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에 없는 곳으로 가려고 집을 나선 날

쏜애플- 서울

by 이브와 아담

우리는 꿈을 위해 살아간다. 그 꿈은 행복일 수도 성공일 수도 안식일 수도 있다. 우리는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하며 달려나간다. 등가교환.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놀이를 포기한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휴식과 잠을 포기한다. 성공하기 위해 관계를 포기하고 때로는 유혹을 이기지 못해 악마와 손을 잡는다.


예로부터 서울은 젊은이들에게 있어 꿈의 장소였다.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서울에 집을 구하고 직장을 가지고 가정을 꾸리는 것이 성공의 척도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은 지금도 있다. 내가 느끼기에 아직 적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은 만족보다는 갈망과 질투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이 자체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비판할 자격도 없다. 나 역시 갈망과 질투에 머물러 있으니. 물론 만족한다고 다 좋은 것도 아닐테다. 대부분의 가치가 이중적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만족 역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자세이지만 나태함의 자기변명이기도 하다. 적어도 한강의 기적이라는 신화가 옅어지지 않는 한 우리나라에서 이른바 ‘성공’이라는 길로 나아가기 위해선 악착같이 물불 가리지 않고 강해져야 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사회는 기본적으로 약육강식의 구조를 지니고 있으니. 서울은 이런 성공의 욕망, 질투, 경쟁, 비교, 배신, 개인주의로 점철된 공간으로 이 노래에서 다루어진다.


대한민국의 1/5에 달하는 인구가 작은 땅 서울에 오밀조밀 모여 살아간다. 그만큼 서울은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삶의 목적이자 무대이다. 성공을 위해 사람들은 많은 것을 포기한다. 누군가가 성공을 위해 가족과의 행복한 일상을 포기한다. 그대로는 어디로도 갈 수 없을 것 같아서 몇 개의 다리를 끊어놓았지만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지난의 세월들을 후회한다. 그렇게 그들은 더욱 어려워진 환경을 견디고 헤쳐나가기 위해 다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린다. 부모는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지만 아무런 연락도 오지 않는다. 그리고선 ‘원래 인생이 이런거지’라며 자신의 선택이 필연적 고통이었음을 정당화한다. 누구도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하며 이불을 끌어올린다.


성공에 다가가기 위해 사람들은 점점 이기적으로 변한다. 성공에 눈이 먼 사람들은 환경마저 변화시켜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만들고 약자들에게는 기회라는 미명 하에 현재 위치에 만족하도록 하여 계층격차를 더욱 벌려놓는다. 눈엣가시가 있다 싶으면 언론플레이를 통해 끊임없이 프레임을 씌워 신용을 낮춘다. 이런 환경 속에서 우리는 수없이 스쳐간 어떤 이에게도 먼저 손을 뻗어주거나 체온을 나누며 인사하는 법을 잊어버리고 만다. 우린 함께 울지 못하고 서로 미워하는 법만 배우다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서울에 갇혀버린다. 여기서 서울은 지도에 없는 곳의 서울이다. 우리가 가고자 했던 꿈이었을 서울은 결국 욕망이 되어 바로 옆에 있었을 행복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쏜애플- 서울병 (EP)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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