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대하는 올바른 자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by 이브와 아담

한국 sf 소설을 몇 권 읽은 적이 있었다.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어디서 본 듯한 얘기인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무언가 고유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한국 sf문학이 우리나라에서 비주류인 것에는 이러한 이유가 한 몫 할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래서 사실 이 책도 처음엔 그리 기대감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로 읽어보기 시작했을땐 매 단편들마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듣도보도 못한 아이디어와 이야기들이 현실 세계를 정확히 꼬집고 있었고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며 감동 또한 놓치지 않았다.


꽤 많은 단편들이 여성으로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내분실’은 한국에서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건네고 있고 ‘나의 우주 영웅에 관하여’는 아시아 중년 여성으로 대표되는 현시대의 소수자가 세상의 시선으로부터 받는 부담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읽으면 위로를 얻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관내분실을 읽고 나서는 한국에서 어머니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제기를 해볼 부분이 있다고 느꼈다. 나 역시 엄마가 엄마이기 이전의 모습을 잘 상상해 본 적이 없다. 그 정도로 우리 엄마가 가족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에 대한 헌신으로 세상과의 끈을 놓아버린 수많은 어머니들의 아쉬움과 먹먹함은 단편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서 구체화된다. 이야기 속 할머니는 단절되어 살았던 세상과 가족을 그리워한다. 이젠 물리적으로 결코 도달할 수 없는 고독 속에서밖에 살 수 없게 되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가족과 새로운 세상에 가 있다. 사랑의 마음은 빛의 속도도 초월할 수 있는 것인가, 그녀의 마지막 말이 인상깊다.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을 정확히 알고 있어.


과학이 발달한다고 삶이 풍요로워질까? 작가는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기 위해서 첨단 기술 자체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마음가짐은 단편 ‘그 많은 순례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에서 잘 드러나있다. 진정한 유토피아란 무엇인가? 작가는 결코 불행과 차별이 거세된 공간이 유토피아라 말하진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인위적인 조치가 가해진 곳에서는 행복의 근원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만일 불행이 실존한다면 우리는 사랑의 힘으로 연대해서 이에 투쟁해야 한다고, 그것이 유토피아에 조금 더 가까운 모습일 것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인간의 본질에 대해 이야기하는 단편들도 있다. 그중 가장 인상깊게 읽은 단편은 ‘공생 가설’이다. 인간은 그간 지구에 번성했던 종들 중 유례없이 지적으로 발달하고 크게 활동반경을 넓힌 종이다. 우리가 흔히 지성, 인간성이라 부르는 인간의 특성이 사실 외계에서 유래되었다면? 인간의 고유성이 사실 인간의 것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동기부여 삼으며 살아가야 하는지 작가는 질문을 던진다. 단편 ‘스펙트럼’은 감각에 대해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자신들에게 익숙한 방식과 장비들로 현상을 분석한다. 만일 학자들에게 그러한 도구들이 모두 사라지고 새로운 환경과 상황에 맞닥뜨리게 될때 그들은 어떤 방법을 통해 현상을 분석할 것인가? 만일 그들이 접촉한 외계인의 음역대가 우리 귀에 들리지 않을 주파수이고 그들의 기록방식이 문자가 아니라 색깔이라면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대하고 다가갈 것인가? 이는 그정도로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는 타인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라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짧은 단편들이지만 각 이야기들이 본질적인 문제들을 끄집어내고 이를 대하는 바람직한 방향을 제시한다. 자신이 무슨 글을 쓰는지 명확히 아는 작가의 능력이 부럽게 느껴진다. 한국에서 흔치 않은 장르의 소설을 이렇게 재밌게 읽을 수 있게 되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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