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떻게 숭고해지는가

무기여 잘 있거라- 어니스트 헤밍웨이

by 이브와 아담

우리는 완전을 꿈꾸지만 불완전하다. 우리는 타인을 사랑하지만 때로는 의심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며 가끔은 두려워서 다가가지 못한다. 짧은 인생이지만 나 역시 지금까지 살아보니 고통은 피할 수 없는 문제였다. 고통은 회피해도 고통스럽다. 맞서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에라도. 마음의 여유가 없을 때는 자존심이라는 풍선이 분노의 입김에 의해 더욱 팽창하여 평소 같았으면 그냥 넘어갔을 문제에도 예민하게 반응하고는 한다. 바다와 같이 한없이 넓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지만 아직 그러기엔 내 그릇은 크지 않은 것 같다. 난 아직 숭고하지 못하다. 어떻게 하면 숭고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 는 헤밍웨이가 실제 군 복무하던 시절을 바탕으로 쓰인 자전적인 이야기다. 때는 한창 세계 1차대전, 대부분의 사람들이 큰 고통을 겪은 시기였다. 유례없는 역경의 시기였기 때문에 길이길이 남을 명작 소설들이 많이 발표되었다. 브런치에 올린 글들만 해도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그리고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우리는 삶에서 고통을 배제시킬 수 없다. 세계 1차대전 당시 사람들은 이를 절절히 느꼈을 것이다. 우리가 고통으로부터 절대 벗어날 수 없다면 이를 견뎌야 하고 견디기 위해서는 방법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위에 언급한 세 소설은 이에 대해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바로 고통은 개인을 성장시킨다는 것이다. 우리가 숭고해지기 위해서는 고통을 마주하고 ‘극복’해야 한다. 니체의 말처럼 ‘스스로를 죽이지 않는 모든 것은, 그 개인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아마 작가 헤밍웨이 스스로가 투영되었을 소설의 주인공 헨리는 신앙심이 없었고 인간을 믿지 않았으며 진정한 사랑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군인이었다. 그러한 사람이 전쟁에서 부상을 당한 후 병원에서 캐서린이라는 간호사를 만난다. 그는 사랑을 믿지 않았기에 그녀에게 별로 관심이 가진 않았지만 그저 전쟁의 어두움에서 벗어나고 싶었기에 만남을 이어가게 된다.

“날 사랑해요?”
“그럼요.”
“저번에 날 사랑한다고 말했잖아요.”
“맞아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는 거짓말을 했다.

모든 소중한 만남이 사소한 것에서 시작되듯 그들은 만남을 지속하며 서로에게 호감을 가진다. 그렇게 헨리는 다시 전선에 투입되고 전쟁의 혹독한 참상을 목격하게 된 그는 캐서린이라는 평화의 품을 그리워한다. 헨리가 보고 겪은 전쟁은 누군가의 업보가 무의미한 신의 장난이었다.

소위 선언문에서 곧잘 볼 수 있는 ‘영광스럽다’고 하는 말들은 전혀 신성하지 않고 의미없는 말들이다. ‘숭고한 희생’은 그저 시카고의 가축 도살장에서 일어나는 일과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

‘영광’, ‘희생’과 같은 수식어들로 군인들에게 영웅의 칭호를 붙이는 사람들이 바로 전쟁을 일으키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헨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정치적 신념 따위에서 벗어나 정말로 중요한 것을 되찾고자 한다. 그는 고통을 겪었기에 비로소 소중한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전에는 믿지 않았던, 사랑의 존재이다.


헤밍웨이는 이 소설을 두고 자신이 쓴 ‘로미오와 줄리엣’이라 소개한다. 하지만 이 연애소설은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운명적인 사랑 이야기가 아니다. 사랑을 믿지 않던 두 사람의 가벼운 만남이 가끔은 삐그덕거리고 이상적이지 않더라도 기어코 인연을 운명으로 만들어나가는 이야기다. 운명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연을 운명으로 만들어나가는 것, 그것이 바로 헤밍웨이가 정의하는 사랑이 아닐까 싶다.

“난 범죄자가 된 것 같아. 탈영을 했잖아.”
“제발 이성적으로 생각해요. 탈영이라니요. 고작 이탈리아 군대였는데.”
“당신은 좋은 사람이야.”

우리가 겪는 고통은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일깨워주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를 더 강하게 만들어준다. 고통을 견디는 방법을 알고 싶다면 고통이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통해서 배웠고 현재 군 복무를 하고 있는 입장에서 꽤 위로가 되었다. 덕분에 고통을 더욱 의연하게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하늘에는 잔뜩 낀 구름 사이로
해가 나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하지만 주의해야 할 것은 우리가 고통을 의연하게 마주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결코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헨리가 전쟁을 피해서 탈영해 캐서린을 만나 행복을 누리는 것이 영원할 수 없는 것처럼. 소설 결말부 그녀는 출산 후 과다출혈로 사망한다. 설상가상으로 그녀가 10개월동안 품고 있던 아이도 출산 한 달 전에 이미 탯줄이 목에 감겨 질식한 상태였다. 때로는 우리가 희망을 가지기에, 해를 볼 줄 아는 존재기에 우리의 고통은 가끔 견디기 힘들 정도로 참혹한 데가 있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고통을 겪었기에 그는 절망을 견딜 수 있는 의연함을 갖추게 된다. 사랑을 믿지 않았던 그는 전쟁을 통해 사랑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비로소 희망을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주변 전우들과 캐서린이 죽는 고통스러운 신의 장난을 마주하였음에도. 그는 비록 구름 사이로 해를 보지 못하였지만 우중충한 비를 맞으며 캐서린과 아들의 시체를 병원에 남겨두고 다시 또 다시 의연하게 고통으로 가득 찬 세상 속으로 전진한다. 그렇게 그는 숭고해진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