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

by 이브와 아담

평소 목가적인 성격을 가졌다고 평가받는 사람으로써 나는 개인적으로 카리스마가 갖고 싶었다. 사람은 자신에게 부족한 요소를 가진 사람들을 동경한다고 하지 않는가. 특유의 카리스마로 원하는 것을 확실히 얻고 목표하는 바를 쟁취하는 그들의 근성이 부러웠다. 아마 그래서 장교로 임관하지 않았나 싶다. 나에게 부족했던 부분을 한 번 키워보기 위해. 기꺼이 스스로를 바꿀 고통을 감내해보기 위해 마음 바뀌기 전에 재빨리 ROTC를 신청했고 다달이 준비하여 동기들과 합격의 기쁨을 나눴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하지만 나를 바꾼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때로는 나의 가치관을 부정해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틀 전, 대대 당직 근무를 선 날이었다. 원래 주말에는 대대장님 등 지휘관 분들이 용사들이 지내는 막사에 잘 방문하지 않으시지만 그날은 무슨 일이 있으셨는지 방문을 하실거란 얘기가 있었다. 카리스마 넘치기로 유명한 분이셨던 당일 당직사령님은 한 시간 뒤 생활관 청소상태 검사할 것이라 말씀하셨고 나는 용사들에게 관물대와 침상 통일 및 생활관 청소하라고 지시, 이를 마친 생활관은 쉬고 있으라고 전파하였다. 한 시간 뒤 당직사령님이 검사하러 오셨고 용사들을 보더니 그 자리에서 매섭게 나에게 소리를 지르셨다. 인원들이 다 자고, 누워있고, 이게 검사를 받는 자세냐며 그분은 화를 내셨고 나는 일과시간도 아닌 주말인데 대체 생활관 정위치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예정에 없던 사항을 가지고 큰소리를 치시는 이유가 무엇인지 어이가 없어서 그냥 청소상태만 검사하는 줄 알았다며 그분이 보시기에 일종의 ‘말대답’을 했다. 그 말대답은 그분의 심지를 태우는 불이 되었고 그날 난 하루 종일 용사들을 데리고 생활관, 식당, 화장실, 전투물자창고 등을 당직사령님의 마음에 들 때까지 반복해서 청소시켜야 하는 일종의 벌을 받았다.


전에도 말했지만 용사들은 코로나 때문에 외박, 휴가를 오랫동안 나가지 못했고 밀린 훈련들을 한번에 수행해야 하는 버거운 나날들을 보내 지쳐 있는 상태였다. 그들을 통솔하며 함께 생활했기에, 비슷한 부분으로 지쳐 있고 그래서 그동안 미안한 마음도 있었기에 계속 청소하게 시키는 것은 괴로운 일이었다. 이들을 배려하기 위한 나의 행동이 결국 이들의 휴식시간을 빼앗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속에서 올라오는 미안함과 분노의 울분을 꾹 삼키며 난 용사들에게 다시, 또 다시 청소하라고 지시했다. 주말의 휴식으로 오랜만에 찾아볼 수 있었던 그들의 행복한 미소가 사라지는 것을 보며.


하지만 당직사령님은 그날따라 호락호락하지 않으셨다. 그분이 용사들을 배려하지 않는 모습을 찾는 것은 너무도 쉬웠다. 물론 그분은 상급 지휘관이라 용사들의 고충을 나만큼 직접 알진 못하셨기 때문에 이해는 할 수 있었다. 또한 그분도 진급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 대대장님께 잘 보여야 하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주말이었다 한들 용사들을 시켜 청소를 지시하는 것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그분이 하급자들을 대하는 방식, 군말없이 반드시 따라야 하는 상명하복의 존재로밖에 보지 못하는 모습은 점점 더 내가 군대에서 장기복무를 하긴 힘들겠다는 생각에 확신을 더해 주고 있었다. 그분은 용사들을 작전을 위한 도구 그 이상으로는 결코 보지 못하는 듯 했다. 나는 나 또한 그렇게 될까봐 두려웠다. 사람들의 가능성을 보지 못하고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누군가를 도구적으로 사용하는 그 이기적인 사고방식에 물들까봐 두려웠다. 목표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계급이라는 얄팍한 자존심으로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휘어잡아 강제로 명령을 따르게 만드는, 그리고 그것이 군에서 원하는 군기가 잡힌 이상적인 상태이며 진정 군대가 생각하는 카리스마라면 난 내가 원하던 것을 얻기 위해 올바른 곳에 온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훈련을 앞둔 용사들의 휴식시간을 뺏고 당직실에 들어와 천장만 멍하니 보고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용사 두 명이 다급하게 뛰어 오더니 소리쳤다. 간질환자가 발생했다고. 난 재빨리 응급의료센터에 연락하고 당직사령님을 현장으로 불렀다. 해당 용사는 계단 발치에 누워 눈을 뒤집고 떨리는 몸을 주체하지 못해 근육이 경직된 상태였다. 군의관, 운전병이 구급차를 몰고 왔고 아무것도 조치할 줄 모르던 나는 들것을 들고 용사를 옮기며 천천히 숨 쉬라고, 괜찮을 거라고 위로해줬다. 그 용사는 내 말을 알아듣지 못했을 것이다. 오로지 그의 요동치는 눈빛만이 말해주고 있었다. 또 사고쳐서 미안하다고.


