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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haun SHK Jul 05. 2020

영화관의 추억

영화관 알바

대학생 때 왕십리에 있는 한 영화관에서 알바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영화관 알바는 티켓팅, 매점, 플로어(입장 확인 및 청소) 3개 파트를 순환하는 식으로 업무를 했습니다.

그날은 매점에서 일을 하는 날이었습니다.


한창 바쁜 시간대가 지나고 관객들이 상영관 안으로 빨려 들어간 후,

초등학교 저학년쯤의 아이와 엄마가 매점 쪽으로 왔습니다.

오붓하게 당시 막 개봉한 애니메이션을 보러 온 것 같았습니다.

 

츄러스를 두 개 주문받았는데 마침 상품이 떨어져 새로 꺼내 데우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았습니다.


당시엔 츄러스를 전자레인지로 금방 데우는 게 아니라 보관 기계에 넣고 서서히 달구는 식이라 미리 준비하지 못하면 10분 가까이 기다려야 했습니다.


두 관람객의 얼굴엔 츄러스를 먹고 싶다는 표정과 영화 시간에 늦을 것 같다는 표정이 교차하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잠시 고민하고 있는 동안 근처에 있던 다른 선임 알바생이 다가와 슬쩍 이야기합니다.


"먼저 입장시키고 이따 직접 갖다 드려 보세요."

내가 자리 비우는 동안엔 자기가 대신 다른 고객들을 받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그 조언이 탁월하다고 생각했는지

어가 계시면  갖다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고마워요. 여기가 저희 상영관이랑 좌석 번호예요."

좌석 번호를 메모하고 츄러스를 데우기 시작했습니다.


대단히 이례 상영관 배달을 하게 됐습니다.

예정에도 없고 예상도 못한 서비스였습니다.



상영관은 생각보다 깜깜했습니다.

바닥에 있는 좌석 번호가 너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츄러스를 양손에 들고 어두컴컴한 화면이 다시 밝게 전환되기를 기다렸습니다.

'아이들도 보는 애니메이션인데 화면이 왜 이렇게 어둡지'

애꿎은 화를 탓하다 잠시 후 밝은 화면으로 전환될 때 위치를 확인하고 미션을 수행합니다.

 

"고마워요. 정말 너무 고마워요"

엄마는 츄러스를 받아들고 연신 고맙다고 말씀하십니다.

아이는 한창 애니메이션을 보느라 정신이 없지만 엄마의 거듭된 감사 인사에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무사히 미션을 잘 마쳤다는 생각에 어깨가 으쓱했습니다.



일반 상영관에서 매점 음식을 직접 좌석까지 갖다 주는 서비스는 당연히 없습니다.

그런 일은 원칙대로라면 하지 않는 게 맞습니다. 꽤 부담되는 서비스이고 형평성에도 맞지 않습니다.


그날은 원칙에서 살짝 벗어났습니다.

렇게 해보라말에 평상시의 방식을 잠시 일탈했습니다.


그 선임 알바생이 왜 매뉴얼에도 없을  해보라고 했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본인도 전에 해본 적이 있어서 그랬 수도 있고,

미리 상품을 준비하지 못한 책임도 있으니 우리가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하자는 생각이어서 그랬을 수도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 예외적인 일은 사자들을 흐뭇하게 만들어 줬습니다.

엄마와 아이는 영화 첫 장면을 놓치지 않고, 나에겐 시간이 지나서도 생각나는 소소한 추억거리가 하나 생겼습니다.

깜깜한 상영관에서 츄러스를 들고 당황 순간도 있었지만 분에 알바생을 볼 때 종종 떠오르는 추억이 됐습니다.



이제 영화관은 무인화가 꽤 많이 이뤄졌습니다.

티켓팅 해 주는 직원은 사라지고 어플이나 무인 키오스크에서 표를 끊습니다.


매점도 무인화가 점점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곧 터치 화면으로 메뉴를 정하고 결제만 하면 픽업 장소에 츄러스든 팝콘이든 툭 나와있게 될 것 같습니다.


사람이 부대끼는 일이 줄어들면 영화관은 더 쾌적한 공간이 됩니다.

대신 그때가 되면 어두운 상영관에서 츄러스를 양 손에 들고 헤매는 사람없어질 것 같습니다.

상황을 고려해서 매뉴얼과 다르게 처리해 보라고 조언해주는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알바생들을 볼 때마다 그 때의 기억이 종종 떠오르지만

무인화가 이뤄지직원이 부분 없어지면 츄러스를 들고 헤매던 추억도 희미해져 갈 것 같습니다.  

시대의 변화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지만 추억도 같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코로나 영향으로 영화관을 가는 발걸음도 뚝 끊겼습니다.

마지막으로 영화관 간 지도 꽤 오래되었습니다.

영화관을 자주 못 가는 대신 영화관에서 알바하던 때를 잠시 추억합니다.

다시 영화관에 사람이 가득해지고

새로운 추억거리을 많이 만들어 나가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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