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디자인 트렌드야."
"트렌드에 맞게 디자인해야 하지 않아?"
"글쎄, 그건 단순한 유행 아닐까?"
유행이란 시작은 화려하지만 곧 스러져버리는 것
트렌드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도록’ 이끄는 원동력
-페이스 팝콘-
연초가 되면 디자인 시장에 항상 떠도는 글이 '올해의 디자인 트렌드'글이다. 글의 내용을 보면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과연 디자인 트렌드들은 어떤 기준과 의미로 선정되었을까? 매년 그런 글들을 찾아보지만 크게 트렌드라고 할 만한 내용들은 없다. 단순한 유행을 모아놓은 패션 잡지와 비슷한 내용들이다. 그렇다면 유행과 트렌드는 뭐가 다를까? 일단 단어를 영어로 통일해보자. 유행을 Fashion으로 바꿔보자. 미국의 트렌드 전문가 페이스 팝콘은 트렌드와 일시적인 유행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일시적 유행이란 시작은 화려하지만 곧 스러져버리는 것으로서, 순식간에 돈을 벌고 도망가기 위한 민첩한 속임수와 같은 것이다. 유행이란 제품 자체에 적용되는 말이다...(중략) 트렌드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사도록’ 이끄는 원동력에 관한 것이다. 따라서 트렌드란 크고 광범위하다...(중략) 트렌드는 바위처럼 꿋꿋하다. 그리고 평균 10년 이상 지속된다.” 페이스 팝콘의 주장에 의하면 Fashion은 일시적인 것, 그리고 Trend는 지속적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Trend가 영원히 지속적이지는 않다. Trend도 바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주기가 Fashion 만큼 수명이 짧거나 일시적이지는 않다. Fashion은 일시적인 유행이지만, Trend는 지속적인 흐름 또는 흐름의 전환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매년 보는 디자인 Trend에 관한 글들은 과연 Trend에 대한 이야기일까? 페이스 팝콘의 기준에 생각해보면 거의 대부분 Fashion에 대한 글들을 Trend로 오인해 사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떤 게 Fashion이고 Trend일까?
2007년 애플이 아이폰을 발표하고 스마트폰 트렌드의 전환이 일어났다. 기존의 자판식 스마트폰을 고집하는 모토로라, 노키아는 종말을 맞이했고 종말을 목격한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하지만 충격도 잠시였다. 종말의 충격이 얼마 되지 않아 터치형의 스마트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터치형 스마트폰은 트렌드가 되었다.
트렌드를 선도하는 사람을 트렌드 리더라고 한다. 그렇게 애플은 터치형 스마트폰의 트렌드 리더 자리에 올랐다. 또 아이폰의 등장은 디지털 서비스 플랫폼을 PC에서 모바일로 바꿔 놓았다. 2007년 첫 제품을 발표한 아이폰이 13년 동안 지속되는 것을 보면 아이폰은 단순한 유행이 아닌 트렌드다. (더 명확하게 말하자면 스마트폰이 트렌드이지만.) 하지만 아이폰의 트렌드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흐름은 언제나 바뀌기 때문이다.
테슬라 이전에 어떤 자동차 회사도 전기차를 공격적으로 개발하고 판매를 생각하지 않았다. 전기차의 디자인과 기술은 정지한 상태였다. 내연기관의 차가 잘 팔리는데 전기차를 개발하고 생산 플랫폼을 바꿀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테슬라가 출사표를 던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테슬라가 양산용 전기차를 개발한다고 하자 전문가들은 양산용 전기차를 개발한다는 것은 무모하다고 논평했고, 테슬라는 조롱거리로 전락했다. 그렇게 수년에 걸쳐 테슬라가 거짓말 같이 전기차를 양산하기 시작하자 세계 일류 자동차 회사들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왜 그럴까? 전기차 시장을 테슬라에 뺏길 상황까지 왔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전기차 트렌드 리더 자리를 테슬라에게 뺏긴 상황이다.
