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의 수원지

by 이브와 아담

내가 브런치에 잘 하지 않는 얘기인 정작 나에 대한 이야기. 오늘은 뜻깊은 마음을 선물받은 날이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기려 한다.


나는 이제 한달 뒤면 중위로 진급하는, 그러니까 현재는 중위(진) 신분으로 군대에서 장교로 임무수행을 하고 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군생활을 시작한지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우리는 대대장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위기에 빠져 있다. 코로나 때문에 용사들은 오랜 시간동안 외출외박, 휴가를 나가지 못해 불만과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상태이고 간부들 역시 지연되는 훈련들을 한 번에 몰아서 해야 하는 괴물같은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부대의 부사관 분들도 장교 간부님들의 일방적인 통제에 불만이 쌓인 상태이다. 오늘 저녁 일일결산 때는 일부 간부님들이 포대장님의 훈련 계획 브리핑을 대놓고 건성건성 듣는 태도를 취해 분위기가 험악해질 뻔했다.


나는 MDL 이북 북한군을 감시하는 관측장교로 전방에서 임무수행하다 이틀 전 대대 주둔지로 복귀한 상황에서 적응 안되는 분위기를 감내하며 홀린 듯이 하루를 보냈다. 전날 잠도 제대로 못 자서 그런지 정신은 몽롱했다. 나를 포함해서 부대 내의 모든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여유가 사라진 상태였다. 농담이 아니라 모두가. 장교와 부사관들은 의견충돌이 심했고 나는 중간자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포대장님, 그리고 일방적으로 살인적인 훈련 스케줄을 통보받아야 하는 부사관 분들이 전부 이해가 가는 상황이라 그냥 울적하기만 했다. 나 역시 이틀 뒤 일요일 당직으로 꼴딱 밤을 새고 그 다음날인 월요일 아침 바로 훈련을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불만이 쌓였고 이를 어디에 표출해야 하는지도 몰라 마음의 여유가 사라진 상태였다.

같은 부대의 부사관분들 중 장난기가 유난히 심하신 분이 계신다. 현재 내가 근무하기로 한 이틀 뒤 일요일 당직근무를 원래는 이분이 하셔야 했는데 이분은 그 다음 날 조종수 임무수행을 해야 해서 상대적으로 훈련 간 덜 비중있는 임무를 수행하는 내가 대타로 근무를 서게 되었다. 올해 사랑스러운 둘째 따님을 얻으셔서 매일 1시간씩 일찍 퇴근하는 육아시간을 명령받은 상태인데도 그분은 바쁜 스케줄 때문에 매일 부대 간부들과 함께 정시퇴근보다 늦게 퇴근하신다. 대부분의 다른 사람들이었으면 불만을 가지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었는데도 웃음을 잃지 않는 그를 보며 난 가끔 예민해질 때가 있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반성한다. 모두가 바쁜 훈련 스케줄 때문에 원하지 않는 파도의 흐름에 몸을 맡기게 되었고 대부분 예민해져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가 내미는 선의의 손길은 나를 부정적인 생각 감옥에서 빠져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누군가에게 섬김받고 싶다면
먼저 섬겨라.



훌륭한 누군가로부터 들은 말이다. 물줄기가 길을 만들어 더 빠르게 흘러가듯 우리의 생각도 길을 만든다. 한 번 만든 길에 익숙해지면 그것은 습관이 된다. 이기적인 사소한 행동들의 반복이 결국 자기중심적인 사고를 형성하는 것처럼. 마치 요 며칠 간 부대 내 우리들처럼. 이 물줄기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습관의 길은 생각의 물결에 의해 뇌속에 점점 침식되어 깊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물줄기를 한 번 줄여보기로 결심했다. 습관의 길을 바로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에. 내 위주가 아닌 상대방 위주로의 사소한 선의를 반복해보자. 선의의 사소한 반복. 물줄기를 바꿔보기 위한 부담없는 시작. 코로나 때문에 오랫동안 휴가도 나가지 못하고 훈련을 앞두고 있는 관측반 용사들이 힘들어하면 쉬게 하자. 혹여 그것이 꾀병이더라도. 꾀병이라도 부리지 않으면 고난 속에서 숨쉴 수 없을지도 모를 그들의 고충을 이해해주자. 물론 무조건 허용해주는 건 안되겠지만 나의 진심을 한번 보여주자. 맛있는 음식들도 손에 쥐어주고. 마음 속 사랑의 크기를 한 번 키워보자. 이분에 의해 변화하는 나의 모습처럼 나도 누군가에게 물줄기의 시작점, 선의의 수원지가 되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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