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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SHK May 18. 2019

<돈키호테를 죽인 사나이>


인류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각 나라에는 건국설화가 있고, 각 종교의 경전에는 교리가 담긴 깊고 풍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회사에 지원하는 자기소개서에서조차 다른 경쟁자와 차별되는 나만의 스토리를 담아야 합니다.


문자가 없던 시절에 이야기가 입에서 입으로 구전되었습니다. 그리고 활자의 탄생으로 인류는 봇물 터지듯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동서양에서 수많은 문학작품들이 탄생했, 그중 어떤 작품은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어 독자들과 공명했습니다. 그런 작품들엔 클래식이란 칭호가 붙습니다.

돈키호테는 클래식입니다.  400여 년 전 스페인 라만차를 배경으로 씌어진 이야기는 긴 시간을 뛰어넘어 우리를 매혹시켰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이 돈키호테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었고 오랜 시간 동안 독자들에게 사랑받았습니다.

소설 돈키호테를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지만 호기롭게 풍차로 돌진하는 돈키호테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이 오래된 클래식이 21세기를 배경으로 독창적인 상상력과 기발함에 일가견이 있는 테리 길리엄에 의해 재탄생했습니다.


잘 나가는 CF감독 토비는 보드카 광고 촬영을 위해 스페인에 방문합니다.

토비는 학생 때 스페인을 마을주민들을 섭외하여 돈키호테에 관한 영화를 졸업작품으로 촬영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추억이 떠오른 토비는 당시의 마을 사람들을 찾아가 봅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화 속 돈키호테 역할을 맡았던 구둣방 주인 하비에르를 만납니다. 그런데 하비에르는 토비를 보자마자 갑자기 산초라고 부르며 자신이 돈키호테인양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정신 차리라며 다그치던 토비는 우여곡절 끝에 함께 동행길에 오르게 됩니다. 

하비에르와 토비는 21세의 돈키호테와 산초가 되어 길을 떠납니다. 자신이 기사라는 망상 속에 있는 하비에르와, 꼬이고 꼬여버린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CF감독 토비는 어색하게 동행합니다.


이들 앞에는 예측불허의 기이한 사건사고들이 발생합니다.

현실과 상상이 뒤섞인 여정 속에 토비는 빨리 상황을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러던 토비는 자신의 졸업작품에 앳된 소녀로 출연했던 안젤리카와 재회합니다. 반가운 만남이지만 변해버린 안젤리카의 상태에 토비는 회한이 몰려옵니다.


소설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작품이긴 하지만 영화는 묵직한 스토리가 흐름을 이끄는 구조는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돈키호테와 산초가 함께 길을 떠나는 로드무비 형식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스토리가 무게중심을 잡고 전개되진 않습니다.


길을 가며 만나는 다양한 사람과 사건들 속에서 인물들의 캐릭터들이 점점 선명해고, 개별적인 에피소드들을 통해 인물의 특성과 성격이 구체화됩니다.


대신 영화는 기발하고 독특한 표현력을 통해 이색적인 영상미를 뽑아냅니다.

불법체류자 사람들이 모여사는 작은 마을에서 겪는 망상 가득한 장면들, 폭포에서 안젤리카를 만나는 순간의 몽환적인 아름다움, 토비 앞에 수시로 나타나는 현실과 상상이 혼재된 것 같은 체험들.


복잡한 이야기보다는 상상력 가득한 이미지들이 영화를 가득 채우며 관객들을 극으로 이끌어 갑니다. 전반적으로 기이하고 독특한 분위기 속에서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색다른 기분을 선사합니다.

상상과 현실이 얽혀 있는 몽환적 장면들 기발한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따라가다 보면, 돈키호테를 21세기 방식으로 영상미 넘치게 구성하면 딱 이런 작품이 나올 것 같습니다.


영화의 독특한 상상력과 영상미 외에 주연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돈키호테 역을 맡은 조나단 프라이스의 능청스러움과 CF감독이자 본의 아니게 산초 역을 맡은 아담 드라이버의 열연은 영화 내내 깊은 인상을 주는 요소입니다.

아담 드라이버의 당혹스럽고 혼란가득한 눈빛은 조나단 프라이스의 이상과 신념 가득한 눈빛과 대조되어 시종일관 큰 재미를 안겨줍니다.


21세기의 돈키호테와 산초가 된 두 배우의 연 덕분에 영화를 보고나면 소설 돈키호테를 읽고 싶어 진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영화는 오래된 클래식을 현대적 스타일로 영상미 넘치게 재구성했습니다. 기발하고 독창적인 표현방식과 감독의 풍부한 상상력에 어색함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돈키호테와 산초의 혼란을 낯선 동행자의 관점에서 즐기려 한다면 흥미로울 수 있는 영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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