그냥, 아무 상관도 없던 두 상황이었지만 괜히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오지 않았다. 계급으로 주장의 정당성을 입증하려던 당직사령님, 그리고 하급자들 입장에서는 그놈의 군기 때문에 할 말을 하는 것도 잘못으로 취급될 수 있는 군대의 환경이 안타까웠다. 군기라는 것이 전시에 최고의 효율성으로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평시 군인들이 지녀야 할 정신상태일 텐데 전쟁이 70년동안 보류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군기가 상급자들이 하급자들을 더 쉽게 입맛에 맞게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근거, 진리가 되고 있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는 위험하다. 성급한 진리는 위험할 여지가 다분하지 않은가.


간질 증세를 보이는 용사를 태우고 나간 구급차는 설상가상으로 교통사고까지 당했다. 이정도쯤 되니 내가 꿈을 꾸는건가 싶었다.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도 마치 마신 것처럼 정신이 몽롱해졌다. 실망감과 분노, 충격으로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간신히 붙잡고 모두가 잠든 밤 다시 당직근무실로 돌아와 숨을 돌리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불침번이 와서 말하길 한 용사가 화장실에 볼일을 보러 들어간지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나오지 않는다 하여 한번 가보셔야 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이번 당직은 내 군생활을 통틀어 가장 기억에 남는 탑 3 안에 들 것이란 다짐(?)을 하며 나는 해당 용사를 찾으러 화장실에 갔다. 용사는 복통을 호소했고 나는 따뜻한 물을 준비해 그를 데리고 당직근무실에 앉혔다. 입대한지 한달 밖에 되지 않은 이병이었다. 왜 복통이 생긴 것 같냐고 묻자 그는 내일 실시하는 훈련, 무서운 선임들 등 아직은 새로운 군대문화에 적응이 되지 않아 긴장된 탓에 체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몇 살이냐고 묻자 26살이란다. 나보다 두 살 형이다. 요즘 코로나 때문에 밖에서 할 게 없어 차라리 입대하는 20대 후반 사람들이 꽤 있긴 하다. 나는 그 이병이 웃프고 귀여워서 두 손을 잡고 손 마사지를 해주기 시작했다. 인터넷에서 봤는데 손에는 모든 장기가 있대. 엄지와 검지 사이를 누르면 변비에 좋고 가운데 손가락 끝을 누르면 뒷목이 개운해진다나. 나는 오늘 너덜너덜해진 내 마음을 다시 이어붙이려는 심정으로 그의 손을 정성스레 마사지해줬다. 늦은 밤 낮선 곳에서 긴장하여 잠 못드는 그 형을 위로해주기 위해. 솔직히 그 형을 위해서라기보단 아팠던 내 마음을 좀 위로해주고 싶어서였지만. 조용하고 긴장하던 그 형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오늘 하루 메말랐던 나의 마음에도 꽃이 피는 것 같았다. 그리고 완전히 인정해버렸다. 난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되긴 글렀다. 사람 바뀌는게 쉽지 않다는 옛 말이 사실이었구나. 그래도 한 가지 배운 건 있다. 카리스마 있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나의 선의로 인해 누군가가 나에게 호감을 느끼는 것에 나는 더 행복하다는 것을. 정말로 인생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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