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가 주는 선물
산과 바다 중 하나를 택하라면 주저 없이 바다를 택하는 사람이다. 어릴 땐 등산 애호가였던 아버지 덕분에 산을 더 좋아하곤 했다. 등산한 날 잠들기 전 눈을 감으면 머릿속에 그려지던 소나무들의 향기롭고 흐릿한 윤곽, 바람을 반기던 이파리들의 시원한 속삭임을 즐기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바다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냈기 때문에 산을 좋아할 수 있었던 것 같지만. 그러다 대학교 새내기 시절, 방학 때 친구들과 밤바다의 낭만을 경험한 후로는 바다가 여행지 선정의 기준이 되곤 했으며, 바쁜 일상 속에서 눈을 감고 가고 싶은 장소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곳이 되었다.
운 좋게도 지금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동해 바다,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금강산의 절경이 보이는 근무지에서 지내고 있는 덕에 수시로 마음의 여유를 챙기며 지내고 있다. 요즘 느끼는 거지만, 정말로 자연은 우리에게 힘을 준다. 바글거리는 오후 6시의 지하철, 낮처럼 밝은 밤의 아득한 불빛에서 벗어나 거대한 자연의 고요와 암흑을 마주하다 보면 신기하게 그 자체로도 위로가 된다. 모든 것들이 시시각각 바뀌고 정든 것들도 종종 사라지는 도시에서 벗어나, 변치 않는 모습으로 전방 투입 때마다 날 맞이하는 능선과 해안선의 모양새는 마치 부모님의 사랑이다. 물론 저 부모님의 사랑 속에는 적 자주포와 박격포들이 몸을 숨긴 채 엄폐하고 있지만.
전방을 주시하다 보면 모든 것이 고요한 와중에 유독 쉬지 않고 움직이는 것이 있는데, 바로 파도다. 파도의 방전 없는 에너지가 부럽다. 어떻게 저리 쉼 없이, 한결같이 움직일 수 있을까. 암초나 괴석에 부딪혀 가끔 형태를 잃다가도 파도는 언제나 흐름을 타고 스스로를 재조립해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영리함과 유연함이 부럽다. 바람의 형태를 따라, 물의 흐름을 따라 가끔은 잠잠하기도, 가끔은 용맹하기도 한 파도를 보며 닮을 것이라 다짐한다. 본능으로 주변을 읽고 행동하는 사람이 될 것이라 다짐한다. 걱정과 자존심은 떨쳐버린 채. 그렇게 된다면 암초와 같은 역경을 만날지라도 잠시 흐트러질지언정, 다시 정신 차리고 모양새를 갖춰 나아갈 테니.
운명이라는 흐름을 타고 나아가다 보면 가끔 오염된 바다를 만날 수 있다. 나와는 맞지 않는 사상에 물든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그렇다. 가끔은 그런 사상에 물들어 나 또한 오염될 수 있다. 오염되어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제나 다시 일어설 기회가 찾아온다는 것을, 물의 흐름은 오염된 파도를 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여유가 마음속에 둥지를 트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여유는 중요하다. 여유가 있다면 위기상황에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자연의 치유 능력을 믿는다면, 그 보이지 않는 희망을 믿는다면 암초와 같은 상황을 마주하더라도 부딪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시원하게 흐름을 따라, 운명을 따라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물의 흐름을 차단시켜 파도의 흐름을 없애는 댐이다. 댐은 비유하자면, 고정관념이다. 댐은 자칫 잘못 운용하면 물의 순환을 막아 주변 생태계를 파괴할 수 있다. 우리의 생각도 마찬가지이다. 배움의 태도 없이 새로운 사고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우리의 고립된 생각은 변화하는 환경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 채 주위를 어지럽힐 것이다. 고정관념의 폐쇄성은 실로 강력해서 찾아오는 기회와 운명마저 내쫓는 힘이 있다.
교류하지 않는 고립된 마음은 고집, 즉 자존심이다. 자존심은 꽤 단단하다. 그렇기 때문에 태풍에 취약하다. 단단한 줄기는 거센 바람과 파도에 곧잘 부러질 테니까. 태풍을 마주하지 않는 게 최선이겠지만 삶은 내 마음대로 흘러가지 않기에, 아프지 않기 위해서는 자존심을 죽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 암초에 부딪히는 단단한 자존심은 부서지겠지만 파도는 부서져도 곧잘 형태를 잡고 나아가니. 나보단 최선의 상황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한 것임을 안다. 자존심보단 여유를 안고서, 스스로 선택한 삶의 흐름에 몸을 맡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