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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Mar 04. 2020

그날 기획자는 기획을 하지 않았다.

"이거 어떻게 디자인하라는 건가요?"

"그건 디자이너가 해야 할 부분인가요?"

"정보도 없는데 뭘 디자인하라는 건가요?"





기획 없는 기획서





그날 기획자는 기획을 하지 않았다.

예전 글로벌 푸드 브랜드의 동남아 진출을 위한 현지 웹사이트 디자인을 진행했을 때 일이다. TF가 구성되고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그리 규모가 큰 사이트는 아니라서 디자인은 나 혼자 진행하게 됐다. 기획자는 사수와 부사수 2명이 참여했다. 기획자가 기획을 하기 전에 디자이너는 일단 그 브랜드의 톤 앤 매너를 정리한다. 기획 이전에 디자인을 진행할 수 없기 때문에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브랜드의 톤 앤 매너를 서치하고 정리한다. 기획이 다 정리되었을 때 바로 디자인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 시간을 절약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브랜드 톤 앤 매너를 정리하고 기획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획자는 기획서를 리뷰하기 위해 미팅을 요청했고, 기획서 리뷰 미팅을 진행했다. 그런데 이건 기획이 없는 기획서였다. 일단 기획자 사수는 조직에서 디자이너들이 경계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었다. 그 경계의 이유는 디자인을 하기 위해 필요한 기획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더 중요한 건 당사자는 그걸 모른다는 것이다. 기획서를 리뷰하는데 내가 디자인을 할 수 있는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나는 물었다. "메인 전략은 무엇인가요?" 기획자가 말하길 "주력 상품이 강조되야죠! 신상품!" 나는 다시 질문을 이어갔다. "주력 상품 정보가 없는데요?" "그리고 나머지 영역들에는 어떤 정보가 들어가나요?" 이 질문에 기획자는 상품 정보는 다시 정리해 준다며 말을 끊었다. 그러더니 정보는 나중에 다시 정리해 줄 테니, 일단 디자이너가 제안을 줘야 되는 거 아니냐고 한다. 순간 당황했지만,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기획자에게 되물었다. "그럼 제가 마음대로 메인 상품이나 정보를 정하면 되나요?" 기획자가 답변했다. "아니, 그건 안되죠?"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그걸 정리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기획서로는 디자인하기 어려워요."




와이어 프레임과 스토리보드

사실 기획자가 나에게 리뷰해 준건, 스토리 보드가 아닌 와이어 프레임에 가까웠다. 기획서에는 빈 박스에 콘텐츠의 영역들만 나뉘어 있었다. 나는 정보를 디자인해야 하는데, 디자인할 상세정보가 없는 기획서를 보고 당황했다. 그 리뷰 자리에는 나와 기획 사수와 부사수 3명이 진행한 자리였는데, 과연 그 기획 사수를 보면서 부사수는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디자이너가 까탈을 부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라도 하면 어쩌나, 기획 부사수는 기획 사수가 옳다고 믿는 것일까? 아니면 그냥 사수니까 일단 따르는 것일까? 하지만 그 부사수 또한 디자이너들의 경계 대상이었다. 청출어람이었다. 역시 어떤 것이든 처음 배울 때 누구에게 배우는가가 그 사람의 이후 커리어를 좌우한다.




기획자는 착각하고 있었다.

그 기획자의 스타일은 항상 와이어 프레임으로 시안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와이어 프레임은 화면 전체의 구조 설계일 뿐이고 와이어프레임 작업이 끝나면 상세 기획을 해야 한다. 각 영역에 대한 상세 문구, 이미지, UI 컴포넌트/인터랙션, 시나리오, 사용자 동선 등 세부적으로 기획을 해야 한다. 그중에서 중요한 건 콘텐츠 상세 기획이다. 그래야 상세 내용을 보고 디자이너가 콘텐츠를 시각화할 수 있다. 콘텐츠 기획 그게 바로 기획자가 해야 할 일이다. 근데 놀라운 건 와이어 프레임이 기획의 끝이라고 생각하는 기획자가 종종 있다. 나는 기획하는 기획자와 일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콘텐츠에 대한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나는 기획하는 기획자와 왜 대화가 가능할까? 기획하는 기획자들은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콘텐츠는 제품이나 서비스와 연관되는 텍스트와 이미지로 구성되는데, 그 핵심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용자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그 기준으로 기획자와 나는 서로 대화가 되는 것이다. 즉 콘텐츠의 의도와 목표에 대해 서로 아이데이션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부 기획자들은 콘텐츠의 이해도가 낮다. 누가 이걸 왜 무슨 이유와 목적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잘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을 나는 기획하는 기획자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하나 더, 다른 곳은 어떻게 잘하고 있는지도 빠삭하게 꿰고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획하는 기획자다. 기획하는 기획자는 위의 내용을 토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전략적으로 접근한다.




그날 기획자는 왜 기획을 하지 않았을까?

앞에서 말했다시피 기획을 와이어프레임으로 그치는 기획자는 콘텐츠의 이해도가 낮다. 그중 제일 문제인 것은 누구를 위해, 왜, 무슨 이유와 목적으로 콘텐츠를 기획하는지 이해지 못하는 이유가 가장 크다. 그럴 때는 요건 정의를 해보자. 이 프로젝트는 어떤 의도와 목적으로 왜 진행하는가? 이 프로젝트로 어떤 결과를 원하는가? 그럼 이 프로젝트와 유사한 다른 서비스와 제품은 어떻게 잘하고 있는가? 그들이 잘하는 것을 우리 것에 대입하면 어울릴 것인가? 어울리지 않을 것인가? 어울리지 않다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만의 잘함을 만들 것인가? 그리고 제일 중요한 것은 기획자인 내가 무엇을 기획하였는가? 그 기획은 전략적인가? 아닌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디자이너를 포함한 TF 구성원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기획자는 어떤 대상에 대해 그 대상의 변화를 가져올 목적을 확인하고, 그 목적을 성취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행동을 설계하는 사람이다. 또한 기획은 프로젝트에서 디자인보다 우선순위가 더 높다. 언제나 기획, 설계가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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