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치

살아가면서 상실한 줄도 모르고

by 이브와 아담

나름 건치라고 치아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편이었다. 운 좋게도 그 흔했던 충치 한번 생긴 적 없었고 사랑니도 뽑아본 적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친구들이 성인 표준 치아개수인 28개의 치아를 가지고 있었다면 나는 거기에 사랑니 4개를 합쳐서 32개의 치아를 가지고 있었다. 교정의 필요성도 딱히 느끼지 못해 치과는 아픈 누군가와 동행했을 때 말고는 혼자서 가본 적이 없었다. 그랬던 작년 12월 어느 날, 양쪽 아래 어금니 부근에 치통이 엄습했다. 충치를 경험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이 치통이 충치가 아닌 자라나는 사랑니로 인한 통증인줄 알았다. 나중에 알고보니 사랑니에 충치가 났던 것이었지만.


당시에 난 전방에 있었고 대리임무를 수행할 사람이 없어서 치과에 가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서 양치질만 잘 해주면 작은 충치 정도로는 치과에 안 가도 된다는 친구의 조언을 듣고 치과에 가지 않기로 합리화를 했더랜다. 예상대로 치통은 시간이 지나 잦아들었고, 모든 게 잘 해결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나의 소중한 사랑니들은 하루하루 조금씩 썩어 들어가고 있었는데 말이다. 결국 치통이 잦아든 것이 아니라 내가 치통에 적응한 것이었다. 치통 때문에 아파했던 나의 작년 말을 기억하고 계셨던 엄마는 얼른 치과에 가라 하셨고 나는 안 아프다고 버텼지만 결국 등쌀에 밀려 치과로 발걸음을 향했다.


겉으로 보기엔 괜찮았다. 양쪽 아래 사랑니의 충치는 조그마한 점으로만 존재할 뿐이었다. 작년 12월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내 사랑니를 확인하던 의사분께서 말씀하시길,

“심하게 썩었네요. 당장 뽑아야겠어요.”

대체 왜, 양치질도 열심히 했는데, 싶으면서도 전문가의 말은 듣자 싶어 조용히 눈을 감고 누웠다. 의사분께선 잇몸에 마취주사를 몇 차례 놓고 혀와 입술의 마비 여부를 확인하신 후 발치를 속행하셨다. 치아가 썩어 발치 중 이가 부러질 수도 있다는 의사분의 염려와 달리 정말 깨끗하고 온전하게 치아가 뽑혀 나왔다. 마취 때문에 아프진 않았지만 뜨거운 피가 입 안을 적시는 게 느껴졌다.


그렇게 처음 마주하게 된 치아의 모습은 실로 가관이었다. 마치 치부를 들키기 싫어하는 아이처럼, 충치는 철저히 내 시야에서 식별할 수 없는 면만 파고 들어 치아 내부에 거대한 빈 공간을 만들어놓았다. 어금니를 도와 음식물을 씹어주던 사랑니의 내부는 텅텅 비어있었다. 난 그것도 모른 채 치아 겉부분이 깨끗하니 문제가 없다고 여긴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앉아 발치한 치아 내부의 빈 공간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문제 없다고 굳게 믿고 있었는데, 그동안 이렇게나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니. 내 마음 한가운데에도 이런 구멍이 있는 것 같았다. 가까이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나의 경솔함에 대한 죄책감이 마음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만일 내가 치통을 더 무시하고 있었으면 충치는 잇몸 밑 신경까지 번져 무심했던 나를 더 크게 혼냈을 테지, 치아의 공허한 구멍을 보며 지금까지 무심하게 지나쳤던 마음 속 공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어릴 적 우리가 빛날 수 있던 이유, 우리가 꾸었던 꿈들에 대해 생각해 본다. 우주와도 같던 그 꿈들이, 그 가능성들이 지금 내 마음 속에도 남아 있을까. 그 시절을 가끔이라도 떠올리긴 할까. 언제부턴가 규정된 정의에 부합하기 위해 마음 속 우주를 구깃구깃 접어 아무도 안 찾을 깊은 무의식 속에 던져놓고 다시 꺼내달라는 목소리조차 묵인한 채 1등을 못하는 스스로를 채찍질해가며 행복을 땅바닥에 툭툭 버렸던 기억이, 아니 요즘도 경험하는 그 일들이 내 마음 속 충치의 정체일 것이다. 낡고 녹이 슨 꿈들은 아직도 외면당한 채 무의식 속에 남아있다. 바빠서 생각하지 못했던, 살면서 잊혀졌던 수많은 상실된 소중함들. 발치된 치아를 손에 꽉 쥐며, 다시는 놓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살아가기 위해서 살아가는 게 아닌,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는지 결코 잊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내 마음 속 고통을 무시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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