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원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by 이브와 아담
인생의 첫 번째 리허설이 인생 그 자체라면 인생에는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 인생은 완성본 없는 밑그림이다.

우리 인생은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자식으로서 처음 살아보고 학생으로서 처음 살아보며 연인으로서도 처음 살아보고 부모로도 처음 살아본다.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하면서 인생을 살아간다 한들 미래의 작은 변수 앞에서 우리는 무력하다. 결국 우리는 허무주의의 늪에 빠진다.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은 종종 현기증에 빠진다. 여기서 말하는 현기증은 성공과 실패, 가벼움과 무거움, 아름다움과 추함 등 상반되는 양 극단이 차이가 없을 정도로 격차가 좁혀질 때 느끼는 자기파괴의 욕구이다. 스탈린의 아들이 정치범으로 수용되었을 때 아버지의 높은 권위가 자신이 변기를 더럽게 쓴다고 주변 죄수들로부터 치욕스러운 말을 들었을 때의 추함과 겹쳐졌을 때 자기혐오를 이기지 못해 전기 철조망에 달려가 자살했던 것처럼.


이러한 허무한 현기증을 나도 어릴 적 느낀 적이 있었다. 이집트 피라미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던 중 시체를 영구히 보존하기 위한 미라를 보며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숨쉬는 모든 행동이 언젠가는 멈추고 삶과 죽음의 경계가 사후세계의 암흑 속에서 허물어져 당시 멀쩡하던 스스로의 삶 자체가 부질없게 느껴지며 죽음 이후 나의 몸 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아예 없던 상태로 되어버릴 것 같은 아득한 현기증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나의 존재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볍게 느껴지던 순간이었다. ‘인간이 느끼는 가장 오래된 감정은 공포’ 라 말하던 H.P. 러브크래프트도 분명 이런 현기증을 염두에 두고 공포를 정의했을 것이다.

골콩드- 르네 마그리트

이러한 현기증은 비단 삶과 죽음뿐만이 아니라 살아가며 느끼는 다양한 감정들 속에서 나타난다. 정실부인 테레자를 두고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면서 그녀에 대한 동정심과 미안함으로 끊임없이 후회하는 토마시, 토마시의 바람기가 미치도록 싫지만 질투 없이는 그를 사랑할 수 없는 테레자, 소련의 핍박을 받는 체코의 국민이면서도 공산주의 반대 시위가 허울뿐이라 생각해 혐오감을 느끼는 사비나, 기술직으로 현실을 살고 있으면서도 역동감에 눈이 멀어 허울뿐인 시위를 생동적인 진정한 현실이라 착각하는 프란츠, 이들의 자기혐오를 우리 또한 삶 속에서 느끼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의 원죄이기 때문이다.

피레네의 성- 르네 마그리트

우리의 원죄라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작가는 인간과 동물의 근본적인 차이점에 주목한다.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다른 동물이 가지지 않는 강한 감정이 있다면 그것은 수치심일 것이다. 발가벗은 몸, 생리활동, 생식활동, 인간은 이를 부끄러워하며 타인에게 보여지지 않도록 최대한 은폐한다. 하지만 동물에게는 이런 면에 있어 수치심을 찾아볼 수가 없다. 그래서 작가는 성경을 근거로 이렇게 해석한다. 인간은 천국으로부터 추방당했지만 다른 동물들은 그렇지 않았다고. 그렇기 때문에 인간들은 서로 사랑하면서도 의심하고 질투하고 오해하며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벌을 받았지만 반려견, 반려묘들에게는 그러한 질투와 오해 없이 온전히 사랑을 베풀 수 있다. 그들과 언어적인 소통이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타인에게 베푸는 선의는 역학 관계에 의해 온전히 그 목적이 전달될 수 없다. 인간의 참된 선의는 아무런 힘도 지니지 않은 이들에 대해서만 순수하고 자유롭게 베풀어질 수 있다. 마치 동물들에게 베푸는 것처럼. 동물을 기계에 비유한 데카르트의 오만은 인간의 근본적 실패이다.

판도라의 상자를 연 인간은 다양한 도구와 언어, 아이디어를 통해 끊임없이 종의 발전을 이루어왔지만 끊임없이 불행으로 침잠했다. 과학 기술은 지구를 파괴시킬 수도 있는 멸망 무기인 핵폭탄을 만들었고 더 올바른 삶을 위한 정치적 신념에서 생긴 갈등이 세계 대전을 촉발했다. 인간은 가장 발전했지만 가장 불행했다. 작가 밀란 쿤데라는 인간의 이러한 원죄의 역사 속에서,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치는, 마치 우리들처럼 모순적이고 나약한 등장인물들을 내세워 비록 불행한 결말을 맞을지라도 이들이 삶의 과정속에서 발견할 그 무엇인가를 포착하고자 시간의 흐름을 불규칙적으로 변형하고 적극적으로 이야기 속에 개입하여 실험적인 작품을 완성한다.


