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외롭지만, 비로소 내가 될 수 있는 곳
여럿이 함께 있는 것보단 혼자 있는걸 더 선호하는 편이다. 사람마다 에너지를 얻는 방향이 다르다는 얘기가 있던데, 외향적인 사람은 여럿이 함께 있을 때 에너지를 얻고 내향적인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내향적인 편에 속한다. 나에게 공허함은 종종 쓸쓸하기보단 자유로운 느낌이기 때문에. 혼자 있을 때 비로소 편안함을 느끼는 편이다. 물론 그렇다고 여럿이 있는 자리를 굳이 피하진 않는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는 것도 자유로운 공허함 못지않게 행복한 일이라는 걸 경험한 적이 있기 때문에. 어쩌면 외향적이거나 내향적인 걸 구분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란 생각도 든다. 사람이라는 게 그런 틀 안에서 정의될 수 있는 존재인가. 개인적으로 외향적이고 내향적인 건 각자의 성향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있느냐에 더 크게 좌지우지된다고 생각한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동시에 대학교와 군대라는 공동체와 함께 지내야 했던 사람으로서, 내 내향적인 성향은 세상과 꽤 많은 타협을 보았다. 그리고 그것은 좋은 일이었다.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거나 다듬어나가는 일이었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성격이나 가치관, 취향 면에서 타협을 보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 그런 부분들이 때로는 날 외롭게 했지만 결국 나를 정의 내리는 소중함이란 걸 깨닫게 되었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친구들과 지내면서 은근히 외로웠던 점은, 내가 게임에 취미를 붙이지 못한다는 사실이었다. 같이 놀던 무리 애들이 우르르 PC방에 가면 혼자 할 게 없으니까 따라가서 같이 놀곤 했는데, 그렇게 시간이 아까울 수가 없었다. 이런 고민을 하는 것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고깝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싶었을 정도로 나름 진지하게 고민했던 부분이었다. 다른 애들은 이렇게 재밌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키보드와 모니터에 의존한 채 앉아서 존재하지도 않는 세상 속에 몰입한다는 것이 나에겐 오히려 혼자 있는 것보다 더욱 쓸쓸한 공허감으로 다가왔다. 아, 물론 체스만 보면 환장한다. 게임을 아예 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롤이나 오버워치 같은 게임을 별로 안 좋아한다. 이유는 모르겠다. 여백이 없어서 그런가.
음악 취향도 다른 또래들에 비해 독특한 편이다. 내 주변 친구들은 힙합을 좋아하는데, 딱히 찾아 듣게 되진 않더라. 요즘은 신해철, 아이유, 선우정아, 뮤즈, 아케이드 파이어, 핑크 플로이드,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을 즐겨 듣는다. 특히 데이비드 보위의 음악을 꽤나 좋아한다. 음악적 성취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와 모험을 추구했던 그분의 도전정신을 평생 존경할 수 있을 정도로. 어느 날 부대에서 야간 운전 중에 내 음악 취향이 궁금하다는 부사관 분이 계셔서 장난기가 발동해 데이비드 보위의 노래를 틀어드렸더니 그 분은 제발 딴 노래 좀 틀라고, 취향이 굉장히 마이너하시다고 펄쩍 뛰며 말씀하신 적이 있었다. 그분의 반응이 워낙 재밌어 깔깔대다 그분 취향의 다른 노래들을 틀어드렸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글을 좋아하는 편이다. 내 주변 사람들은 아마 내가 이렇게 글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모를 것이다 :) 사실 내 주변에는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 무엇보다도 이 점이 내가 종종 느끼는 외로움의 8할은 차지할 것이다. 사실 주변을 둘러보면 글을 읽지 않아도 재치있는 언어유희로 모두를 즐겁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나에게 많은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있으며, 때로는 놀랄 정도로 깊은 사유를 하는 사람도 있다. 나 스스로를 생각해봐도 분명 글을 많이 읽고 좋아한다고 해서 그게 지적 성장의 지표가 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이 세상에는 정말 놀라운 이야기와 생각을 담은 글들이 넘친다. 글은 대화와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또 다르다. 글은 말보다 생명력이 길다. 그렇기 때문에 한 글자 눌러쓸 때마다 말보다 고민하고 신중하게 된다. 그렇게 정성들여 쓴 글들은 예술 작품이 된다. 종종 날 변화시키기도 하는 그런 놀라운 예술 작품들을 보며 올라오는 감정들을 공유할 사람이 없다는 건, 좀 외로운 일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곳에서 만나는 브런치 작가분들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보다 가끔 더 친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현실에서는 잘 모르는 사이이지만 흰색의 빈 공간에 적어내리는 솔직한 생각들을 공유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주변 사람들과는 쉬이 경험하지 못할 상호작용일 수도 있기에, 다른 차원의 특별함이고 소중함인 것이다.
내가 이런 섬이라고 해서 나와 비슷한 취향의, 비슷한 성향의 누군가가 내 외로움을 채워주길 바라는건 아니다. 어차피 우리는 모두 다른 각자만의 섬이다. 그저 다르다는 걸 따가운 눈초리로 보는 것이 아닌 눈부신 개성으로 바라볼 바다같은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며 웃음지을 수 있을 텐데. 어릴 땐 그 눈초리가 따가워 내 섬을 개간하거나 간척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섬을 병들게 할 뿐이었다. 누군가에게는 모난 것처럼 보일 수 있는 그 섬이, 결국에는 ‘나’를 특별하고 소중한 존재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아름다움임을 깨닫는다. 살아가면서 지켜내야 할, 작고 소중한 각자만의 무엇임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