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방식
'어떤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고 궁리하는 방법이나 태도.'
요즘 UX에 대한 회의론의 글이 많이 보인다. 과연 UX는 허상인 것인가? 그럼 먼저 UX의 정의를 내려보자. UX는 무엇인가? 하도 말하고 들어서 지겹지만, 논해 보도록 하자. 누구나 알고 있듯이 User eXperience의 약자로 사용자 경험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 의미는 해석하는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그럼 UX의 뿌리부터 차근차근 알아보자. UX는 인지과학으로써 사람이 주변 환경에서 정보를 수집해 처리하는 과정을 분석하는 학문이다. 그렇다면 인지과학은 무엇일까? 컴퓨터 공학자들은 컴퓨터가 정보를 수집하고 지식을 처리하는 과정과 인간이 정보를 수집하고 지식을 처리하는 과정의 연결점을 찾으면 인공지능에 대한 미래도 보일 것이라는 기대로 출발했다. 그렇게 컴퓨터 과학자들은 인간을 연구하던 심리학자와 인류학자 그리고 생물학자, 철학자, 수학자 등과 만나 만들게 된 복합 학문이다. 이들 학자들은 메이시 백화점에서 후원받아 1941년 ‘메이시 콘퍼런스’를 만들었다. 이곳에서 사람의 마음을 연구하는 인지과학이 태어났다. 그 후 1970년대 PC 사용자가 늘어나면서 다시 한번 주목받게 된다. PC 시장은 급속도로 성장해 새로운 시장을 형성했다. 그때 PC를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으로 구분되었는데, PC를 만드는 사람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사용법을 알려줄 의무가 생겼다. 그 무렵 컴퓨터공학과 인지심리학을 공부한 스튜어드 카드, 인공지능의 대가 엘렌 뉴엘, 컴퓨터 공학자 토마스 모렌이 1983년 ‘사람과 컴퓨터 상호작용의 심리학(The Psychology of Human-Computer Interaction)’이라는 책을 펴냈다. HCI라는 분야는 이 책에서 태어났다. HCI는 쉽게 말해 사람이 컴퓨터를 어떻게 이해하고 활용하는지를 알아보는 학문이다. 그 후 UX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인지과학자 도널드 노먼이다. 도널드 노먼은 애플에서 부사장으로 재직하던 시절에 명함에 ‘사용자 경험 설계자(User Experience Architect)’라는 직함을 새기고 다녔다. 이것이 UX라는 용어가 알려진 계기다. UX는 사람의 인지과정을 인지과학이라는 학문으로 이해하고 상품이나 서비스를 설계하는 일을 통칭한다. 1941년의 인지과학, 1980년대의 HCI 그리고 1990년대의 UX, 그 뿌리는 인지과학이었으나 지금 2000년대에는 UX를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나는 UX로 가장 큰 성장을 이룬 기업으로 애플을 꼽는다. 잡스는 인문학을 중시했다. 그것이 UX와 무슨 상관인가 싶겠지만, UX는 사람에 대한 이해, 인문학이 핵심이고, 그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으로 도널드 노먼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UX라는 말을 처음 쓴 사람은 인지과학자 도널드 노먼이지만, 도널드 노먼이 UX를 외치기 전에 이미 잡스는 그것을 하고 있었고 그것에 위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었다. 인문학은 사람에 대한 이해이지만, 그것을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입했을 때 두 가지의 사람으로 분류된다. 그것을 만드는 사람과,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 UX 이전에 모든 기업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의 관점에서 사유했다. 공급과잉 시대 이전에는 그런 관점에 문제가 없었다.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공급의 질 보다는 대량 생산에 중점을 두었다. 그것이 바로 생산자 관점이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빠르게 만들 수 있을까의 고민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공급과잉 시대에 도래하게 되면서 사용자들은 제품이나 서비스를 골라서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더 이상 기업들은 공급자 관점으로는 사용자를 잡을 수가 없게 되었다. 그 무렵 선도적 기업들은 기존 공급자 방식에서 사용자 관점으로 사고방식이 바뀌게 된다. 그렇게 UX는 제품이나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주목받게 된다. 즉, 모든 제품이나 서비스에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이지 생산하는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바로 UX에서 말하는 사람에 대한 이해, 사용자 경험을 강조한 인문학이다.
