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얼굴

그토록 때가 탔는데 왜 빛이 나는거니

by 이브와 아담

휴가 때 한 친구를 만났다. 대학교 졸업 이후 처음 만나는 거니 한 일 년 만에 보는 것이었다. 그 친구는 복학생이라 이제 졸업반이었지만. 인연의 힘은 대단하다. 얼굴 보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추억을 그대로 가져다 놓으니.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참을 수 없는 미소가 지어진다면, 그 사람은 분명 나에게 소중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그 친구, 많이 바뀌어 있었다. 여전히 말도 똑 부러지게 잘하고 신앙심이 깊은 친구였지만 어딘가 모르게 지쳐 보였다. 신이라는 개념에 대해, 믿음이라는 행위에 대해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던 이 친구의 유연한 깊이를 좋아하곤 했는데, 어느새 친구는 몇 주 단위로 꿈을 설계하며 살아가는 현실적인 사람으로 변모해 있었다. 부부가 이혼하는 이유는 단 한가지 뿐이라고, 그것만 해결되면 아무리 성격이 안 맞아도 어떻게든 살아가는거라 말했다던 그의 전 여자친구가 그를 그렇게 바꿔놓은걸까. 사람 원래 바뀌기 힘들다던데, 그 속설을 기어코 깨트리고야 마는 존재는 다름아닌 ‘돈’이었다.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마주하게 되는 세계는 우리에게 갑작스럽게도 많은 걸 요구한다. 희망찬 미래를 위해 열심히 공부하라고 말하는 교육제도를 나름 잘 소화하며 달려왔던 우리들이었는데, 이제 현재가 된 이곳 미래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희망보다는 피로인 것 같다. 어쩌면 획일화된 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다양한 길들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른 나라와 비교해봤을 때 지나치게 낮은 우리나라의 취업률을 보고 있노라면, 많은 걸 포기하고 열심히 살아온 것의 대가가 정녕 이것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물론 열심히 한다는 것에 대한 기준은 각자가 꾸는 꿈의 크기만큼 다르겠지만. 다른 건 몰라도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아가는 이 나라에서 ‘여유’는 찾기 힘든 것임을, 가슴 아리게 느끼고 있는 요즘이다.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기꺼이 여유를 포기하게 만드는 이 ‘돈’의 존재가 마음의 여유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더욱 돈을 포기하지 못하나 보다. 여유를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순간이 바로 돈에 대한 믿음의 도약인 건가. 아직까지는 신을 온전히 믿지 못하는 내 마음처럼, 돈이 곧 행복이라는 말도 믿지 못하겠다. 지금의 나에게 돈은 모든 걸 해결해주고 행복을 부여해주는 신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날 보고 그 친구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넌 돈의 중요성을 몰라서 문제야. 난 돈의 노예가 될 것 같아서 문제고.

우리는 너무도 쉽게 돈의 노예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교회에서 헌금을 낼 때 돈의 노예가 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낸다던 친구의 굳은 다짐의 표정이, 뚜렷한 잔상으로 마음 한 켠에 남는다. 되새겨보면 선의의 수원지가 되겠다고 베푸는 사랑의 행동들은 삶의 여유가 있거나 지갑이 두꺼울 때나 기꺼운 마음으로 하게 되는게 사실이다. 잘 사는 사람들은 좋은 사람 되기 쉽다는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친구의 말처럼 내가 돈의 중요성보다 마음의 여유에 더 무게를 두는 이유는, 어쩌면 대학교 졸업 후 운 좋게 군대에서 장교복무하며 돈을 벌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군에서 장기 복무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언젠가 돈이 없어 그 친구 표현처럼 ‘악에 받칠 상황’을 상상하는 건 나에게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어떤 경로를 선택할지, 고민이 많아지는 요즘이다.


선의를 베풀고 싶은 마음조차, 돈이 없으면 주저하기 마련이다. 내 마음의 크기가 지갑의 두께와 비례하게 될 것만 같아 두렵다. 물론 선의를 베푸는 방법이 꼭 돈으로만 있는 건 아니라는 걸 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꽤 많은 부분이 물질 만능주의적이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기에, ‘돈만 밝히는 속물’이라는 치기 어린 지난날의 표현들도 지금의 나 앞에서는 그저 부끄러운 자화상으로 다가올 뿐이다.


지금 이곳에서 여유를 포기하는 법을 배우며 살아가는 삶이 내 자신을 갉아먹을 때가 있지만, 때로는 점점 더 돈의 노예가 되어버릴 수도 있는 앞으로의 인생을 견딜 수 있게 만들어 주기에, 감사하다. 나와는 상반되는 이곳에 기꺼이 길을 트고 들어와 스스로를 바꾸는 고통을 견뎌내는 것이 앞으로의 날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기 때문에. 마치 생존 본능처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배울 것이다. 마음의 여유를 얻기 위해 기꺼이 여유를 포기하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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