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배경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프랭크 코스텔로가 이끄는 범죄조직은 보스턴 일대에 악명을 떨치고, 경찰청에서는 이들 조직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심합니다.
빌리 코스티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불우한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경찰의 꿈을 가지고 경찰학교에 입교합니다. 하지만 경찰청의 퀴넌과 디그넘은 빌리를 설득하여 코스텔로의 범죄 조직에 잠입시킬 계획을 진행시킵니다. 빌리가 경찰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범죄의 길로 빠져드는 것처럼 꾸미는 것이죠.
코스텔로의 조직에 들어간 빌리는 범죄조직의 일원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리고 중요 정보들을 경찰에 몰래 제공하는 위험한 비밀임무를 수행합니다. 그런 빌리의 마음엔 하루빨리 임무를 마치고 경찰조직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집니다.
한편 콜린 설리반은 명석한 두뇌와 총명함으로 어렸을 때부터 코스텔로의 신임을 받습니다. 코스텔로는 콜린을 경찰학교에 입교시켜 경찰조직에 들어가도록 만듭니다. 코스텔로의 기대대로 콜린은 경찰 조직내에서 승승장구합니다.
하지만 그는 경찰의 중요한 내부정보들을 코스텔로에게 조금씩 흘려주고 있습니다. 겉으로는 훌륭하고 능력있는 경찰이지만 실제로는 범죄조직에 내부정보를 빼돌리는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경찰은 빌리를 통해 코스텔로 조직의 정보들을 빼내고 증거를 수집하려고 합니다. 반면 코스텔로는 콜린을 통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고 함정을 피해나가려고 하죠. 범죄조직과 경찰과의 대결 속에 두 인물은 뒤바뀐 운명을 가지고 살아가게 됩니다. 빌리는 언제 임무를 끝마치고 경찰조직으로 복귀할 수 있을까요? 콜린은 자신의 신분을 계속 숨기면서 경찰조직에서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는 조직의 비밀스런 전략에 따라 엇갈린 운명을 가지게 된 두 인물을 이야기합니다. 영화 <무간도>를 헐리웃에서 리메이크한 이 영화는 무간도와는 또 다른 색깔과 분위기를 줍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는 빌리 코스티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해피엔딩을 맞이하고 콜린 설리반 (맷 데이먼)이 응당의 처분을 받기를 희망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정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최근에 다시 본 감상은 그때와 조금 달랐습니다. 이번엔 빌리 코스티건보다는 콜린 설리반의 표정과 감정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빌리가 비극적 상황에 놓여있어 연민의 감정이 드는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콜린의 상황에 대해 곱씹어보며 그에게도 조금씩 감정이입이 되었습니다.
빌리는 조직의 대의를 위해 개인의 삶을 희생합니다. 범죄조직에서의 비밀임무 수행 때문에 점점 위험하고 비극적인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콜린도 위험스러운 비밀임무를 수행하는 점에서는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콜린은 빌리와 달리 현재의 삶이 좋아지기 시작합니다. 조직에서의 인정, 풍경을 조망하는 멋진 집, 사랑하는 여인, 손에 더러운 피를 묻히지 않아도 됩니다. 필사적으로 위장임무가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빌리와는 달리, 현재의 삶이 신기루처럼 사라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는 콜린은 불안합니다.
현재 상황을 벗어나고자 하는 빌리와 현재를 잃고 싶지 않은 콜린. 본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빌리와 새롭게 부여된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은 콜린. 콜린의 삶이 통째로 위선과 거짓의 삶일지라도, 오랜 시간과 경험들은 그를 진짜 경찰로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정의를 실현하는 자로서의 경찰이 아니라, 경찰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서의 경찰말입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침마다 사무실에 출근하고, 야간근무의 졸음을 쫓기위해 커피를 연거푸 마시고, 수사성과로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그렇게 콜린은 경찰조직으로 완전히 녹아듭니다. 콜린에겐 경찰의 일과가 개인의 일상이 되었습니다. 일상과 습관이 무서운 것은 쉽게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중력처럼 평상시엔 인식하지 못하지만, 웬만한 힘으론 극복하기가 불가능합니다.
단순하게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그 단조로움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자 색깔입니다. 일상의 박탈은 정체성의 상실이자 자아의 탈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콜린이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은 단조로운 그 일상, 콜린의 정체성이었습니다. 이제 콜린은 경찰구성원으로서의 자아가 너무 커져버렸습니다.
맨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콜린의 죽음은 사필귀정이었지만, 이번에 다시 본 콜린의 죽음은 정체성을 지키려던 한 개인의 죽음이었습니다. 빌리의 죽음은 더할 나위 없이 비극적이지만, 한편으론 콜린의 죽음도 못지않게 안타깝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하루하루는 우리의 정체성을 하나씩 만들어 나갑니다. 오늘 나의 생각과 행동들이 나라는 존재에 색을 하나씩 입혀 나갑니다. 단 하루만에 우리의 정체성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인생을 바꿔나갈 수 있는 것도 그 하루하루의 조각들 덕분입니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하루이고, 수많은 날들 중에 하루지만, 우리를 바꿔나가고 완성해나가는 것 역시 바로 이 하루라는 붓자루입니다. 어떤 색을 덧입힐 것인지, 어떻게 조화롭게 만들어나갈 것인지는 우리가 각자의 인생에 대해서 갖는 권한이자 책임입니다. 오늘 하루의 생각과 행동은 오늘의 나를 만드는 일이고, 하루하루가 모여 우리의 정체성이 형성됩니다. 수많은 날들 중에 하루일 뿐이지만 이 하루는 우리 스스로를 만드는 귀중한 시간들입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오늘 하루는 얼마나 소중한 하루였을까요? 이런 질문에 선뜻 대답을 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작년 오늘에 내가 무슨 일은 했는지 기억나지 않고, 한달 전 같은 날짜에 내가 무슨일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어쩔 때는 바로 일주일전 나의 하루는 어땠는지 그 감정도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명확한 사실 하나는, 기억나지 않는 그 하루하루들 모두 우리 인생의 일부분이라는 점입니다. 매일 똑같은 출퇴근길과 반복되는 회사에서의 업무들, 몇 번이나 먹어본 것 같은 구내식당들의 메뉴들. 이 모든 하루하루는 똑같이 소중한 우리의 인생이고, 나의 일상입니다.
레고 조각들 하나하나는 아무런 의미없는 플라스틱조각들로 보입니다. 하지만 조각들이 하나하나씩 연결되고 이어짐으로써 중세시대 성채가 되기도 하고 영화 속 해적선이 되기도, 때로는 하늘을 나는 비행기나 우주선이 되기도 합니다. 아무도 그 조각 하나하나에는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멋지고 아름다운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은 의미없는 조각들의 모음입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비슷하게 보입니다. 하루하루는 별 의미없는 날들로 보이지만 알고보면 우리를 만들어 나가는 소중한 조각들인 것이죠. 우리의 가치관과 정체성, 성격은 그 하루하루의 경험과 느낌들이 모여 만들어집니다. 어제의 단조로웠던 하루와 오늘의 무미건조했던 하루도 인생이라는 작품에 빠질 수 없는 조각들입니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느끼며,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다시 한번 되돌아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