애플이 디자인 회사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리고 디자인 경영으로 성공한 기업의 사례로 떠들고 다니는 사람들은 대부분 UX가 시각적 디자인이라고 규정하는 사람들과 비슷하다. UX의 범위에 디자인이 속해있는 것이지 UX가 디자인이라는 개념은 틀렸다. 그것은 UX의 광범위함을 디자인의 영역으로 평가절하하는 것이다. 잡스는 디자이너도 아니고 더군다나 디자인을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다. 하지만 잡스는 사고방식이 달랐다. 그는 모든 것은 연결되어야 하고, 또 연결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모든 것을 연결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설계이다. 그래서 잡스는 제품을 디자인한 것이 아닌, 비즈니스를 디자인했다. 아이팟 출시 당시 아이팟의 디자인에 대해 사람들은 극찬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아이팟의 디자인이 좋아서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도 좋았기 때문이지, 디자인만 좋았기 때문은 아니다. 사용자를 고려한 휠 방식의 UI가 독보적 성공요인은 아닐 것이다. 사실 잡스에게 아이팟이라는 제품은 디지털 음원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도구일 뿐이었다. 잡스는 냅스터의 부상으로 디지털 음원시장의 미래를 내다봤다. 그는 누구보다 앞서 디지털 음원시장을 장악하고 싶었고, 디지털 음원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도구로 아이팟을 제작했다. 그 보다 앞서 국내에서 세계 최초 MP3 플레이어가 먼저 탄생됐었다. 그렇다면 왜 국내의 업체는 디지털 음원시장을 장악하지 못했을까? 국내 MP3플레이어는 도구로서 그 기능이 한정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잡스는 도구보다 그 도구를 활용할 마켓을 키우는 것에 목적을 뒀다. 그렇게 그는 아이튠즈라는 디지털 음원 마켓을 설계했다. MP3 플레이어가 있다 한들 무엇하랴. 그것을 사용해서 들을 합법적인 디지털 음원 파일이 없는데. 그 당시 모든 MP3 파일은 불법 파일이었다. 잡스는 아이팟이라는 도구로 아이튠즈라는 합법적 마켓을 키워 디지털 음원시장을 장악하기 위한 설계를 한 것이지, 아이팟이라는 제품만을 디자인한 것이 아니다. 그는 제품과 콘텐츠를 연결하는 것에 의미를 두었지, 제품만 디자인하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 그 이유는 그것이 그의 사용자 관점의 사고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사용자 경험을 위해서는 제품이 아닌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 제품만 멋들어지면 무엇하는가? 그것으로 소비할 콘텐츠가 없는 것을. 잡스는 그렇게 계속 제품과 콘텐츠를 연결시켰고, 다시 콘텐츠와 콘텐츠를 연결시켰다. 그렇게 사용자가 계속 콘텐츠를 생산하고 소비할 수 있게 생태계를 만들었다. 나는 그것이 UX의 핵심이라 생각한다.
사고방식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만들어 지기는 힘들다.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사고방식도 바뀌게 된다. 잡스 또한 넥스트에서 실패를 겪고, 픽사로 성공을 거두면서 사고방식의 전환이 일어났다. 픽사의 성공을 보면서 그는 말했다고 한다. "그래, 이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알겠어." 하지만 우리들은 그런 사고방식을 깨닫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 아니 깨닫지도 못할 경우가 태반이다. 그래서 사고방식의 전환을 위한 방법론과 도구들을 활용한다. 그런데 그런 UX 방법론들이 사고방식을 다시 획일화시키는 모순에 헛웃음이 난다. UX는 기존 생산자의 사고방식에서 사용자의 사고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인데, UX 방법론을 너무 맹신한 나머지 모두가 똑같은 방법론을 고집하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한다. 그렇게 UX 방법론이 사고방식의 기준이 되어 버렸다. 도구를 활용해 사고방식을 바꾸기를 바랐는데, 도구 자체가 사고방식이 되어버린 격이다. UX에 대한 고려와 그에 대한 분석과 스터디는 매우 좋게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에 사고방식의 기준이 되어 버리지는 않았으면 한다. 100년 이상의 글로벌 브랜드의 제품과 서비스들은 UX의 개념 이전부터 지금까지 사랑받고 있는 브랜드들이다. UX도 중요 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건 생각의 사고방식이다.
참고자료
디자인? UX는 과학입니다. : http://www.bloter.net/archives/199563
스티브 잡스 : 월터 아이작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