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인터뷰 내용을 보고
고레에다 감독의 강의가 콜로소에 올라왔다. 진짜... 돈 없어 죽겠는데 자꾸 돈 쓸 일이 많이 생긴다. 당장 등록할 수는 없어서 강의 소개 내용만 읽어보는 중이다. 그중에 원더풀 라이프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었다.
Q. 영화 <원더풀 라이프>처럼 인생에서 단 하나의 기억만을 남길 수 있다면 어떤 기억을 남기실 건가요?
A: 예전에 자주 받았던 질문인데요. 당시에는 "아직 영화를 좀 더 만들고 싶기 때문에, 기억을 선택하지 않고 그 공간에 남아서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고 싶다"라고 답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조금 더 영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선택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삶에 책임을 지겠다고 말한 그 청년은 고레에다 본인이었나 보다. 감독은 '선택'이 아니라 선택하는 과정에 대해서 관객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이며, 그것을 고민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작품이 끝나고 나면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Q: 영화를 만들 때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감독님만의 기준이나 신념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이것만은 바꾸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부분이 없도록 하고, 기꺼이 변화하고자 하는 마음이 변함없이 지키고 있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영화로 예를 들자면 영화관을 나선 후에 '아, 인간으로 사는 건 정말 괴롭다'라고 생각하게 될 영화는 만들지 않을 것, 인간성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한 가지이고, 가능한 한 슈퍼히어로나 악마 같은 극악무도한 인물은 배제하고 세계관을 구축해 나갈 것 정도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완전한 흰색과 검은색을 배제하고 회색으로 이루어진 그러데이션으로 세계관을 그려내려 하고요. '이 사람이 없으면 세상이 평화로워질 텐데'하는 이야기나 '이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에 세상이 무사할 수 있었다'는 식의 이야기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Q. 감독님이 생각하는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정의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면 그 차이는 무엇일까요?
만약 둘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건 '전지적 시점'의 존재 여부입니다. 다큐멘터리는 객관적인 전지적 시점 같은 방식을 적용해서는 안 되는 방법론이며, 어디까지나 나와 상대방이라는 관계 속에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극영화의 경우에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표현할 수도 있고, 부감하듯이 전지적 시점에서 이야기를 보여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가능한 한 전지적 시점을 차용하지 않고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시점에서 촬영하고 연출하려 합니다. 스토리텔링 방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고, 윤리적인 잣대에서 조금 벗어나도 괜찮은 것이 픽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레에다 감독을 알기 전에 내가 알던 영화는 선악이 대결하는 구도로만 존재했다. 기승전결의 구조 아래서 인물은 사건을 겪고 갈등하며 결국에는 성장한다. 그것은 스릴러, 로맨스, 가족, SF판타지 모든 장르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이야기 구조이다. 아마도 긴 러닝타임 동안 관객들이 가장 흥미진진하게 영화를 감상할 수 있는 검증된 방법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고레에다의 영화는 굉장히 특별하다. 주인공의 상황을 힘들게 하는 빌런이 없고, 만약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얼마나 악하고 나쁜지에 대해 크게 다루지 않는다. 주인공의 서사가 결말에 도달하는 방식도 특이하다. 주인공이 직면한 갈등상황의 실마리는 늘 주변사람과의 인터렉션을 통해 해소된다. 주변 인물들이 직접적인 해결책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의 교감을 통해 스스로가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과정에서 인물은 성장하고 변화한다. 그래서 비통하고 슬픈 이야기를 다뤄도, 영화관을 나설 때 인간에게는 답이 없다는 착잡한 마음이 들지 않는다. 영화 속 주인공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나와 다른 누군가로 인해 내 세계가 넓어질 수도 그리고 유연해질 수도 있다
나는 그가 갖고 있는 선하고 따뜻한 시선이 언제나 좋다. 치열하게 현실을 담으려고 하지만, 그 안에서 작게나마 희망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그 마음씨가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