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알겠어요!"
"아~ 이제 뭔지 알 거 같아요."
"그래서 뭐 어떻게 되는 거예요?"
지력의 세 가지 종류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군주의 지력을 세 가지 종류로 설명했다. '스스로 아는 자'는 매우 훌륭하고, 설명해 주면 '알아듣는 자'는 훌륭하다 했으며, 아무리 설명해도 ‘모르는 자'는 아둔한 자라고 평했다. 그렇다. 우리 주변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지력을 가진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중에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클라이언트의 지력은 매우 중요하다. 클라이언트는 에이전시나 인하우스의 구별 없이, 결정권을 가진 모든 자들로 칭하자. 클라이언트는 프로젝트를 의뢰한 기업이 될 수 있고, 협력 부서 또는 상사, 동료가 될 수 있다. 여기서는 결정권을 가진 자로 정의한다. 결정권이 없는 자의 잘못된 의견은 무시할 수 있으나, 결정권을 가진 자의 의견은 무시할 수가 없다. 설득을 하던가, 의견을 반영하던가 두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설득이 필요 없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스스로 아는 자'들이다. '스스로 아는 자'들은 전체 맥락을 이해하고 있고, 그 맥락을 기반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스스로 알고 있다. 이때 오히려 같이 일하는 구성원들이 전체 맥락을 파악하고 있는지 테스트를 하기도 한다. 이럴 경우 구성원의 역량만 받쳐 준다면 굉장히 재미있고, 의미 있는 프로젝트로 나아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미셸 루트번스타인,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은 [생각의 탄생]에서 아인슈타인은 상대성의 이론이 직관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어느 누가 알려주지 않았지만 그는 상대성의 이론을 스스로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만약 클라이언트가 '스스로 아는 자' 타입이라면, 프로젝트는 산으로 가지 않는다. 오히려 프로젝트를 통해 구성원들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타입을 매우 흔한 타입은 아니며, 실무에서 쉽게 볼 수 없는 타입이다.
그다음으로 훌륭한 타입이 '설명해 주면 알아듣는 자'들이다. 사실 이 타입만 되더라도 매우 훌륭한 사람들이다. '설명해 주면 알아듣는 자'들은 설득이 통하는 사람들이다. 보통 본인의 전문 영역 외에는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원리가 어떻게 작동하고 작용하는지 알고 있는 자들이기 때문에 설명을 통해 얼마든지 그것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중 대표적인 사람이 스티브 잡스다. 잡스는 전문적인 분야의 지식은 없었지만, 누구든 그것에 대해 설명해주면 그 원리를 간파했던 사람이다. 월터 아이작슨은 [스티브 잡스]에서 잡스에게 영향을 끼친 인물들을 설명했다. 잡스는 래리 엘리슨을 통해 경영을 배웠고, 마이크 마쿨라를 통해 마케팅을 배웠다. 또 워즈니악을 통해 엔지니어링을 배웠고, 레지스 매케나를 통해 브랜드 컨설팅을 배웠다. 그리고 조니 아이브를 통해 디자인의 본질에 대해 배웠다. 이런 사람들과는 의식적인 대화가 가능하고 의견을 서로 받아들이고 절충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프로젝트가 산으로 갈 가능성이 매우 낮다. 방향에 대한 의견이 다를 수는 있어도, 그렇다고 의미 없는 진행을 해야 하는 일이 매우 낮다. 그 이유는 설득이 가능하고 의견을 절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아는 자'가 아니라고 해서 지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아니다. 이 타입의 사람들은 같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에 매우 훌륭한 사람들이다.
우리가 일하는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이 타입에 해당된다. 아무리 설명해도 모른다. 이럴 경우 답이 없다. 아무리 설명해줘도 알아듣지 못한다.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타입들은 스스로 판단하기 시작하는 것이 큰 위험이 된다. 의사가 처방을 내려도 '내 몸은 내가 잘 알기 때문에 그런 처방은 필요 없다'라고 맞선다.
존 캐리루는 [배드 블러드]에서 테라노스의 CEO 엘리자베스 홈즈에 대해 폭로한다. 그녀는 기술에 대한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고, 또 그 기술을 개발하는 기술자들의 조언을 듣지 않는다. 스스로 알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설명해줘도 알아듣지 못했다. 이런 타입은 대부분 일이 크게 터져야 심각성을 알게 된다. 이 타입들은 프로젝트가 산으로, 아니 뒤집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기에는 위험이 굉장히 큰 타입들이다. 대부분 이런 경우에는 클라이언트의 판단이나 생각이 잘못됐다는 걸 알면서도 그것을 강하게 주장하지 못한다. 잘못된 걸 알면서도 소모적인 진행을 계속한다. 결국 일이 뒤집어져 클라이언트가 바뀌든 프로젝트가 무산되든 최악의 결과를 맞이한다.
지력이라는 것이 단지 어느 한 분야에만 해당하는 것이 겠는가. 그렇다고 어느 한 분야의 전문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디자인의 전문 지식은 디자이너에게 빌리면 된다. 클라이언트가 디자인 지식이 필요 없는 이유는 바로 디자이너가 있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는 디자이너의 디자인 지식을 빌려, 그 지식을 바탕으로 전체 방향을 판단하는 판단력이 더 중요하다. 영화 스티브 잡스(2015)에서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에게 '너는 엔지니어가 아니다'라고 비난하는 상황에서 스티브 잡스는 '너는 악기를 훌륭하게 연주하지만, 나는 그 연주자들이 모인 오케스트라를 훌륭하게 다루는 지휘자'라고 받아친다. 영화의 설정인지 정말 그런 대화가 오간지는 모르겠지만, 클라이언트라면 연주자의 지식이 아닌 지휘자로서 지력을 갖춰야 한다. 클라이언트가 각 분야의 지식을 빠삭하게 습득하고 있을 필요는 없다. 그것은 각 분야의 전문가들의 몫이다. 프로젝트에서 클라이언트의 몫은 전문가들의 지식을 빌려 지력을 통해 지휘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