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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SHK Mar 31. 2019

#7 이탈리아 아말피 - 맛과 멋

레스토랑에서의 저녁식사

어, 이 요리는 주문한 요리가 아닌데요?
그래요? 잠시 확인해 볼게요.
(잠시 뒤)
파스타는 그냥 서비스로 드리는 겁니다.
네? 공짜라고요?
네, 그냥 드시면 됩니다.

주문한 요리는 스테이크와 리조또인데, 스테이크와 함께 파스타가 한 접시 덜렁 나왔습니다.

아마 주방으로 주문지가 잘못 들어간 싶었습니다. 식당에서는 그냥 먹으라고 쿨하게 파스타를 놓고 갑니다.

'오 예, 갑작스런 이득'

잠시 뒤 주문한 리조또가 나오고 예상치 못하게 풍성한 저녁 식탁이 되었습니다. 원래 주문한 요리 두 개와 잘못 배달된 파스타 한접시까지.


방문한 곳은 아말피 해안가에 위치한 호텔 레스토랑입니다.

낭만적인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선택한 장소였습니다.


애피타이저로 나오는 음식부터 시각적으로 플레이팅이 완벽했습니다. 이미 눈으로는 만족스런 식사를 마친 기분입니다.


그런데 주문한 음식들의 맛이 예상과는 다릅니다.

단순히 익숙하지 않은 맛이라기보다 그냥 맛이 없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완벽한 분위기에 친절한 서비스가 있는 낭만적인 곳에서의 저녁식사인데, 

맛이 흠?...응?...

낯선 외국어를 읽는 느낌이었습니다. 오묘하고 해석하기 어려웠습니다. 특히 마지막에 나온 리조또가 압권이었습니다. 해석표를 옆에 붙여놓고 이 맛이 어떤 쪽에 속하는지 해석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내가 대체 뭘 주문했는지 다시 메뉴판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맛이었습니다.


'이럴 수는 없다.'

필사적으로 이 음식 맛이 별로인 이유에 대한 반박 증거를 떠올리기 시작했습니다.

현지 입맛에 맞춘 거라 한국인 입맛에는 안 맞는 것일 거야,

셰프 분이 독창적인 요리를 좋아해서 일부러 색다른 요리를 만든 것일 거야,

미식가들만이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고 대중성은 떨어지는 맛이라서 그럴거야...


평소엔 이렇게 맛없는 요리에 대한 항변을 하지 않습니다. '아, 이런 맛없는 집에 왔네. 다음에 올 일은 없겠다.'

그저 다시 가지 않을 식당으로 여길뿐입니다. 그런데 이 식당에 대해서는 무엇인가 항변을 해주고 싶었습니다.


식사비를 지불하는 건 주방이 아니라 이쪽인데 왜 그 맛없음에 대한 옹호 이유를 찾으려고 했을까.

이 곳에서의 저녁식사를 좋은 추억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이 식당에서의 기억을 단순히 맛없는 식사를 했던 곳으로 치부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박한 평가를 내리기엔 이 곳은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맛의 아쉬움을 상쇄할 만한 다른 장점들을 열렬히 찾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꽤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의 저녁식사를 추억한다면 대단히 낭만적이고 분위기있는 장소에서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고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입맛에 맞지는 않았지만, 직원들의 친절함과 낭만적인 식당 분위기는 그 저녁식사 시간 자체를 만족스럽게 만들어주었습니다.

식당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친절히 환대해주던 직원들, 세심하게 플레이팅 된 식사들, 실수로 나온 음식도 서비스라며 웃으며 건네주던 여유로움, 무엇보다 아말피의 밤바다를 내려다보식사를 하는 낭만적인 분위기까지.


들어오는 순간부터 탁월한 식당 선택이라고 스스로 칭찬해 줄 수 있는 곳.

후에 여행 사진을 볼 때 그때의 편안하고 낭만적인 분위기가 다시 솟아 나올 것만 같은 곳.

이탈리아 아말피를 떠올릴 때 아름다운 저녁시간이라고 기억될 수 있는 곳.


나는 이 곳을 서둘러 포장하고 있었습니다.

비록 맛은 아쉬웠지만,

특히 리조또의 맛은 형이상학적이고 아방가르드했지만,

이 곳의 낭만적인 분위기만큼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으뜸인 식당이었습니다.

별점 평가하자면 별 다섯 개 만점에 별 네 개 반.

반 개 제외한 건 판타지같은 맛을 가진 리조또님 때문에.


아말피 레스토랑에서의 저녁

직원들의 깔끔하고 친절한 서비스가 식사시간의 격을 높여줬고,

아름다운 조명과 낭만적인 아말피 바다가 멋을 돋워줬습니다.

때로는 멋이 맛을 보완해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아말피 식당에서의 맛은 약간 아쉬웠지만 멋이 모든 것을 보완해 주었습니다.


물론 음식은 입맛에 맞아야 합니다. 맛있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라면 완벽합니다. 하지만 때로는 식사시간을 둘러싼 멋이 약간 애매모호한 맛들을 보완해 줄 수 있습니다. 맛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멋에 취하는 셈입니다. 낭만적인 분위기와 친절한 응대 속에서 멋에 취해 버린다면 미각은 크게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아, 그 해석하기 어려웠던 리조또는 제외하고.


그렇게 맛보다는 멋이 있는 식당과 함께 아말피에서의 밤이 깊어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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