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시 30분까지 출근하기 위해서는 06시에 기상해야 한다. 지금 내 나이의 권장 수면시간은 7시간에서 9시간이라던데. 00시 30분 전에는 기어코 눈을 붙이지 않는 습성 덕분에 내 평균 수면시간은 5시간 30분을 웃돌 것이다. 인간은 잘 때 4회에서 6회 정도 렘수면을 취하는데, 주로 이때 꿈을 꾼다고 한다. 몸은 자고 있지만 뇌는 깨어있기 때문에. 마치 무겁게 눌러앉은 부동자세의 몸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식의 치열한 몸부림처럼, 렘수면 시간 동안 안구는 여러 차례 급속하게 움직인다. 깨어나려는 의식은 얼핏 한줄기 빛을 본다. 현실이라는 빛을. 하지만 그조차 온전히 깨어난 것은 아니기에, 결국 몸에 붙잡힌 의식에게 현실은 꿈의 형태로밖에 나타날 수 없었을 것이다.
책상에 턱을 괴고 느릿한 헤드뱅잉을 하며 졸고 있을 때, 버스에 기대 짧은 선잠을 취할 때 꿈을 꾸곤 했다. 수면상태가 부족한 상태에서 우리는 꿈을 꾼다. 사실 우리는 잘 때 항상 꿈을 꾼다고 한다. 단지 대부분을 기억 못 할 뿐. 하지만 일어나기 직전에 꾸는 꿈들, 렘수면의 끄트머리에서 꾸는 꿈들은 선명하게 뇌리에 남아있곤 했다. 이번에 꾼 꿈도 그런 종류의 꿈이었다.
사실 이 글의 제목은 ‘잊지 못할 악몽을 꾸었다’였다. 다만 내가 제목을 바꾼 것은, 이 꿈을 악몽으로 치부해버린다면 누군가의 인생이 실로 악몽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기억하는 악몽이 몇 개 있다. 초등학생 시절에 꾼 꿈인데, 그 꿈속에는 총소리가 난무했다.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사방엔 그 어떤 건물도 보이지 않았다. 끝없이 펼쳐져 있는 아스팔트 재질의 주차장에는 셀 수도 없는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 있었다. 나는 주차된 차들 사이에 숨어 있었다. 날아오는 총알들을 피하기 위해. 차 유리 너머로 도망치는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안간힘을 다해 뛰고 있었다. 엄마의 뒤로 총을 든 사내들이 마찬가지로 안간힘을 다해 뛰고 있었다. 목청이 터져라 엄마를 불렀던 것 같다. 엄마라는 호칭이 아닌, 이름으로. 그들은 그새 모습을 감췄다. 조마조마했다. 엄마가 총에 맞을까 봐. 총성이 허공에 메아리쳤다. 난 잠에서 깼다. 엄마가 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안방으로 달려갔다. 엄마는 거울을 보며 얼굴에 뭘 바르고 계셨다. 다행이었다.
또 다른 꿈. 아마 더 어릴 적에 꾸었던 꿈일 것이다. 집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당시 우리 집은 8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는 8층을 넘어 20층, 30층까지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는 점점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빠른 속도로 상승했다. 문 위에 적힌 층 숫자를 본다. 75, 76, 77…. 100, 200, 300…. 1000, 10000…. 그리고 무한대. 거짓말같이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측정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곳에 있다는 사실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문이 열렸고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도 높았을 것 같아서. 조심스레 눈을 뜨자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일단 저 아래에 바닥이 보였다. 바닥에는 용암이 흐르고 있었다. 뜨거운 열기가 펄펄 피어올랐고 용암 바다를 가로지르는 외다리가 좁은 폭으로 펼쳐져 있었다. 반대편 끝에 다다르기 위해 조심스레 다리를 건너기 시작했다. 절반쯤 왔을까, 누가 내 등을 확 밀었다. 놀랄 새도 없이 용암 바다에 풍덩 빠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누나였다. 근데 생각보다 용암은 뜨겁지 않았다. 나는 화난 것도 잊은 채 누나에게 여기 하나도 안 뜨겁다고, 얼른 내려오라고 말했던 것 같다. 두려움은 금방 즐거움이 되었다. 긴장이 풀리니 잠에서 깼다.
이번에 꾼 꿈은 사실 내용이 없다. 단편적인 장면밖에 없었고 그때 느꼈던 감정은 너무도 선명하고 강렬해서 하루가 지났는데도 또렷하게 기억난다. 난 거울 앞에 서 있었다. 울긋불긋한 거울의 표면 때문에 내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 거울은 또렷해졌고 난 놀라 숨을 들이켰다. 헉, 오른팔이 없었다. 아프진 않았다. 사고로부터 시간이 꽤 흐른 듯했다. 잦은 훈련 때문에 지금도 내 팔은 반팔 소매 라인을 따라 살짝 그을려 있는데, 그 경계선에 맞춰서 팔이 댕강 잘려 있었다. 낮에 자주포 폐쇄기를 닫다가 손가락 네 개가 잘렸다던 용사의 이야기가 무의식 중에 투영된 걸까. 잘린 손가락을 다시 붙이기 위해 병원에 가던 중 미처 손가락들이 든 장갑을 두고 와 헬기를 불러 그걸 병원으로 보냈다는 이야기가, 그가 느꼈을 상실의 감정이 내 꿈속에서 살아났다. 그리고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심장이 사라질 것만 같던 상실의 감정, 그건 부주의와 조급함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그간 내가 보고 겪은 사고를 생각해 본다. 며칠 전 월북사건, 친구들과 여행 중 교통사고를 당한 일, 어릴 적 동생의 팔이 부러졌던 날, 그리고 아마 평생 동안 잊지 못할 세월호 사건. 괜찮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이 미상 인원을 북으로 보냈고 동갑내기 아이들을 찬 바닷물에 잠기게 했다. 돌다리를 두드려 보지 못한 조급함이 차량을 충돌시켰고 샌들을 바로 신지 못한 동생을 하수구 턱에 걸려 넘어지게 했다. 사고는 현실이다. 내가 꾼 꿈 역시 현실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워낙 모험을 좋아하는지라 때로는 좀 더 조심히,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신중하게 살아가야 할 것 같다. 괜찮을 거라는, 될 놈은 될 거라는 그 편한 낙관이 내게 무슨 상실을 줄지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