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 인생의 이야기- 테드 창
말이 있으라. 나는 내가 과거에 상상했던 그 어떤 것보다 더 풍부한 표현력을 가진 언어를 통해 나의 마음을 안다. 말을 함으로써 혼돈에서 질서를 창조하는 신처럼, 나는 이 언어를 써서 나를 새롭게 바꾼다.
-단편 [이해] 中
작가 테드 창의 단편소설집 [숨]이 ‘자유의지’를 다루었다면, 이번 단편소설집은 ‘언어’를 주로 다룬다. 언어는 우리의 사고방식을 규정하는 도구이다. 알래스카에서 살아가는 에스키모인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눈의 종류나 성질을 각양각색의 언어들로 다양하게 정의내렸다. 그 결과 다른 나라 사람들보다 눈을 더 세부적으로 구분할 수 있게 되었다. 언어는 이처럼 사물을 바라보는 시야에 영향을 미친다.
한편 언어는 공동체를 충돌로 이끈 최초의 무기였다고도 한다. 우리는 타인을 완전히 알 수 없기에 타인과 소통하며 오해를 낳곤 한다. 영국의 한 탐험가가 호주 원주민들을 처음 만났을 때 원주민들은 한 동물을 가리키고 있었고 탐험가는 그 동물이 뭐냐고 물었다. 그러자 원주민들은 ‘캥거루’라 답했다고 한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알아보니, 캥거루는 그들 말로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의미였다고 한다. 때로 우리의 생각은 완전하지 않기에 소통에서 발생하는 오해는 필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인이나 국가의 발전 원동력은 항상 ‘교류’와 ‘소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언어를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단편소설집의 제목과 동일한 제목의 단편소설 [당신 인생의 이야기]는 한 가지 가설을 바탕으로 내용이 전개된다.
사피어-워프 가설: 사용하는 언어가 사고방식을 결정한다. 우리는 새로운 언어를 통해 뇌를 재설계할 수 있다.
어느 날 외계인이 지구를 방문한다. 우리는 그들의 방문 목적을 알 수 없다. 언어학자 루이스는 그들의 방문 목적을 알아내기 위해 군의 명령을 받아 외계인들과 접촉을 시도한다. 그러다 그녀는 그들의 문장을 발견하게 되고 그들의 문장이 인간의 문장과 형태가 매우 다르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인간의 문장은 수직이든 수평이든 항상 직선의 형태를 띠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각하는 시간에는 처음과 끝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시간을 선형적으로 인식하고 이는 우리가 언어를 기록하는 방식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들의 문장은 원의 형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들의 문장에서 처음과 끝은 동일한 것이었다. 즉 그들은 시간을 우리처럼 선형적으로 인식하지 않았다. 그들은 우주를 인과적 시선이 아닌 총체적 시선으로 보는 것이었다. 마치 빛의 운동처럼. 무엇이 맞고 틀린 건 없다. 그저 우주의 법칙을 기술하는 물리적 언어의 차이일 뿐이었다. 루이스는 그런 그들의 언어를 연구하며 자신의 사고체계가 바뀌는 것을 경험한다.
더 흥미로운 점은, 그들의 언어가 내가 생각하는 방식을 바꾸고 있었다는 것이다. 나의 사고가 도형의 형태로 코드화되고 있던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시간을 선형적으로 인식하는 것에서 벗어나 총체적으로 인식하는 감각을 깨우게 된다. 그녀의 시간에는 이제 처음과 끝이 동시에 존재하게 되었다. 마치 원처럼. 즉 그녀는 미래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예측의 단계를 넘어서 미래를 온전히 보는 시야를 얻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보게 된 그녀의 미래는 절망적이었다. 그녀는 사랑스러운 딸의 죽음을 목격한다.
나는 어머니와 자식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무이한 유대 관계의 증거, 네가 내 뱃속에 있던 자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 고양감을 느껴. 설령 너의 모습을 직접 본 일이 없다고 해도, 나는 수많은 갓난아이들 사이에서도 단번에 너를 찾아낼 수 있을거야. 저쪽은 아녜요. 아, 쟤도 아닙니다. 잠깐, 저기 저애예요.
예. 그 아이가 맞아요. 제 딸입니다.
네가 성장의 한 단계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속도는 언제나 나를 놀라게 할거야. 너와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마치 움직이는 목표물을 조준하는 것과 같아. 너는 언제나 내 예상보다 앞서나가 있을거야.
그때 머릿속에 떠오르게 될 생각. 너는 명백하게, 기가 막힐 정도로 나와는 다르다는 사실. 이 생각은 네가 나의 복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내게 또다시 일깨워줄거야. 너는 매일처럼 내게 행복을 가져다주는 소중한 존재이지만, 나 혼자 만들어낼 수 있었던 존재는 결코 아니야.
그들의 언어를 배우게 된 후,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 하지만 지금 나는 환희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아니면 고통의 극치를 향해 가고 있을까?
끝이 어떻게 될지 알면서도
난 그것을 받아들일거야.
그리고 여정의 매 순간을 반길거야.
사고체계가 바뀌는 순간 이제 그녀에게 ‘결과’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삶의 크고 작은, 모든 순간들을 진심으로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과정’이었다. 결과가 어떨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녀는 온전히 현재에서 행복을 찾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온전히 ‘지금’에 집중할 수 있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설령 그 결과가 고통이었다 한들, 그녀는 고통 덕분에 현재에 더욱 감사하고 지금을 사랑하는 방법을 배우게 된 것이다. 우리 인생에서 고통은 필연이기에.
모든 고민은 이제 풀렸다. 삶은 사랑이며, 고통조차, 아니, 고통이야말로 사랑이라는 사실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단편 [지옥은 신의 부재] 中
어쩌면 그녀가 미래를 본다는 것은 결국 누구보다 강한 자기확신을 얻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우리는 시간을 선형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미래를 알 수 없겠지만 내가 생각하기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자랑스럽든 부끄럽든 자신의 모든 과거가 현재의 ‘나’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사랑하는 것이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삶의 ‘원’을 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다가올 미래까지도 현재의 ‘나’를 만드는데 일조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며 이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가올 미래를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현재에 집중하는 것이다. 기어코 두 발이 땅에 붙어있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외계인을 만날 기회는 전무하기 때문에 이런 경험까지는 할 수 없겠지만 분명, 언어가 우리의 사고방식을 결정한다는 말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부정적인 말들을 습관적으로 한다면 우리의 생각마저 부정적으로 변할 것이다. 언어는 생각에서 파생되기 때문에. 우리가 사소하게 툭툭 내뱉는 경솔한 언행들은 우리의 사고체계를 그에 맞게 변형시킬 것이고 그 사소한 언어들은, 우리의 전반적인 행동과 신념을 변형시킬 것이다. 그렇기에 말 한마디를 신중하게, 소중하게 해야겠다는 것을 느낀다. 언어가 가진 힘은 그토록 강하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