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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Jun 11. 2021

손해를 보는 것 같아도

보이지 않는 노력은 마음의 근육이 되어

매년 이맘때쯤이면 군대에서 실시하는 훈련이 있다. 바로 훈련의 꽃이라 불리는 행군. 군복을 처음 입기 시작했을 때부터 총 4번의 행군에 참여했다. 쉽지 않은 훈련이었다. 행군을 끝낼 때마다 발바닥에 엄지손가락만 한 물집들이 생기는 건 기본이고, 20kg 남짓 되는 군장의 무게 때문에 승모근과 어깨에는 어김없이 피멍이 든다. 아마 군인들이 유격과 함께 가장 두려워하는 훈련이 아닐까 싶다.


기억에 남았던 행군은 코스가 가장 길었던 40km 행군이었는데, 부대가 코스를 완주하는데 14시간이 걸렸다. 중간에 참지 못하고 물을 너무 많이 마셔 탈수 증세를 경험한 행군이기도 하다. 에너지를 소모하면서 과도하게 물을 마시면 땀을 지나치게 흘려 몸에 수분이 부족해질 수 있는데, 이때 뇌에 산소가 부족해져 굉장히 졸립다. 그래서 꾸벅꾸벅 졸면서 꾸역꾸역 걸어 운 좋게 탈수 증세를 극복했던 기억이 있다. 사실 꽤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조용히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경험한 것이 탈수 증상이었다는 것을 행군 끝나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가끔은 무지가 사람을 구할 때도 있더라. 행군이 끝난 후 군화와 양말을 벗는데 왼쪽 새끼발톱이 양말에 피로 엉겨 붙어 함께 빠져나왔던 기억은, 아마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이다.


이번에 실시한 행군은 30km 전술행군이었다. 40km 행군 때도 한 번의 뒤쳐짐이나 구급차 탑승 없이 무난하게 끝냈던 나로서는 이번 행군도 잘 마칠 자신이 있었다. 그런데 행군 전날, 군장 무게 20kg을 채우기 위해 전투화, 모포, 반합, 야전삽 등을 군장에 넣고 있던 도중 몇몇 동료 간부들이 갑자기 박스와 스티로폼을 가져오더니 그대로 군장에 넣어 내부 공간을 채워버리더라. 아마 그렇게 결속한 군장들은 10kg도 채 되지 않을 것이었다. 행군 시 용사들을 통솔하기 위해 체력을 아끼겠다는 그들의 심정과 전략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나도 군장에 그냥 스티로폼이나 넣어버릴까 퍼뜩 생각이 스쳤지만, 용사들한테 군장 20kg 결속하라고 통제한 입장에서 부끄럽고 싶지 않았고, 어디서 튀어나온 자신감이었는지 스스로의 체력을 과신해서 군장 내부를 20kg으로 꽉꽉 채워버렸다.


그 자신감이 자만감이었음을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스티로폼으로 가볍게 군장을 싼 간부들이 산보하듯이 코스를 걷고 있던 반면,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용사들은 끊어질 듯한 어깨와 허리를 감내하며 이를 악물어야 했다. 아, 스티로폼 쌀걸. 후회가 파노라마처럼 계속해서 머릿속을 맴돌았다. 사실 이번 행군이 특별히 더 힘들었던 이유는 부대 선방에서 용사들을 이끌던 간부들이 스티로폼 군장을 메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걸음 속도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화도 좀 났다. 이끄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응당 따라오는 사람들의 상태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하는데, 스티로폼 군장을 멘 간부들은 20kg 군장을 멘 나나 용사들의 체력 소진 상태를 알 턱이 없지 않은가.


난 그 사람들의 페이스에 맞추며 10kg은 더 무거운 군장 무게를 감당해야 했기 때문에 용사들을 통솔할 정신이 남아있지 않았다.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을 견디고 발걸음을 재촉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행군을 끝마치게 된다면 군장에 짐 20kg을 꽉꽉 채워 넣은 내 행동을 자랑스러워하게 될까, 아니면 여전히 후회하게 될까. 내가 겪는 이 필요 이상의 고통이 나에게 어떻게든 유익한 영향을 미칠까, 아니면 정말 바보 같은 에너지 낭비였다는 것만 깨닫게 될까.


