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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Jun 16. 2021

광고의 홍수

머릿속을 침범하는 것들

바야흐로 광고의 시대다. 자본주의의 꽃이라 불리는 광고는 지금의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면서 탄생 이래 가장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되었다. 유튜브, 페이스북, 구글은 물론이고 적지 않은 기업들의 1등 수입원은 이제 광고다. 당장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부분의 신문사(조중동) 역시 광고 수입에 의존한다. 범람하는 정보들 속에서 광고는 스스로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더 자극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우리의 머릿속에 침투한다. 마치 밤을 없애는 건물들의 네온사인처럼.


사실 모든 광고가 나쁘고 싫은 건 아니다. 분명 광고 역시 다른 지식들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유익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통로 역할을 한다. 때로는 광고를 통해 대중의 욕구와 유행을 파악할 수 있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마중물을 찾을 수 있으며, 어쩌면 삶의 길 하나를 새로 틀 수도 있다. 구인 광고, 전자제품 광고, 보험 광고 등 대부분의 광고가 사실 유익할 수 있다. 게다가 질 좋은 광고는 예술이 가미되어 하나의 작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다만 광고가 폭력적이라 느껴지는 부분은 광고의 세뇌(반복)성, 왜곡성에 있다. 광고는 우리가 즐겨 이용하는 미디어에 지속적으로 모습을 비춰 보는 이의 머릿속에 각인된다. 본래 우리는 선택의 자유가 있는 존재라지만, 영상이나 앱을 실행하기 위해 선택의 여지없이 시청해야 하는 광고들을 차단하려 대개 돈을 지불해야 한다면, 과연 미디어가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는 환경에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어쩔 수 없이 우리가 시청하는 광고들은 좋든 싫든 우리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러한 원리라면 광고를 통해 우리의 무의식이 조종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전혀 실현 불가능한 상상은 아니기에. 혹자는 이런 면에서 광고가 21세기의 빈자에게 부과되는 새로운 형태의 세금이라고도 한다.


혹시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인터넷 기사를 보기 위해 들어간 페이지에서 광고 창이 움직인다거나 늦게 떠 원치 않는 클릭을 하게 되는 상황 말이다. 이런 술법은 무척이나 의도가 빤하고 조잡해서 헛웃음만 나온다. 때로는 인터넷 기사가 달랑 세네 줄 적힌 페이지에 광고가 한 열 개씩 뜨기도 한다. 어떻게든 우리의 시야에 잡혀 발견되길 바라는 광고들. 신경 쓰고 싶지 않지만 잔상들은 알게 모르게 머릿속에 포화 상태로 쌓여 학습된다.


‘치느님’, 배달의 민족, 진로, 참이슬, 성형수술 등 유튜브나 TV 등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광고들. 우리가 치킨과 술을 좋아하고, 배달 서비스를 애용하고, 성형 수술을 유행시키기 때문에 이러한 것들이 광고로까지 나온 것일까? 아니면 광고를 통해 우리에게 자주 노출되어서 우리의 생각과 행동이 광고를 따라간 것일까. 사실 난 치킨이나 술에 크게 관심이 없다. 물론 치킨 맛있고, 술 마시면 기분 좋다는 거 안다. 하지만 치킨을 ‘치느님’이라 부르고, 술자리를 무슨 회식의 정석, 친구들끼리 놀기 위한 필수 코스 정도로까지 생각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내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나도 무슨 CF 속 모델처럼 막 행복에 겨워 치킨을 뜯어야 하고, 하루의 스트레스를 술로 해소하는 것을 기뻐해야 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때로는 분위기를 위해 CF 속 모델 못지않게 기쁜 마음으로 술자리를 반기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내 앞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광고들은, 마치 자기들이 정답인 양 나에게 ‘정상’을 강요하기 때문에. 치킨과 술을 반기는 나의 그러한 기쁜 반응이, 어쩌면 반복적으로 광고를 시청한 모두에게 익숙한 것이기에.


우리의 행동양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비단 광고뿐만이 아니다. 광고처럼 우리 앞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그 어떤 무엇이든 결국 우리의 무의식에 영향을 미친다. 투명한 물에 떨어진 검은 잉크처럼. 그래서 반복적으로 나를 가르치고 설득하는 것들에 대해서 약간은 거리를 두는 편이다.


현존하는 데이터의 90%가 2016년 이후에 만들어진 정보들이라고 한다. 우리는 그만큼 과잉의 시대에 살고 있다. 유용한 지식들이 많겠지만 때로는 그 정보들이 인형극 인형들과 그것들을 조종하는 미상의 손을 이은, 보이지 않는 줄 같다는 생각도 든다. 줄에 매여 살고 싶진 않다. 과잉은 우리를 무감각하게 만든다. 보다 더 자극적인 걸 찾게 만든다. 조금은 빈 곳을 찾아 숨을 돌리고 싶다. 여행이나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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