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틀에 속하지 못한 사람

이방인- 알베르 카뮈

by 이브와 아담

확실한 건, 내가 너와 다르다고 해서 손가락질받고 배척당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은연중에 다 알고 있기에. 사람 다 똑같다고 겉으로 말하고 다니면서도, 실은 모두가 다르다는 것을.


알베르 카뮈의 소설은 ‘부조리’ 문학으로 분류된다. 작가는 억울하지만 반박할 수 없어 세상에 질려버리는, 피로의 감정을 소설에 집중적으로 녹여낸다. 우리는 왜 억울해도 반박할 수 없게 되었을까? 세상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논리’를 요구한다.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우리들에게. 우리의 선택은 깊이 고심한 행동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충동적이고, 심지어 방어적인 면모도 보인다. 우리는 때로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마음에서 전혀 우러나오지 않는 것을 선택하기도 하는, 논리적이지 않은 존재이다. 종종 이성보다 감정에 휩쓸리기 때문에 후회를 꽃피우곤 하는 어리석고 아름다운 우리에게 논리를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꽤나 비인간적일 수도 있다.


소설 속 주인공 뫼르소는 어머니를 사랑하지만, 생각보다 엄청 사랑하지는 않는 사람이다. 즉 누군가가 어머니에 대해 물어본다면 그는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말하겠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과연 그 정도로 사랑하나 자문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의 장례식 때 슬펐지만 눈물을 흘리진 않았고, 그저 담배가 피우고 싶어 우연히 어머니의 무덤 근처에서 담배를 피웠으며, 다음 날 그냥 연인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기에 그녀가 보고 싶어 하던 희극 영화를 봤을 뿐이었다. 그는 이때 몰랐을 것이다. 악의가 없던 자신의 이 행동들이,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 줄은.


뫼르소는 어떻게 죄인이 될까. 그는 친구의 부탁으로 재미 삼아 가짜 편지를 작성하게 된다. 하지만 뫼르소의 행동은 칼 든 아랍인과의 싸움으로 이어지고 뫼르소는 아랍인을 쏴 죽이려는 친구를 말리기 위해 총을 빼앗고 필요시 자신이 경고 사격하겠다고 그를 진정시킨다. 하지만 아랍인은 뫼르소와 그의 친구에게 칼로 상해를 입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뫼르소는 하필 뜨겁게 내리쬐는 태양빛에 자극을 받아 우발적으로 아랍인을 쏴 죽인다. 이 모든 사건은 결국 가짜 편지를 부탁한 뫼르소의 친구와 칼로 생명을 위협하는 아랍인 때문에 일어난 일인데, 정작 죄는 뫼르소가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모든 상황은 한 가지로 정의되거나 해석될 수 없다. 작품의 후반부인 피고인 뫼르소의 재판 풍경만 보더라도 한 사건에 대해서는 반드시 검사와 변호사라는 양 극단의 해석이 상존한다. 하지만 진실은 오직 하나다. 바로 뫼르소가 겪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경험이라는 유일한 진실. 하지만 세상이 이해하고 납득할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사건이 마무리되려면 뫼르소에게 일련의 조치를 가해야 했기에, 그가 겪은 진실은 재판의 거의 모든 과정에서 변호사와 검사라는 양 극단의 주장들에 의해 압도당한다.


진실은 어쩌면 힘이 약하다. 목적이 없기 때문에. 진실은 그저 진실일 뿐이다. 거기엔 어떠한 의도도 없다. 반면 극단적인 주장들은 반드시 의도와 목적이 있다. 검사에게는 뫼르소를 감방에 넣어야 할 목적이 있고, 변호사에게는 뫼르소를 무죄로 만들어야 할 목적이 있다. 그 끝없는 논리 싸움 속에서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존재인 뫼르소는 세상으로부터 추방된, 이방인이었다.


검사는 뫼르소를 확실히 죄인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 때 눈물을 흘리지 않았으며 (심지어 돌아가시기 직전 나이도 몰랐고), 어머니의 시신 주변에서 담배를 피우고 장례식 다음 날 희극 영화를 보았다는 이유로 그의 평소 행실에 죄악이 깊게 물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배심원 여러분, 어머니가 돌아가신 바로 다음 날 이 사람은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 시작했고, 희극 영화를 보러 가서 시시덕거렸습니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검사
그 검사는 내가 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규율을 무시하고 있으므로 이 사회와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인간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가장 기본적인 반응조차 보일 줄 모르기에 인정에 호소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뫼르소

변호사는 뫼르소를 확실히 무죄로 만들기 위해 그가 아랍인을 죽일 수밖에 없었던 분명한 이유를 만들어내자고 설득한다.

아뇨, 내가 그를 죽인 것은, 태양빛 때문이었어요.
-뫼르소

뫼르소는 스스로를 속일 수 없던 사람이었다. 변호사는 황당했을 것이다. 빠져나갈 길이 있는데 억울한 진실을 택하다니. 변호사는 뫼르소에게 만일 그렇게 말한다면 당신은 정말 사이코 취급을 받을 거라고 호통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뫼르소가 태양빛 때문에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을.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던 변호사는 뫼르소가 무신론자여서 정신을 못 차리는 거라 여기고 회개하라고, 믿음을 가지라고 지적한다. 뫼르소 안에 있던, 모두의 안에 있던 인간적인 특질은 세상의 환영을 받지 못했다. 우리가 만들어낸 세상은 결국 우리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우리를 지켜준다고 생각했던 종교와 법은 어느새 일말의 여지도 남기지 않은 채 인간성을 탄압하기도 하는 덫이 되었다. 그리고 그 덫에 뫼르소는 제대로 걸려버렸다.


세상의 틀에 속하지 못했던 뫼르소에게 주어진 결말은 단두대 처형이었다. 논리적으로 납득할 만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진실이라는 좁은 공간 속에만 머물렀던 그에게 주어진, 수직 낙하라는 치명적인 논리적 결말. 뫼르소는 처형 직전, 단두대를 보고 기계 장치라 부른다. 그를 죽인 것은 기계 장치였다. 그 기계 장치는 단두대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비논리성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던 법정 내 모두이기도 했다. 뫼르소의 죽음은 죄가 없는 한 인간의 죽음이었으며, 기계 장치에 의한 인간성의 죽음이었다.


말은 사람을 살리지만 때로는 사람을 죽인다. 말은 가끔, 정말 단두대가 되기도 한다. 모두의 안에 있는 인간성을, 그 비논리성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작정 손가락질을 하는 것은 누군가에겐 실로 사형 선고나 다름없다. 그리고 우리는 스마트폰, 컴퓨터 뒤에 숨어 그 손가락질을 더 서슴없이 할 수도 있는 존재가 되었다. ‘반박 불가’, ‘뼈 때린다’, 인터넷에서 흔히 보이는 이러한 표현들, 어쩌면 자랑스럽게 내뱉을 표현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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