가끔 우리는 필요 이상의 손해를 볼 때가 있다. 내면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부하에게 솔선수범을 보이기 위해, 때로는 부조리에 의한 피해가 일파만파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누군가는 왜 그렇게 바보같이 비효율적으로 사냐며 손가락질할 수도 있다. 타인의 시선에서 봤을 때 군장 20kg을 꽉꽉 채운 내 행동은 분명 비효율적인 짓이었다.


하지만 내면의 시선에서 봤을 때 스티로폼 군장을 준비한 것은 과연 지혜로운 행동이었을까. 만일 그들도 20kg 군장을 쌌다면 용사들의 체력 상태에 더욱 공감할 수 있었을 테고, 쉴 타이밍과 걸어야 할 타이밍을 더 잘 맞출 수 있었을 것이다. 통솔의 효율성을 위해 가벼이 군장을 싼 것이 과연 현명한 행동이었을까.


행군 때 함께 발걸음을 맞춘 간부가 있었다. 그 간부 역시 스티로폼 군장을 메고 있었다. 그분은 나보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힘들어하냐며 놀리고 계셨다. 내가 스티로폼 군장을 멘 줄 알았나 보다.


행군을 마친 후 그분이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행군을 마치긴 했는데, 군장을 가볍게 싸서 그런지 평소와 같은 뿌듯함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하지만 슬펐던 건, 나도 뿌듯함을 느낄 수 없었다. 평소보다 과한 페이스로 행군을 한 터라 온 몸 이곳저곳이 쑤셔왔다. 뿌듯함을 느끼기엔 몸 컨디션이 받쳐주질 않았다.


내가 뿌듯함을 느낀 순간은, 함께 고생한 용사들을 봤을 때다. 사실 모든 용사들이 20kg 군장을 멘 건 아니었다. 부조리 얘기가 나오지 않기 위해 우리들은 용사들 중 환자들을 사전에 파악한 후, 선별된 환자들이 군장을 메지 않고 행군하도록 했다. 그 결과, 부대의 절반이 넘는 용사들이 군장을 메지 않은 채 행군을 실시하게 되었다. 용사들 입장에서 효율을 따지자면 당연히 환자를 자처하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중에 정말 전쟁 상황이 닥치게 되면, 부대에 있는 물자들을 전부 챙겨서 기나긴 여정을 떠나야 할 수도 있을 텐데, 어쩌면 그때는 20kg보다 더욱 무거운 군장을 메고 걸을 수도 있을 텐데, 10kg 남짓 되는 무게로 행군을 한 사람들이 나중에 실전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까.


재밌는 건 행군 때 힘들다며, 아프다며 불평을 내비친 용사들은 주로 군장을 메지 않은 용사들이었다는 점이다. 20kg 풀군장을 멘 용사들은 그저 묵묵히 고통의 무게를 견디며,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발을 내딛고 있었다. 분명 그들도 군장의 무게 때문에 어깨에 피멍이 들고, 평소보다 빠른 이동속도 때문에 무릎은 후덜거렸을 것이며, 허리는 끊어질 듯이 아팠을 테고, 땀으로 젖은 양말에 쓸려서 터진 물집들은 따가웠을 것이다.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환자로 열외해서 군장을 메지 않을 선택지가 분명 있었음에도, 기꺼이 20kg의 무게를 선택한 용사들에게 그래서 박수를 쳐주고 싶다. 그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고통의 무게가 스스로를 더 강하게 만들어 주리라는 것을. 육안으로는 스티로폼 군장과 전혀 분간할 수 없는 20kg 군장의 보이지 않는 무게와 노력이, 몸과 마음의 근육에 보탬이 될 거라는 것을.


스스로가 선택해서 짊어진 삶의 무게가 남들보다 무거운 모든 사람들은 누구보다 더 성장할 수 있을 것임을, 감히 확신해본다. 필요 이상의 노력은 결코 헛되이 쓰이지 않을 것이다. 비록 그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을지라도, 내가 알아줄 수 있을테니. 스스로에게 인정받는 것만큼 진실된 확신은 없으므로. 우리는 각자가 지고 있는 삶의 무게만큼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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