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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May 07. 2021

꿈 심폐소생술

클래식은 잘 모르지만

예전엔 방학 때마다, 요즘은 휴가 때마다 집에 가면 근황 얘기와 함께 가족들에게 꼭 물어보는 게 있다.

“엄마 요즘 음악 들어요?”

사실 이 질문도 시간이 지나 변형된 질문이다. 원래는 이렇게 물어봤었다.

“엄마 요즘은 피아노 쳐요?”


우리 엄마는 피아니스트였다. 직접 콩쿠르에 나가서 수상하신 적은 없지만 조카에게 피아노를 가르쳐 콩쿠르에 몇 번이나 입상시켜줬고(물론 조카도 재능이 뛰어났다. 엄마 자식들은 재능이 없었다.),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웠는데도 불구하고 나름 쟁쟁한 음대 출신 연주자 분들을 제치고 꽤 유명한 호텔들을 돌며 공연을 하는 젊은 시절을 보내셨다. 물론 그런 생활은 결혼, 그리고 우리들의 탄생과 함께 끝이 났지만.


가정을 꾸리고 지켜 나가면서, 자식 셋을 키우고 먹여 살리면서, 피아노까지 품에 안고 살아가는 것은 그 당시 어렸던 우리들이 보기에도 벅찬 일이었다. 그래도 그땐 피아노 소리가 항상 집안에 울려 퍼졌다. 엄마는 시간 날 때마다 피아노 앞에 앉아 도저히 내 힘으로는 해독할 수 없는 악보를 앞에 두고 우렁차게 건반을 눌러나가셨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연습량이 부족해 굳어가는 손가락 관절을 원망하며. 엄마가 직접 연주하던 피아노 소리는 시간이 지나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연주 녹음 파일로 대체되었고, 피아노는 애꿎은 집 공간만 차지한 채 점점 방치되었다. 그렇게 엄마의 꿈도 방치되었다.


엄마가 피아노와 멀어지는 과정은 끊임없이 현실과 타협하는 과정이었다. 엄마는 가족들을 보듬어주고 때로는 잔소리도 해주는 보통의 엄마였지만, 가끔 피아노 앞에 멍하니 앉아 상념에 잠겨있을 때는 내가 모르는 낯선 여자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어쩌면 엄마를 되찾기 위해 성급한 해결책들을 제시하곤 했다.

우리 걱정 말고 이젠 엄마 하고 싶은 거 해.
요즘 시간도 많겠다 지금부터라도 연습하면 되지.

그 당시 난 모른 척하고 지나갈 줄 몰랐던 사람이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우리 때문에 엄마의 꿈이 멈춘 것만 같아서, 조금이라도 내 죄책감을 덜어보자고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런 내 심리마저 파악한 눈치 빠른 엄마는 괜찮다며, 피아노를 못 치게 된 대신 너희들을 얻지 않았냐며 내 이기심에 답해줬다.


시간이 흐르고 엄마는 결국 피아노를 팔았다. 가끔씩 재미 삼아 연주했으면 좋았을 텐데. 취미로 남겨두기엔 미련의 무게가 상당했을까. 이걸 팔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던 엄마의 무력한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꿈을 비워낸 그 마음은 얼마나 공허했을까. 그렇게 엄마는 음악 자체와도 멀어졌다. 난 엄마 덕분에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왠지 정서적인 동지를 잃은 것 같았다. 현재에 만족한다는 엄마의 마음가짐이 때로는 고마웠지만, 가끔은 꿈을 위해 욕심 좀 냈으면 하는 아쉬움도 들었다.


그래서 집에만 오면 물어본 것이다. 엄마 요즘 음악은 듣는지, 피아노 다시 시작할 생각은 없는지. 물론 그럴 때마다 엄마는 한결같이 고개를 저으셨지만. 오히려 한술 더 떠 이렇게 말씀하셨다. 자신은 음악을 한 번도 좋아해 본 적이 없다고. 음악은 엄마에게 돈벌이의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고. 겉으로는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였지만, 단어 하나가 저절로 입 안에 맴돌았다. 거짓말.


엄마에게 있어 음악이 오로지 돈벌이의 수단이었다면 피아노를 팔기 직전까지 그렇게 미련으로 힘들어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미련의 무게를 채우고 있던 것이 어쩌면 바래져가는 꿈은 아니었을까. 그래서 집 안을 차지하고 있던 피아노를 판 것처럼, 마음속 공간을 차지하고 있던 꿈을 도려낸 건 아니었을까. 이젠 모른 척하고 지나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용기를 내보고 싶었다. 엄마의 공허한 마음에 뭐라도 채워주고 싶었다.


엄마, 잠깐 쉬고 일로 와봐. 음악 듣자.

난 주로 대중음악을 듣지만 엄마는 그렇지 않기에, 엄마가 종종 연주하거나 좋아하던 클래식 음악들을 찾아봤다. 비록 내가 클래식은 잘 모르지만, 다행히도 엄마 덕에 좋아하게 된 곡이 두 곡 있었다.

Claude Debussy- Claire de Lune

Edward Elgar- Nimrod

드뷔시의 달빛, 엘가의 님로드. 아마 안드로메다 사는 외계인들도 이건 좋아할 거다. 물론 엄마는 별로 내켜하지 않는 눈빛이었지만, 놀랍게도 옆에 앉아서 같이 음악을 들어주었다. 음악 안 들은 지 백만 년은 됐다고 멋쩍게 웃으면서.


음악이 오랜만에 집안에 울려 퍼졌고, 난 평소답지 않게 감탄사를 연발하며 오버를 떨었다. 엄마가 조금이라도 자극을 받았으면 하는 마음에. 뭐, 좋은 음악이지. 엄마의 반응은 미지근했다. 난 엄마한테 언제 꼭 한번 이 곡을 다시 연주해달라고 부탁했고, 엄마는 다 까먹었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엄마가 별 흥미를 못 느끼는 것 같아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찰나, 귓가에 들려오는 엄마의 한마디는 내 코를 시큰하게 해 주기 충분했다. 이 부분, 이 부분이 재즈에서 즐겨 쓰는 공식이야. 재즈 피아노 연주하는 사람들이 그래서 이 곡을 엄청 좋아해. 집안을 울리는 피아노 멜로디에 맞춰 건반을 누르는 시늉까지 취해 보이며, 무미건조했던 엄마의 표정은 어느새 들떠 있었다. 마음이 따뜻해지다 못해 아려왔다. 음악 좋아하는 거 맞네.


엄마한테 다시 피아노 시작할 생각 없냐고 말하진 못했다. 엄마도 나름 생각이 있어서 부푼 꿈들을 힘겹게 접고 있었을 텐데. 단정히 접어놓은 꿈의 단편들을 다시 펼쳐놓고 싶진 않았다. 어쩌면 그게 엄마의 마음을 더 헝클어 놓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그래도 이젠 엄마가 꿈을 꿈으로만 보지 말고 추억으로도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푸른 이파리만 올려다보느라 목 아파하지 말고, 떨어지는 낙엽도 내려다보며 바스락거리는 느낌을 즐거워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엄마에게 있어서 자식이 음악보다 더 소중하다고 감히 내 입으로 말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엄마가 음악으로 꿈을 키우며 행복했을 때만큼의 행복은 느끼게 해주도록 노력할 테니까. 철없는 자식의 모습마저 이뻐해 주시는 고마운 엄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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