인간의 원죄는 삶이 필연적으로 고통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이러한 슬픈 운명 속에서 우리는 이 고통을 어떻게 견디며 살아가야 하는가? 바로 고통을 인정하는 것이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만나 부딪히는 것을 불가사의하게 여기지 말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라 해도. 육체의 주름, 손가락 지문의 모양이 모두 다르듯 인격 역시 모두 다르다.

인간의 삶은 마치 악보처럼 구성된다. 미적 감각에 의해 인도된 인간은 우연한 사건을 인생의 악보에 각인될 하나의 테마로 변형한다. 그리고 작곡가가 소나타의 테마를 다루듯 그것을 반복하고 변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다.

젊은 시절 삶의 악보는 첫 소절에 불과해서 사람들은 그것을 함께 작곡하고 모티프를 교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원숙한 나이에 만난 사람들의 악보는 어느 정도 완성되어서 하나하나의 단어나 물건은 각자의 악보에서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기 마련이다.

개개인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는 삶의 고통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같다면 나만 모난 사람이고 문제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게 흘러가지 않는다. 누군가는 ‘공허함’을 외롭고 허무하고 쓸쓸한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누군가는 온전한 자유와 해방으로 생각할 수 있다. 특정 사물이나 가치관에 대해 우리는 결코 완전한 공통된 합의를 끌어낼 수 없다. 원죄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서 우리는 이런 다양성을 긍정적이고 역동적인 무엇으로 인식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삶을 회피하지 않고 마주해야 한다. 삶의 흐름에 이끌려가지 않고 삶과 춤을 추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여러 우연들에서 고통에 대한 위로를 찾아야 한다. 마치 우리가 우연을 보면 신기해하고 놀라워하는 것처럼. 그 우연은 좋은 것일 수 있고 나쁜 것일수도 있다. 마치 사랑처럼 생동감있고 율동적인 것이다.

우연만이 우리에게 어떤 계시로 나타날 수 있다. 필연에 의해 발생하는 것, 기다려 왔던 것, 매일 반복되는 것은 그저 침묵하는 그 무엇일 따름이다. 오로지 우연만이 웅변적이다.

사랑은 은유로 시작된다. 달리 말하자면, 한 여자가 언어를 통해 우리의 시적 기억에 아로새겨지는 순간 사랑은 시작되는 것이다.


이 시대에 쓰여진 많은 명작 소설들이 그렇듯, 이 소설 역시 인간의 원죄에 의한 징벌인 전체주의를 경고한다. 독일어로 ‘키치’라는 말이 있다. 이 단어의 뜻은 ‘존재에 대한 확고부동한 정의’이다. 우리는 특정 사물이나 가치관에 대해 완전한 공통된 합의를 이끌어낼 수가 없다. 하지만 이 ‘키치’는 그것을 이끌어낸다. 정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부모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 연인의 낭만적인 사랑, 스타의 화려한 인생. 공산주의는 인간들의 기억 속에 뿌리내린 이런 핵심 이미지들을 활용하여 국민들에게 감정적으로 호소한다.


하지만 인생과 인간관계에 있어서 이러한 ‘키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종교에서 인정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는 창조의 부산물인 배변처럼, 삶에 대한 이상과 희망에는 형이상학적인 불화가 항상 존재한다. 마치 정원에서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 이면에 한 명을 따돌리고 폭행하는 모습이 있고 연인의 낭만적인 사랑 이후에 눅눅한 권태가 기다리고 있으며 스타의 화려한 삶 이면에 수치심과 공황장애가 도사리고 있는 것처럼. 이런 불편한 진실을 온전히 배제하고 긍정적인 부분만 극대화하여 국민들을 유혹하는 것이 공산주의의 ‘키치’이다.


하지만 애석하고 슬픈 사실은 모든 인간의 유대감이 오로지 이 ‘키치’에 근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이루어질 수 없는 이러한 키치적 소망을 내면에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토록 인간의 원죄에 얽히고 설키어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놓여 있다. 이를 견디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인정하며 아프더라도 삶과 적극적으로 부딪혀 다양한 우연을 파생시켜 인생을 풍요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가 걱정이라는 무거움을 내려놓고 한층 더 기분좋고 가볍게 살아갈 수 있다면 그나마 행복이라는 것을 조금은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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