓는 방식인데, 그렇게 되면 왁스가 흘려내리는 모양이 모두 다르다.

모든 병의 밀봉을 수작업으로 진행한다.

그래서 세상에 똑같은 메이커스 마크는 없다는 말이 생겨났다. 핸드메이드라는 브랜드 철학과 딱 맞는 브랜드 요소로 메이커스 마크를 알리는데 독보적인 시그니처가 됐다. 그리고 병의 라벨지도 사람이 수작업으로 자르고 붙인다.

메이커스 마크의 핸드메이드

위 영상에 나오는 직원이 30년 동안 혼자서 하루에 라벨 6만 4,000장씩을 잘라냈다고 하니 메이커스 마크의 모든 직원들이 장인인 셈이다. 그럼 온라인 쪽은 어떨까? 웹 사이트를 방문해봤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센스 있는 웹브라우저의 파비콘이다.

메이커스 마크 사이트의 브라우저 파비콘과 메시지

메이커스 마크의 시그니처 붉은 밀봉 쉐입으로 아이덴티티를 강조했고, 창을 열고 시간이 흐르면 위스키 이모지와 함께 잊지 말라는 메시지로 바뀐다. 실무에서 브랜드 웹 사이트 디자인을 할 때 제일 먼저 확인하는 게 브랜드 가이드이고 또 제품의 이미지다. 실제 제품의 특징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시각 요소들을 캐치하는 것이 중요한데 메이커스 마크의 웹 사이트는 제품의 이미지를 어느 정도 잘 녹여냈다고 생각한다.  

메이커스 마크 제품과 웹 사이트

또 재미있는 건 사이트 <head> 소스 코드를 보면 메이커스 마크 위스키를 표현한 아스키 아트(Ascii Art)를 확인할 수 있다. 모르고 지나 칠 번 했지만 운 좋게 발견했다. 개발자의 센스가 돋보인다. 그리고 아스키 아트 마지막에 숨겨진 메시지. We make our bourbon carefully. Please enjoy it that way.

메이커스 마크 사이트에 숨겨진 아스키 아트(Ascii Art)






디자인 헤리티지를 현대적으로

Brand New 사이트에 메이커스 마크의 새로운 아이덴티티 작업물이 게시됐다. 새롭다고 해서 리뉴얼을 의미하는 건 아니다. 기존의 헤리티지를 현대적으로 다듬은 수준이다. New Identity for Maker’s Mark by Turner Duckworth Turner Duckworth라는 브랜드 디자인 에이전시에서 진행했는데 기존 헤르티지를 유지하면서 현대적인 해석이 돋보인다.

브랜드 요소는 확장해서 적용할 수 있는 곳에 일관되게 적용하면 그만큼 브랜드를 인식시키는데 유리하다. 아래 이미지는 Turner Duckworth에서 사이트 로딩, 옥외 광고, 잡지 등의 매체에 새롭게 적용된 브랜드 디자인 예시다.

세상에 똑같은 메이커스 마크는 없다.
아이덴티티를 활용한 사이트 로딩 화면

브랜드는 일관된 메시지 전달이 중요하다. 메시지는 말이 될 수도 있고, 문장이 될 수도 있다. 또 단어가 될 수도 있고 영상이나 이미지가 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한 목소리를 내는 지속적인 일관성이다. 메이커스 마크는 브랜드 일관성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또 현대적으로 개선하면서 브랜드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럼 메이커스 마크 한잔하면서 글을 맺는다.

버번은 언더락 잔에!




TMI. 스코틀랜드에서 온 이주민이 만든 브랜드라 병에 표기된 위스키 철자가 버번이지만 미국식(Whiskey)이 아닌 스코틀랜드식(Whisky)으로 표기되어 있다.




이미지 출처

https://www.makersmark.com

https://turnerduckworth.com/makers-mark


참고 자료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48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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