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3년에 개봉한 <쥬라기 공원>은 센세이셔널했습니다. 스크린 속에 6천5백만 년 전 멸종된 공룡들을 그대로 살려놓았습니다. 빠르고 강한 지구의 지배자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주인공들이 티라노사우르스와 밸로시랩터들을 피해 달아나고 쫓기는 장면에선 쥬라기 시대로 온 듯한 스릴을 안겨줬습니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덕분이긴 하지만, 흥미롭고 독창적인 스토리, 특수효과의 놀라운 발전, 효과적인 음향효과의 사용 등으로 영화는 명작의 반열에 올라섰습니다.
이후에 2편과 3편이 나왔지만 1편만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진 못했습니다.
3편이 제작된 이후 14년이 지나 다시 시리즈가 부활했습니다. 2015년에 <쥬라기월드>가 개봉하고 2018년 <쥬라기월드:폴른킹덤>이 개봉하며 세계적으로 큰 흥행 수익을 올렸습니다.
90년대 나왔던 쥬라기 공원과는 달리 쥬라기월드에서는 유전자 조작에 대한 반감이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쥬라기월드, 2015>에서는 다양한 생물의 유전자들을 조합해 만들어진 인도미누스 렉스가 등장해 테마파크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습니다. 그리고 3년 뒤 개봉한 <쥬라기월드:폴론킹덤, 2018>에서는 인도미누스 렉스의 유전자에 벨로시랩터의 유전자를 혼합해 탄생시킨 인도랩터가 등장해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합니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유전자변형으로 탄생한 강력한 공룡이 등장하고 모두 영화 속 악역이라는 점입니다. 1993년 영화에서는 육식공룡이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유전자 조작 공룡이 악한 존재이고, 그렇지 않은 공룡들은 상대적으로 선하게 그려집니다.
6천5백만년 이전 실제 지구상에 존재했던 공룡들은 인간의 친구로 보고, 새로이 유전자를 조작하여 탄생시킨 공룡들은 괴수로 여긴다는 설정이 영화에 깔려 있습니다.
영화의 기본적인 전제는 '존엄한 생명의 탄생과정에 개입한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세상이 다시 공포와 혼란에 빠졌다'로 볼 수 있습니다.
수십 년의 시간이 지나 생명공학이 고도로 발달된 시점에서 이 영화를 다시 본다면,
'왜 유전자 조작 기술이 적용된 공룡을 저렇게 사악하게 묘사했냐'는 불평이 나올지도 모릅니다.
지금에 비유하면 폴더폰의 심플함이 스마트폰의 사악한 중독성을 물리치고 인류의 절친으로 계속 남게 되었다는 정도의 유치한 스토리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영화에서는 인간의 힘이 개입되지 않은 피조물은 선하지만, 인간이 개입한 생명체는 절대악인 듯 그려집니다. 인간이 감히 손대지 말아야 할 신성한 곳에 손댔다는 듯이 말입니다. 유전자 조작이 일반화된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본다면 영화의 설정이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가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2
과학기술이 빠른 속도로 발전되고 있지만, 생명공학의 영역은 다른 과학기술 분야와는 차별됩니다. 생명의 창조에 개입된다는 점에서 많은 반대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윤리적, 철학적, 종교적인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유전자 조작 관련 기술은 그 자체의 연구보다 규제와 반대의 목소리를 뛰어넘는 논거를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윤리적인 이유로 생명공학의 발전이 더뎌질 순 있지만, 여기에서 연구를 중단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입니다. 인류는 늘 그러했듯 전진해 나가려고 할 것입니다. 무한한 호기심이야말로 벌거벗은 원시인에서 스마트폰으로 커뮤니케이션하는 현대인을 탄생시켰습니다.
생명공학 기술을 쓸 것이냐 말것이냐의 문제는 넘어섰고, 이 기술을 어떻게 쓰는지의 문제만 남은 것으로 보입니다.
생명공학 연구는 이로운 점도 많기 때문에 끊임없이 전진할 것이고, 돈만 되다면 그 기술은 빠르게 상용화될 것입니다. 앞으로 연구자들이 생명공학 기술을 더욱 깊이 있게 연구하여 놀라운 결과들을 뉴스로 전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그 연구결과를 인류가 어떻게 활용하고 제어할 것인가 입니다.
미래에는 생명공학기술이 발달하여 유전자 지도를 펼쳐놓고 맞춤형 배아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높은 지능지수와 빼어난 외모, 탁월한 운동신경을 갖춘 사람들이 배출되어 현 인류가 만든 체제를 전복시켜 버릴지도 모릅니다. 혹은 <쥬라기월드>, <쥬라기월드:폴른킹덤>에서처럼 유전자 조작된 맞춤형 생명체가 인간을 위협할지도 모릅니다.
생명공학의 발전은 바꿀 수 없는 흐름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SF영화에서 보는 것은 장밋빛 미래보다는 염려와 걱정입니다. 특히 SF영화에서 그리는 미래의 모습은 발전된 과학기술로 인해 사회가 보다 불평등해지거나 혼란해지는 경우를 그리고 있습니다. 14년 만에 다시 제작된 쥬라기공원 시리즈에서 갑자기 유전자 조작된 티렉스와 랩터가 악역으로 등장한 이유도 기술 발달에 대한 우리의 염려와 우려가 투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요.
#3
우리는 때로 급변하는 기술발전에 피로감을 느끼곤 합니다. 일렉트로닉 효과음 가득한 최신 음악보다 통기타와 함께 흘러나오는 담백한 멜로디가 좋을 때가 있습니다. 24시간 내내 정보가 쏟아지는 스마트폰을 잠시 꺼두고 산과 강이 있는 조용한 자연을 느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그 모습 그대로인데,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급격히 발전하고 변모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사회적으로 옳고 그름에 대한 가치판단 합의가 이루어지기도 전에 새로운 기술이 갑자기 등장하기도 합니다.
이제 과학기술은 인간의 적응속도에 비해 훨씬빠른 속도로 차이를 만들고 우리는 점점 피로감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러한 피로감은 앞으로 급속도로 확산될 것입니다. 특히나 생명공학에서의 발전은 더욱 급격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쥬라기월드> 시리즈는 우리의 이러한 우려와 걱정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93년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공포의 대상이었던 벨로시랩터는 20여 년이 지난 현재는 주인공의 조력자이자 친구입니다. 6천5백만 년 전의 모습을 간직한 벨로시랩터는 친구이고, 유전자조작을 더한 랩터는 괴물이라는 설정은 억지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객들이, 유전자 조작된 랩터를 벨로시랩터가 물리치는 장면에 열광한다면,
생명공학이 개입된 공룡을 그렇지 않은 공룡이 쓰러뜨리는 장면에 카타르시스 느낀다면,
옛것에 대한 향수와 함께 급속도로 속력을 내는 기술발전에 대한 피로감이 반영되어서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