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외동으로 성장하는 사람들이 꽤 많지만, 제가 어릴 때는 그래도 자녀가 둘 정도는 있어야 하는 인식이 많은 편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에게도 두 살 터울의 형이 한 명 있습니다.
형제관계는 묘한 역학관계가 있습니다. 때로는 원수 같기도 하고, 때로는 친구 같기도 합니다. 흔히 말하는 애증의 관계가 형성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형제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들은 괜스레 한번 더 관심이 가게 됩니다. 그쪽 집안 형제들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해지곤 합니다.
영화 속 형제는 함께 은행털이를 감행합니다. 가족의 유일한 재산인 농장이 은행에 압류당할 위기에 처하자 은행강도가 되어 비용을 모읍니다.
거칠고 실행력 강한 형과 이성적이고 계획성 있는 동생의 조합은 꽤 성공적입니다. 역할을 분담해서 매끄럽게 임무를 완수하는 모습을 보면 합이 잘 맞는 형제라는 느낌이 듭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보면 두 형제의 기질은 상당히 다릅니다.
형 태너는 마치 무법지대를 다니듯 과감하고 위험하게 범죄행각을 벌이는 반면, 동생 토비는 불법을 저지르면서도 경중을 따지며 과하지 않은 행위만을 행동기준으로 삼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상당히 다른 성격의 형제입니다.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
순회공연하듯 성공적인 은행털이를 하는 형제를 보안관들이 쫓기 시작합니다. 거듭된 범행으로 포위망은 점점 더 좁혀집니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은 마지막 형의 결정입니다. 경찰들을 자신이 있는 쪽으로 유인하여 동생이 포위망을 벗어날 시간을 벌어줍니다. 형이 동생에 대해 가지는 보호자로서의 심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지막일 수 있음을 직감한 형 태너가 토비를 바라보며 이야기합니다.
태너 : 사랑한다 동생아,
토비 : ... 나도 형.
형제 사이에 오갈 말로는 약간 어색했는지 형이 다시 말합니다.
태너 : 야 , 엿이나 먹어
토비 : 형이나 엿 먹어
그렇게 마지막 대화를 어색하지 않게 마무리 짓습니다.
동생이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한 형은 경찰과의 대치상황 속에서 결국 총을 맞고 쓰러집니다. 도망갈 시간을 번 동생은 형의 바람대로 남은 인생을 이어나갑니다.
태너는 스스로의 인생이 이미 한참 꼬였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비록 이혼은 했지만 자식들이 남아 있는 동생만은 부디 평온한 삶을 살아주기를 원했는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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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어릴 땐 형과 참 많이 싸웠습니다. 하지만 형제 사이에 누군가 양보를 해야 할 땐 늘 형이 양보를 해야 했던 것 같습니다. 나는 동생이라는 이유로 형이 양보한 물건을 건네받곤 했습니다.
하지만 형이라고 해서 항상 배려심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동생 때문에 서운한 일들이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형과 떨어져 산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운동으로 체격이 커진 형이 종종 옷을 부쳐줍니다. 옷들이 작아졌다고 자꾸 가져가 입으라고 합니다.
이 양반은 사춘기도 아닌데 몸이 왜 자꾸 커지는지 신기하면서도, 옷가지를 부쳐주고 나서 덧붙이는 뭐 더 필요한 거 없냐는 물음이 싫지 않습니다. 별 의미 없이 하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맙습니다.
형제 중 누군가 양보해야 할 때는 대개 형이 먼저 양보하고, 가끔씩은 보호자가 되어 동생을 챙겨주는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채드가 토비를 도망가게 하기 위해 경찰들을 유인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늘 동생으로만 살아왔고 한 번도 형으로 살아왔던 적은 없습니다. 그래서 형이 동생에 대해 어떤 마음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다만 더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는 형의 호기로운 목소리에서 어렴풋하게나마 그 마음이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