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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Oct 24. 2021

우리 삶을 바꾸는 장소

흑막 너머에

내 눈으로 직접 보는 세상의 모습이 비로소 삶의 모습이라 믿고는 했다. 보이지 않아 어림짐작할 수밖에 없는 것들에 대해서 섣부른 판단을 내리지 않기 위해, 적어도 두 눈으로 직접 본 것만큼은 의심하지 말자고 굳게 다짐했다. 그래서 직접 부딪히며 경험하는 일련의 시행착오의 과정들이 내게 배신하지 않는 가르침을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에 지금도 동의하는 편이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더라. 지금까지 ‘나’라는 관객은 오로지 두 눈으로 보이는 무대가 세상의 전부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을 바꾸는 일은 무대에서 벌어지지 않는다. 세상을 바꾸는 일은 무대 뒤편에서 벌어진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매 순간 직조해내는 세상은 꽤나 효율적이고 실리적이다. 나는 종종 완벽에 가까운 세상을 본다. 온갖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TV 속에서. 유명한 스타들의 SNS 속에서. 흠잡을 데 없는 아름다운 문장이나 음악 속에서. 혹은 멋진 누군가에게서. 그러한 완벽의 세상을 보고 있노라면 경외심과 자괴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하지만 TV에서 완벽한 모습만을 보여주던 누군가가 다른 누군가의 폭로로 인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걸 보면, 우리가 모르는 흑막이 가지고 있는 힘의 무시무시함을 체감하게 된다.


과거에 창문을 통해 세상을 보았다면, 이제는 검은 화면을 통해 세상을 본다. 검은 화면 속 세상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으며 때로는 화려하다. 정의 내리기 힘든 혼돈과 애매모호함으로 넘쳐나는 내 삶과는 달리. 검은 화면 속에 펼쳐지는 그 명료함이 부러웠다. 나도 내 삶을 저렇게 명료하게 살아낼 수 있을까, 따라 해보려 하지만 이내 깨닫는다. 검은 화면 속 세상과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국 다른 세상이라는 것을. 내게는 이 세상을 편집할 능력이 없다. 아니 애초에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은 무대를 편집할 자격이 없다. 무대 위에 서 있는 사람은 그저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온전히 살아내야만 한다. 관객 앞에 서 있다는 긴장감과 대사를 까먹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감내한 채로.


때로는 사회라는 무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무대에서 저지른 실수를 은폐하기 위해 일부 기업의 인사들이나 정치인들은 비밀리에 누군가와 결탁한다. 뇌물, 회유, 청부 등의 방법을 통해. 언론에서 보도되는 유명 정치인의 의문사는 보통 더 밝혀져야 할 비리의 사건들을 묻어버리곤 한다. 그리고 언론에서 바삐 보도되는 새로운 사건의 소음으로 인해 그 비리의 사건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점차 잊혀져 간다. 흑막 안에서 검은 화면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손은 그렇게 우리의 생각과 정신을 통제한다. 보이지 않는 손은 그렇게 세상을 마음대로 주무른다. 그들이 만드는 거짓과 은폐의 파장은 그칠 줄 모르고 거대해지며 우리의 의식과 행동에 은밀한 영향을 미친다. 우리의 노력은 그 거대한 파장 앞에서 한없이 미약하다. 아마 보이지 않는 손은 우리 모두를 볼 수 있고, 우리는 그들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무대 뒤편을 가리고 있는 흑막 너머에 발을 디디고자 한다. 변화가 없는 삶에 뭐라도 변곡점을 만들어내기 위해. 무대를 바꾸고 싶은 사람은 관객이 보이는 곳에 있으면 안 되니까. 모두가 당연히 옳다고 여기는 전통과 문화에 대해 한번 의심해보기로 한다. 조직과 단체의 규율에 대해 한번 더 비판적으로 생각해보기로 한다. 상급자의 명령에 무조건 복종한다는, 현재 군인 신분으로 살아가고 있는 내게 너무도 익숙해진 이 사고방식을 머릿속에서 훌훌 털어버리기로 한다. 상급자라고 해서 무조건 실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는다는 것을 무수히 보았고, 나 역시 누군가의 상급자로서 항상 옳은 결정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철저한 의식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지금이지만, 흑막을 젖히고 무의식의 세계를 들여다볼 것이다. 최선의 결정을 내리는 ‘본능’이라는 친구는 의식의 영역보다 커튼 뒤 무의식의 영역에 발을 더 깊이 담가놓고 있기에. 의식보다 몇 배는 더 거대한 무의식의 영역에서 우리는 잃어버린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꿈과 소망은 현실 앞에서 부끄러워 자취를 감춘 채 무의식의 영역 깊숙이 들어가 있으니까.


그렇게 흑막 안으로 들어간다면 우리는 깨달을 것이다. 검은 화면을 통해 보이는 그 완벽한 세상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얼핏 보이는 누군가의 완벽함은 사실 타고난 것이 아니라 피나는 노력의 결과였다는 것을. 검은 화면 속 세상은 사실 꽤 많은 편집과 포장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그동안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개인의 결함과 실수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매만지는 세상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었다. 명료하지 않은 모든 것들이 터부시 되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제는 안다. 삶의 혼돈과 고통을 경험하는 모든 과정들이 날 성장시켜주리란 것을. 애초에 명료하고 논리적인 세상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마음의 안정을 위해 세상의 불안정함을 인정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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