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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Jun 29. 2021

나 때는 말이야

당신들의 지혜를 기억하겠습니다

할머니. 요즘 행복하세요?

그럼. 그냥 행복하다, 하고 살아가는 거야. ‘나는 왜 이러지’ 이러면 끝도 없어. 낙천적으로 살아야 해.

오랜만에 찾아뵌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는 내 기억보다 조금은 더 머리가 세어 계셨고, 조금은 더 허리가 굽어 계셨다. 상상과 현실은 같을 수 없었다. 놀란 감정을 애써 숨기고 웃으며 할머니, 할아버지를 끌어안는다.


그래, 학교는 졸업했고? 할머니의 물음에 난 고개를 끄덕인다. 그럼 지금은 뭐해, 취업했어? 아니요. 아직 군 복무하고 있어요. 전역하려면 아직 1년 남았어요. 난 다른 사람의 물음보다 더욱 정성스럽게 할머니의 물음에 답해줘야 한다. 할아버지는 옆에서 못마땅스러운 듯 껄껄 웃으신다. 난 할아버지의 웃음을 애써 모른 척한다. 할아버지 웃음의 의미를 절대 알아채실 리 없는 할머니는 단 참외를 드시며, 아이 같은 똘망한 눈을 끔뻑거리며 궁금한 것들을 또 묻는다. 그래, 학교는 졸업했고?


3년 전이었다. 할머니의 치매 판정 소식을 들은 것은. 잠옷 차림으로 마트에 가시는 할머니를 돕기 위해 엄마는 친정에 거의 살다시피 했다. 그때 엄마 많이도 울었지. 할머니의 치매는 막 싹이 트기 시작한 기억들을 시들게 했지만, 다행히도 뿌리 깊게 자라난 추억들은 건들지 않았다. 내가 군 복무 중이고, 대학교를 졸업했고, 아직 취업을 못했다는 사실을 백 번 얘기해도 할머니는 기억하지 못하시겠지만, 당신 딸의 얼굴은 기억할 수 있으실 테니, 그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일단은.


엄마가 할머니의 치매에 희망의 불씨를 발견하기 시작한 건, 치매가 할머니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망각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망각은 할머니를 밝은 사람,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다. 할아버지도, 엄마도, 나도 그때부터 할머니의 망각을 긍정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어둠을 애써 삼키며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 주셨던 할머니가, 이제는 촌철살인 같은 농담과 쾌활한 웃음으로 우리를 반겨주신다. 인사하는 내게 왜 왔냐고, 너 부른 적 없다고 장난치시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그늘을 끼고 사셨던 지난 날들 속에 숨어 있었을 빛나는 유머와 웃음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생각해본다. 지금이라도 빛나 주셔서 참 고맙다고.


변화한 할머니를 보고 전보다 더 친근하게 당신을 대하는 나를 발견한다. 전에는 할머니에게 드리워진 삶의 무게 때문에 쉽게 다가가지 못했지만, 요즘은 스스럼없이 할머니를 대하곤 한다. 점심을 거하게 먹어 식곤증을 호소하는 나를 보신 할머니는 나보고 방에 들어가서 자라고 하지만, 난 괜히 할머니 무릎 좀 빌리겠다고 당신 다리에 머리를 뉘인다. 그러면 할머니는 내 등짝을 때리며 ‘무릎 닳어 인마’ 하고 툴툴거리신다. 전에는 찾아볼 수 없던 할머니의 모습이기에, 더 재밌고 행복하다. 할머니와의 지금이.


방에서 두세 시간 자고 나오면, 할머니는 언제 오셨는지 침대 머리맡에 앉아 ‘누가 여기서 자래, 누구 맘대로 여기서 자래!’ 고래고래 한 마디 하신다. 손자한테 너무 야박한 거 아니냐고 응수하니 돌아오는 말은 더 가관이다.

어림도 없지. 숙박비 내.

정말 못 말린다. 할머니 심통은.


저녁 식사 중, 할머니는 내가 밥 먹는 폼이 영 못마땅하셨는지 옆에서 고기 좀 팍팍 먹으라고 하신다. ‘저 엄청 많이 먹고 있어요.’ 그러면 할머니는 ‘그러냐?’ 하시더니 10분도 채 안돼서 또 고기 좀 팍팍 먹으라고 말씀하신다. 할머니의 망각 속에 숨어있는, 지워지지 않는 손자 사랑에 괜히 마음 한 켠이 뭉클해진다.


