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aun SHK Feb 21. 2019

<드라이브>- 범죄자의 도시이용

#1


범죄영화는 꾸준한 인기를 얻는 영화 장르 중 하나입니다. 보통의 사람들은 접해보지 못하는 어둠의 세계를 그린다는 점에서 흥미롭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범죄자들의 예측할 수 없는 언행들이 긴장감을 유발시킵니다.


범죄영화에서 인기있는 서사 구조 중 하나는 주인공들이 사전 모의에 따라 은밀하게 범죄를 수행하는 이야기입니다. 범죄자들이 치밀한 계획에 따라 재물을 강탈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를 하이스트 무비(heist movie)라고 합니다. 우리 나라 영화 <도둑들>이나, 헐리웃 영화 <오션스>시리즈, <이탈리안잡>이 이런 유형에 속하는 영화들입니다.

주인공들의 영리한 움직임을 따라 가다 보면 어느샌가 누군가를 속이고 재물을 탈취하는 과정을 즐겁게 감상하고 있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합법과 불법의 문제 이전에, 예상되는 장애물을 뛰어넘으며 치밀한 계획을 과감하고 지능적으로 실행에 옮기는 행위 자체가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하이스트 무비는 은행털이를 소재로 한 경우가 많습니다. 통상 2~3인의 복면범죄자들이 은행을 습격하고, 몇 분후 돈가방을 양손에 든 범인들이 미리 대기해 둔 차량에 몸을 급히 던져 넣습니다. 그러면 초조하게 동료를 기다리던 드라이버는 타이어가 터져 나가도록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범죄현장을 급히 벗어납니다.


드라이버는 범죄 영화에서의 비중이 상당히 낮았습니다. 흥미로운 은행 습격 과정을 담아 내다보면 홀로 조용히 대기하고 있는 드라이버의 분량은 작아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공간적으로 봤을 때 다이나믹한 은행털이 현장이 동료를 기다리는 드라이버의 차 속 공간보다 중요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영화 드라이브는 다소 특이합니다. 주로 단역에 머물렀던 범죄 드라이버를 영화의 주인공으로 내세웠기 때문입니다. (2017년에 범죄 드라이버를 주인공으로 한 <베이비 드라이버> 덕분에 이제는 영화 속에서도 상당히 매력적인 역할로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드라이브>는 2011년 개봉영화)

이 영화에서 카메라는 재물탈취가 이뤄지는 다이나믹한 현장이 아니라 동료를 기다리는 정적인 차 속 공간을 비춰줍니다. 오프닝 장면에서 주인공은 강도행각 중인 일행을 기다리며 초조하게 시계바늘을 바라봅니다. 출발해야 할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경보음이 울린 후 정해진 시간에서 단 몇 초만 지나더라도 무사탈출 확률은 급격히 낮아집니다. 다행히 일행들이 도착하고 도주가 시작됩니다. 운전대를 잡은 순간 드라이버의 기량이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액셀러레이터를 밟고 급커브를 하면서 경찰차량들을 따돌리는가 하면, 급정거를 하고 감속을 하면서 포위망을 뚫고 나가기도 합니다. 단순히 속도만 내면서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서행과 정지를 적절히 곁들이며 범죄차량을 도로 위의 평범한 차량으로 위장시킵니다.


차량 추적을 위한 경찰항공팀이 뜨면서 드라이버의 기량도 절정으로 치닫습니다. 헬기에 발각되는 순간엔 거침없이 질주하다가도, 헬기의 시야가 미치지 않는 사각지역을 활용해 차량의 모습을 감추고 마침내 헬기의 추적을 따돌리는 데 성공합니다.

영화 속 주인공은 도로의 상태, 다른 도로와의 연결, 항공팀의 시야, 인근 차량통행량, 경찰차의 동선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멋들어진 도주를 선보입니다.


