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노엄 촘스키
그동안 역사 속 민중들은 개인과 공동체의 권리, 자유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했다. 그 결과 인권이 지켜질 수 있었으며 민주주의 사회를 이룩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새천년을 바라보며 그동안의 투쟁에 걸맞는 희망찬 미래를 기대했다. 지금 우리들은 그 희망찬 미래를 살아가고 있는가? 언어학자이자 비판적 지식인인 노엄 촘스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욕심을 내려놓지 않는 이상 우리는 우리가 만들고자 했던 진정한 민주주의의 세상에서 살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과거 공산주의가 대놓고 민중의 자유와 인권을 탄압했다면 현재 민주주의 사회의 권력가들은 더 교묘한 방법으로 민중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민의 힘은 그 정당성만으로도 독재를 무너뜨리는 혁명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렇다면 현대 사회에 와서 거대 기업과 정부들은 어떻게 국민들의 감시를 피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있을까?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민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효과적인 무기는 선전이다. 부와 권력을 쥔 그들은 선전과 홍보, 문화에 교묘히 손을 써서 국민들이 소비재와 유흥에만 신경쓰도록 유도하고 있다. 촘스키의 말을 빌리면 현대 민주주의에서 민중은 참여자가 아닌 구경꾼에 머물고 있다. 우리는 선거때만 국가의 주인이고 그 이후에는 우리가 뽑은 권력에 복종해야 하는 존재이다. 권력자들이 은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 위치를 공고히 하는 동안 국민들은 집에 하나씩은 꼭 있는 텔레비전과 스마트폰, 교묘히 설계된 인터넷 문화에 빠져 진실을 보지 못하게 되기를 그들은 바라고 있다. 실제로 인터넷은 공공 자금으로 만들어진, 모두에게 개방된 시스템이라고 한다. 근데 언제부턴가 민간 기업에게 넘겨져 일반인들에게 접근이 제한되었고 그들이 설계한 시스템으로 만든 콘텐츠를 구매해서 이용할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노엄 촘스키는 민영화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사상이 많이 나타날수록 부패한 정부로 봐도 된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자신들의 권력을 과시하고 키우기 위해, 기업은 이익을 얻기 위한 모든 행동에 따르는 리스크를 국가와 국민과 분담하기 위해 상호 협력한다. 이미 국가는 거대 기업의 눈치를 본다. 법 역시 개인보다 기업에 유리하게 작동된다. 우리나라 모 회사가 공급한 가습기 살균제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적지 않은 사망자 수(약 1000명)가 발표되었을 때에도 기업에 대한 제대로 된 규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길거리 살인미수, 폭행 등에 가해지는 형벌을 생각해보면 개인과 기업에 가해지는 법의 무게가 불균형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조작된 동의라는 말이 있다. 국민을 속이기 위한 국가, 언론, 지식인들의 조작된 약속을 일컫는 말로 실제로 이런 일들은 비일비재하다. 9.11테러 당시 미국 언론은 알 카에다의 극악무도함, 테러로 인한 미국 국민들의 피해를 보도하는데 주력했다. 하지만 유명한 지식인들, 언론, 미디어 모두 알 카에다가 왜 미국에 테러를 일으켰는지, 미국이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들이 무모한 공격을 감행했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사회가 자유로울수록 선전을 통해 공포심을 조장한다고 촘스키는 말한다. 공포심은 민중 위에 군림할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다. 실제로 미국과 영국은 군사력을 과시하기 위해 외교적 방법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무력으로 해결한 적이 많다고 한다. 미국은 1986년 리비아 폭격을 미국 방송사의 시청률이 가장 높은 저녁 시간대에 맞춰 생중계로 내보냈다. 심지어 작전 중 촬영 카메라 불빛이 너무 강해 미 해군들이 불빛을 줄여달라고까지 했다고 한다. 철저히 계획되고 조작된 선전식 공격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과거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정권에 대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유일한 해결책이 있다. 국민들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고 깨어나야 한다. 민중의 힘은 그 자체만으로 설득력과 정당성이 있어서 실로 강력하다. 스스로 정당화될 수 있는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민중은 연합하여 국가, 다국적 기업들에 대하여 이 정당성을 끊임없이 확인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