저녁 식사 때는 내 군생활이 이야깃거리다. 할아버지는 찬란한 과거의 추억이 된 군생활을 저녁 반찬 삼으신다.

나 때는 말이야, 훈련 가서 밥 먹을 때 간부들이 고기 다 퍼가고, 파견 온 병사들이 남은 고기 퍼가고, 우리 선임들이 없는 건더기랑 국물 퍼가고, 쫄병들은 국물도 없었어. 몰래 된장 한 움큼 퍼서 주머니에 쑤셔 넣어서 밥이랑 비벼먹는 것도 감지덕지였어.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야.

할머니는 할아버지 말씀을 듣자 인상을 찌푸리며 한 마디 하신다. ‘요즘 그런 얘기 하면 큰일 나. 이 양반이, 꼰대 소리 들어.’ 옆에서 삼촌이 거들길, ‘아빠, 요즘 애들한테는 이런 얘기 안 먹혀. 요즘은 정답이 없는 세상이야.’ 할아버지는 가족들의 훈수에 멋쩍은 웃음만 지어보이신다.


누가 어르신들의 기를 죽였을까. 정답이 없는 세상이기에 난 정답이 절실한데. 언제부터 어른들의 발자취가 평가절하 되었을까. 어른들이 피땀 흘려 일구어 낸 지혜와 경험이 망각의 바다 속으로 잠식될 것만 같아서 두렵다. ‘라떼는 말이야’ 속 치기 어린 우리들의 분노가 사회적 치매를 야기할까봐 두렵다. 이토록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한없이 높아 보이는 벽 앞에서 난 기꺼이 어른들의 지혜와 견해를 갈망하고 있는데. 기꺼이 ‘나 때는 말이야’ 에 귀 기울일 수 있는데. 더 얘기해달라고 할아버지한테 말한다.


대화는 무르익고, 할머니는 두 주먹을 쥐어 보이시더니 내게 말씀하신다. ‘할아버지랑 같이 빈 손으로 나왔어. 거기서 여기까지 온 거야.’ 할머니의 작은 주먹이 한없이 위대해 보인다. 그 주먹은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마치 할머니의 치매에도 사라지지 않는 손자 사랑처럼, 상실의 세상 속 영원불변한 무언가가, 너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서 한없이 든든하다.


저녁 식사 후, 할아버지의 성인 광산 김 씨, 할머니의 성인 김해 김 씨 간 전쟁이 벌어진다. 촌철살인 같은 할머니의 공격. ‘여보, 광산 김 씨는 말이 없고 과묵하대. 근데 당신은 왜 그래?’ 할아버지는 당황하지 않고 그 조용한 입 뚫리게 만든 사람이 누구냐고 되묻는다. 할머니는 민망했는지 옆에서 낄낄대는 나를 가리킨다. 야, 평산 신 씨는 저기 구석에 가서 조용히 있어.


난 구석에 짱박혀 있다가 여행 가서 사 온 찰보리빵 세트를 할아버지, 할머니께 갖다 드린다. 할아버지는 상자를 여시더니 에이, 누가 이미 먹었네 하며 아쉬워하신다. 아, 그거 아빠가 몇 개 꺼내먹었어요. 내가 일러바치자 할아버지는 껄껄 웃으시더니 봉지를 뜯고 손바닥만 한 빵을 반으로 나눠 할머니 입에 쏙 넣어주신다. 그 작은 빵조각도 할머니에겐 큰지, 할머니는 웃으며 입을 크게 벌린 채 할아버지의 사랑을 한 움큼 머금는다. 제발 저 기억만큼은 잊지 말아 줬으면, 속으로 기도해본다. 나도 당신들의 지혜를 기억하며 살아갈 테니.


헤어지는 길, 이별의 길목에서 할머니는 내 등을 두드리더니, 쉽지 않았을 텐데 내 강아지 이렇게 신통방통 자라줘서 고맙다고 한다. 당신이 주는 사랑의 방식대로, 나도 한 번 똑같이 해본다. 심통 한 움큼 장착한 채.

뭐라고요 할머니? 심통방통? 진짜 너무하다.

야 이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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