그렇게 축척된 자동차 기술과 거대한 자본을 가지고도 듣보잡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에게 트렌드 리더의 자리를 뺏긴 자동차 회사들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앞에 말한 아이폰의 사례를 보면 트렌드에 역행하는 회사들은 모두 종말을 맞이했다. 이는 자동차 회사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말이다. 현재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 회사들이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반면 내연기관의 차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전기차는 국가 정책과도 맞아떨어지는 트렌드다. 전 세계 여러 국가들이 이미 향후 내연기관차의 출입을 제한한다고 선포했다. 전기차는 인류의 환경문제와 연결된 시장이다. 그린 정책은 전 세계적인 트렌드다.
그럼 이제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자. 연초에 항상 접하는 디자인 트렌드에 꼭 등장하는 것이 플랫 디자인이었다. 플랫 디자인이 이슈가 된 것은 애플과 구글의 역할이 지배적이었을 것이다. 애플과 구글은 본인들의 플랫폼을 관리해야 했고, 그렇기 위해서는 관리 가이드가 필요했다. 애플은 플랫 디자인, 구글은 머터리얼 디자인이 본인들의 플랫폼을 관리하는 가이드다. 그런 가이드가 트렌드로 항상 언급되기 시작했다. 그렇게 플랫 디자인은 마치 모바일 디자인에서 지켜야 하는 필수적인 트렌드로 인식됐다. 모바일의 영향은 점차 디지털 전반의 트렌드로 인식되어 버렸다. 이제는 웹 디자인에서도 모바일의 햄버거 메뉴를 흔히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플랫 디자인이 정말 트렌드일까? 매년 발표되는 디자인 트렌드들은 정말 트렌드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플랫 디자인과 머터리얼 디자인은 플랫폼의 가이드일 뿐이다. 유행이나 가이드를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 잘 못된 것은 아니다. 반대로 가이드나 유행을 따르지 않는다고 크게 잘못되는 일도 없다. 다만, 가이드나 유행이 트렌드 일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트렌드는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지만 유행은 그렇지 않다. 유행이나 가이드를 지키지 않는다고 해서 종말을 맞이하지 않는다. 대부분 유행을 트렌드로 오인한 서비스들의 디자인은 대동소이하다. 그것은 아이덴티티의 부재다.
마치 그것마저 트렌드라며 전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반영하지 않는다. 어쩌면 반영할 아이덴티티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브랜드의 개발이 시급한 문제 아니겠는가? 배달의 민족이라는 브랜드를 접했을 때 많은 당황을 했다. 너무 대충 하는 브랜드 같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배달의 민족 아이덴티티는 내 취향은 아니다.) 하지만 수년이 지나자 브랜드가 빛을 내는 광경을 목격했다. 일관되고 명확한 아이덴티티가 있었기 때문이다. 모바일 서비스가 아이덴티티를 구축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 이유는 브랜드 노출 채널이 제한적이며 소규모 자본의 스타트업들은 브랜드에 투자할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표가 디자이너 출신이라서일까? 배달의 민족은 모바일 채널을 벗어나 오프라인에서 브랜딩을 지속적이며 일관되게 전개했고 그 아이덴티티는 다시 모바일 서비스에 반영되기 시작했다.
배달의 민족은 다른 모바일 서비스들과는 다르게 유행을 쫓지 않고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했다. 아마 다른 모바일 서비스의 디자인 팀이라면 저런 아이콘을 컨펌해주지 않았을 것이다. 플랫 디자인이나 머터리얼 디자인 가이드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유행하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배달의 민족이 저런 아이콘을 서비스에 반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 스타일 자체가 배달의 민족 아이덴티티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우리 아이덴티티인데 유행과 가이드에 맞지 않으면 어때?', '이게 우린데 우린 그냥 이렇게 하자!'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다. 이런 식의 전개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아이덴티티가 명확해야 한다. 그래야 유행을 쫓지 않고 아이덴티티 지속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유행은 유행일 뿐이고 가이드도 가이드일 뿐이다. 유행과 가이드는 브랜드 아이덴티티가 될 수 없다. 너무 그것에 얽매혀 아이덴티티를 놓치지 않길 바라본다.
참고자료
[네이버 지식백과] 트렌드 [trend]
[클릭! 미래 속으로] 페이스 팝콘, 리스 마리골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