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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 Dec 10. 2021

잘 지내고 있어요

우리는 거짓말로 서로를 안심시키고

휴가는 언제 나오냐고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랜만의 근황 얘기 도중 동생이 어려움을 토로한다. 요즘 엄마가 많이 힘들어한다고. 툭하면 우울해하고 과거 생각하면서 자책하신단다. 엄마랑 통화해보겠다 말하고 전화를 끊는다. 동생에게서 바로 카톡이 온다. 너 시간 될 때 전화하라고. 억지로 전화하지 말고. 난 바로 엄마에게 통화 버튼을 누른다.


통화 연결음을 들으며 생각한다. 계절성 우울증이려나. 어쩌면 엄마의 고통은 그런 단어로 치부하기엔 생각보다 깊을지도 모른다. 캐나다의 어느 가수는 계절성 우울증을 치료하기 위해 특별 수술을 받았다지. 안구의 겉 막을 벗겨내서 본인이 직접 제작한 주황빛의 용액을 주입하는 수술인데, 수술은 성공적이었고 그녀는 자신의 시야에서 모든 푸른빛을 차단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앞으로 평생 주황빛 하늘과 오렌지색 바다만 보며 살아갈 것이다. 이걸로 우울감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런 건 일론 머스크 아내 정도는 되어야 할 수 있나 보다.


푸른 하늘을 없애는 방법으로 우울증을 해소하기엔 너무도 정상(?)적인 우리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잘 지내냐고 물어보니 대답하는 엄마의 말.

너무 잘 지내고 있지!

동생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지나치게 밝은 엄마의 목소리에 오히려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도 엄마의 바람에 부흥하고자 나도 밝은 목소리로 웃으며 대답한다. 다행이라고. 무슨 일로 너가 연락을 다 하냐며 엄마가 묻는다.


그렇다. 평소에 의도적으로라도 부모님께 연락을 잘 안 드리긴 했다. 한 달에 한 번 연락하면 많이 하는 거라는 내 말에 놀라던 친구들의 표정을 기억한다. 그거 불효라고 진지하게 얘기하던 그 목소리도. 나도 안다. 부모님은 내 뜸한 연락을 종종 섭섭해하시곤 했다. 부모님이 싫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새가 둥지에만 있으면 날개를 사용할 수 없다. 난 날개를 쓰고 싶었다. 하늘을 날고 싶었다. 그래서 둥지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도.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의 주인공 프로도와 샘처럼 반지를 찾기 위해 마을을 벗어나고 싶었다. 평화롭고 행복한 마을일지라도 계속 머물러 있으면 나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진정한 마을을 찾기 위해서는 지금의 마을을 떠나야 했다. 누군가의 침략 앞에서 무방비하게 당하지 않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모험을 해야 했다. 내 이기심에 대한 변명을 하자면, 고난이 필요했다.


잘 지내고 있냐는 엄마의 말에 불효자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아빠가 준 영양제는 잘 먹고 있냐는 말에 불효자는 그렇다고 대답한다. 하지만 실상이 꼭 그렇지만은 않다. 잦은 훈련과 업무, 병력 통제나 당직 근무 때문에 주기적으로 챙겨 먹지 못한 영양제는 유통기한이 지나서 버릴 수밖에 없었다. 어쩌다 욕을 먹는 날에는 찢긴 자존심을 다시 붙이느라 잠을 설치기도 했다. 정말 내 잘못이었을까 고민하면서. 부끄럽지만 때로는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하기도 하면서. 욕먹지 않기 위해 점점 예민해지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같은 배를 탄 후임들이나 용사들을 옥죄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다 너희를 위한 거라며, 정작 내가 듣기 싫어하는 말들을 남발하면서.


이 모든 스트레스와 고민들을 접어두고 나는 엄마에게 말한다. 잘 지내고 있다고. 날 향한 엄마의 걱정을 사전에 차단해버린다. 무한한 부모의 품에 조금이라도 의지하게 될까 봐. 그건 마치 링거와 같아서. 한편으로는 부모의 걱정이 내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서. 이제는 제대로 된 가이드라인을 기대하기 어려운 세상이기에. 한때 정답을 찾아다녔지만, 지금은 정답을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는 요즘이기에.


누군가는 말한다. 힘든 마음은 나눌수록 가벼워진다고. 누군가는 내가 고민이나 걱정을 얘기하지 않아서 섭섭하다고도 한다. 자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아서. 그럼 나는 대답한다. 네가 필요 없는 게 아니라, 소중해서 그런 것이라고. 힘든 일을 나누면 배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감정을 나누면 해소가 아니라 전가가 되어 화자와 청자 모두가 힘들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고민 털어놓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다만 혼자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혼자 해결하는 독립심을 기르고 싶고, 그 독립심의 반경을 점점 넓히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곧 마음 근육이라 생각해서.


잘 지내고 있다는 나의 거짓말. 걱정을 전가시키지 않기 위한 선의의 거짓말이라지만, 착한 거짓말이 과연 존재할까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안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오로지 진실만을 말하라고. 세상에 착한 거짓말은 존재하지 않기에. 나의 경우 착한 거짓말을 인정하던 사람이었다. 타인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걱정 끼치지 않기 위해 때로는 진심을 숨길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잠 못 드는 어린 아이에게, 산타 할아버지는 네가 잠을 자야 선물을 두고 간다고 타이르는 것도 지혜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착한 거짓말을 부정한다. 그러니까, 잘 지내고 있다는 나의 대답이 착한 거짓말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영화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와 샘은 마을을 떠나 반지를 찾는 모험을 하면서 행복보다 역경을 더 많이 마주한다. 그들은 반지라는 무한한 힘 앞에서 동료를 배신하는 인간들, 자식을 저버리는 인간들, 거짓말과 음해를 일삼는 인간들 아니, 어쩌면 괴물들을 만나며 고난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반지 또한 결국 파괴된다. 반지가 파괴되자 전쟁은 종결되고, 뿔뿔이 흩어져 싸우던 모두는 다시 만나게 된다. 반지를 찾기 위해 마을을 떠났던 프로도와 샘은 진정한 마을을 되찾게 된다. 그들은 모든 것이 시작한 곳으로 돌아왔지만 뭔가가 바뀌어 있었음을 감지하는데, 그건 바로 그들이 모험을 하며 얻은 모든 지혜였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겪는 모든 고난 역시 그런 지혜가 될 것임을 알기에, 나는 잘 지내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다. 그렇기에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얼마나 힘든 상황에 처해 있을지라도.


그래서 나는, 잘 지내고 있다는 엄마의 말에 슬퍼하지 않을 것이다.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은 그 어떤 힘든 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꿋꿋하게 버텨내겠다는 의지이자 선언과도 같으니까. 잘 지내고 있다는 말은 거짓말이 아닌 것이다. 잠 못 드는 아이에게 산타 할아버지 얘기를 하는 것도 거짓말이 아니다. 아이가 잠을 잘 수 있도록 마음에 평화와 안정을 심어주려는 부모님의 의도, 그것이 결국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과 다름없는 것이다. 잘 지내고 있다는 말 이면에 숨어있는 서로의 마음을 알기에, 나는 잘 지내고 있다는 엄마와 나의 ‘거짓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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