범죄행위에 어울리는 표현은 아니지만 드라이버의 실력은 종합예술처럼 느껴집니다. 마치 도로설계와 도로교통을 전공한 전문가처럼 도주로의 상황 및 최적경로를 꿰뚫고 있습니다. 경찰이 접근해오면 어떤 식으로 포위망을 빠져 나가야 할지 한발 앞서 예측하고,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포위 상황에 맞춰 순간순간 지능적인 선택들을 합니다.


주인공이 마침내 경찰차와 항공팀을 따돌리고 차량을 스포츠 스타디움 주차장으로 들어서게 만들었을 때 이 긴장감 넘치는 추적게임은 끝납니다. 경기가 끝나고 쏟아져 나오는 인파와 차량 속에서 범행에 쓰인 차량과 범인을 찾아내기란 불가능합니다.

도주가 성공했음을 보여주면서 화면이 전환됩니다. 밤의 도시 모습을 비추며 영화제목과 함께 흘러나오는 음악 <Night Call> 은 관람객의 카타르시스도 함께 끌어올려 줍니다.


#2


은행의 CCTV 위치, 경비의 숫자, 비상구의 위치와 동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은행에 매일 출퇴근하는 직원보다는 은행털이를 준비 중인 강도일 것입니다.


그리고 시내 도로환경과 신호체계, 인접도시로의 접근성, 특정요일과 시간대의 통행량을 가장 잘 알고있는 사람은 시내로 매일 출퇴근하는 사람이 아니라 해당 도로를 도주로로 이용하려는 사람일 것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도주로가 어디인지, 범행시간의 평소 교통량은 어떠한지, 혹시 공사구간이나 제약사항이 있지는 않은지, 플랜A가 막혔을 경우 플랜B로 어떤 경로를 택할지, 한 도시의 도로상황과 교통체계에 대해 도주계획을 세우는 범죄자들만큼 잘 분석하는 사람들도 드물 것입니다. (물론 무계획적이고 충동적인 범죄자들은 제외하고 치밀하고 계획적인 범행을 공모하는 범죄자들 이야기입니다.)


범죄자들이 도시를 이용하는 방법은 원래 도시를 계획할 때 의도했던 방식이 아닙니다. 성공적인 범죄를 위한 도시분석은 비정상적인 도시 이용방식이며 누구도 그런 의도로 도시구조가 분석되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을 통해서 도시 시스템이 보다 체계적으로 개선될 수 있습니다.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 오류를 통해서 프로그래밍 기술이 더욱 정교하게 발전해나가듯이 말입니다.


영화 드라이브의 오프닝 장면에서는 탁월한 운전실력과 센스로 경찰의 추적을 절묘하게 따돌리는 장면이 그려집니다. 아이러니하지만 도주하는 범죄자를 놓쳤기 때문에 경찰들은 검거실패 후 효과적인 포위망 구축을 위한 회의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은행에 강도사건에 발생하게 되면 어떤 도로를 우선적으로 막아야 하는지, 포위망을 빠져나갈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선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등 의미있는 피드백은 다음번 검거 상황에 반영될 것 입니다.


나아가 도로 구조와 도시 시스템에 관한 중요한 분석들은 범죄율을 낮추기 위한 다음번 도시계획에 반영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은행은 다음 도시로 연결되는 고속도로 근처에 있어서는 안된다든가, 경찰서와 일정거리 이상 떨어져서는 안된다든가 말이죠.


범죄자들의 도시 이용은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잘못된 사용법이지만, 이를 통해서 우리 사회는 개선점을 발견하고 더 나은 도시 시스템을 만들어내게 됩니다. 비범한 범죄자의 등장으로 더 안전한 도시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들이 다져질 수 있는 셈입니다.


성공한 도주 범죄자의 관점이 아니라 실패한 도시 책임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영화는 새롭게 읽혀집니다. 영화 <드라이브>의 주인공은 멋지고 폼나는 도주를 선보이지만 바꿔 생각해보면 주인공을 놓친 당사자들은 며칠동안 머리를 싸매고 대책회의를 거듭할 것입니다. 가끔씩은 이렇게 영화를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는 것도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콜래트럴> - 대도시의 비정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