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상과의 싸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때문에 세계가 시끄럽다. 초반에 그저 군사훈련일 뿐이라며 병력을 철수시키던 러시아는, 민간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하겠다던 러시아는 결국 삼면으로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수많은 민간인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말과 행동을 다르게 하여 야기된 혼란을 틈 타 공격을 개시하는 걸 화전양면 전술이라 부르는데, 이는 북한이 주로 사용하는 전술이다. 독재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는 국가들의 특성인가. 러시아도 이번 침공을 통해 여실히 느꼈을 것 같다. 재래전을 받아들이는 세계의 태도가 과거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아무리 러시아가 과거 크림반도를 침공한 이력이 있다 해도 이렇게 국가 전체를 대상으로 공격을 개시하는 모습은 태어나서 처음 보는 양상인지라, 내게 적잖은 자극으로 다가왔다. 그만큼 국가 대 국가의 전쟁은 우리 시대에 흔치 않은 모습이었다. 어쩌면 내가 세상사에 관심이 없어 잘 모르는 것일 수 있겠지만. 그러고 보니 중동 지역에서 벌어진, 수니파 시아파로 대표되는 이슬람 종교전쟁 역시 한동안 뉴스로 시끄럽던 기억이 난다. 내가 모를 뿐이지 어디에나 분쟁은 있었다. 사람이 죽는 일에 있어서 분쟁의 규모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뉴스로 접하면서 정말 인상 깊었던 한 장면이 있었다. 바로 부상당한 러시아 군인을 치료해주는 우크라이나 의료진의 모습이었다. 다친 러시아군이 ‘Z’ 표식이 그려진 러시아 탱크에서 내렸고, 우크라이나 의료진은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그에게 달려들어 부축해줬다. 당장 자기네 나라를 침공한 적을 도와주는 우크라이나 사람들의 모습, 그리고 그들의 손길에 기꺼이 화답하는 러시아 군을 보며 대체 이들은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 생각이 들었다.
우크라이나에 포로로 잡힌 러시아 군의 동영상이 SNS를 통해 유포된다. 그들은 말한다. 자신들도 속았다고. 우리는 그저 군사 훈련인 줄로만 알고 왔다고. 우크라이나 군의 통제 아래 포로로 잡힌 한 러시아 군인이 부모와 통화한다. 소식을 들은 부모의 목소리가 마른하늘에 날벼락 떨어진 것처럼 다급하다. 다른 나라 언어지만 목소리에 실리는 감정은 국적을 가리지 않는다.
생면부지인 그들이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고 화염병을 던지고 있다. 그렇다. 우크라이나 군과 러시아 군은 서로 싸우고 있지만 동시에 싸우고 있지 않았다. 이건 그들의 싸움만이 아니라 신념의 싸움이었다. 러시아 군은 국가통수의 명령을 수행할 뿐이고, 우크라이나 군은 자국을 지키고 독립을 추구할 뿐이었다. 다른 시공간에서 만났더라면 웃으며 인사할 수도 있었을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절망적인 시공간을 하나로 묶는 것은 바로 신념이었다. 세상을 조종하는 사람들의 마음으로부터 나온.
독재국가는 그리 오래가지 못할 것 같다. 시대의 흐름에도 뒤쳐지고 더 이상 그곳의 국민들도 우매하지 않다. 자국이 잘못했다고 목소리 높이며 시위하는 러시아 인들이 적지 않다. 푸틴의 침공도 세상 사람들 눈에는 그저 발버둥으로 보일 뿐이다. 나토에 가입하려는 우크라이나를 저지하기 위한 발버둥. 군사적 요충지를 잃지 않기 위한 발버둥. 지금 보면 시대의 파도가 러시아를 덮치고 있는 것 같다. 불안감으로부터 비롯된 폭력적인 에너지는 그렇게 세상에 표출되었고 전쟁의 모습으로 형상화되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 에너지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최전방에서 매일 북한군을 보며 지낸다. 육안으로도 보고 카메라 영상으로도 본다. 통념이 북한군을 무섭게 만들었지 사실상 그들도 우리와 다르지 않다. 군사분계선이라는 거울을 사이에 두고 그들은 우리와 똑같이 행동한다. 마치 데칼코마니처럼. 우리가 철책 점검을 할 때 그들은 흔적선 작업을 하고, 우리가 그들을 관측하는 것처럼 그들도 우리를 관측한다. 종종 막사 주변에서 농구를 하거나 수다를 떨며 시간을 보내는 그들을 보면,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공포의 감정은 이내 무력해지고 만다. 적어도 내가 보기에 그들은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안달 난 사람들이 아니었다.
신념은 우리를 지켜주지만, 때로는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하기도 한다. 어쩌면 대부분의 전쟁은 사람의 싸움이 아니라 신념의 싸움이었다. 남북전쟁도 결국은 한반도에서 벌어진 공산주의와 민주주의의 싸움이었다. 그것도 강대국들의 ‘War Game Zone’으로 전락된 모습으로. 인간의 마음에서 태어난 그 가치와 신념들은 그렇게 주변을 파괴해왔다. 마음가짐 하나가 그렇게 세상의 흐름과 형태를 바꿔왔다.
때로 우리는 여기서 일이 잘 안 풀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이런 말들을 습관처럼 내뱉곤 한다.
안 되겠다. 원산 폭격 가자.
너 빨갱이지?
원산 폭격은 6.25 전쟁 당시 미군이 공중에서 북한 원산에다가 폭탄을 두 차례에 걸쳐 집중 투하한 사건이다. 수많은 북한 주민들이 그 500톤의 폭탄을 무더기로 맞고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 사실을 두고 우리는 미국에 적개심을 품지 않는다. 북한은 우리와 신념이 달랐으니까. 언제부터 허울뿐인 신념과 국가적 상징이 개인의 목숨보다 소중했을까. 여담이지만 원산 폭격은 우리 군대에 만연했던 가혹행위를 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해당 가혹행위에 그 사건의 명칭이 붙은 메커니즘을 보면 실로 가관이다. 얼차려를 받으며 느끼는 군인들의 분노가 원산 폭격, 즉 북한을 겨냥한 공격성으로 이어지니까.
농담처럼, 때로는 우스갯소리처럼 내뱉는 그 한마디 말이 우리의 신념을 공고히 하는데 은밀히 기여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신념이라는 허상은 세상을 파괴할 힘을 지녔다. 어쩌면 우리 모두는 내면에 핵폭탄을 품고 사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놓고 보니 군인 신분으로 할 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내게 주어진 임무가 있고, 이를 위해서라도 난 총구를 계속 북한 방향으로 겨눠야 한다. 지금 내 신념은 국방의 의무를 외치고 있으니까. 하지만 적절한 거리두기 정도는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신념이 날 잠식하지 않았으면 해서. 누군가는 선동, 연설, 교육을 통해 허상을 조종할 테고, 경각심 없이 그 손길에 휘둘리긴 싫으니까. 내 마음 정도는 내가 지키고 싶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