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입자 발생

우리 삶의 침입자

by 이브와 아담

나름 부대에서 정신없이 살다가 맞이하게 된 나흘 간의 연휴는 나에게 큰 선물로 다가왔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선물은 사람들의 새로운 모습들을 발견한 것이었다. 바쁜 일정 속에서 업무로만 만나고 교류하던 사람들과 여유로운 환경 속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면서 그들(특히 상급자분들)의 새로운 모습들, 인간적인 모습들을 마주하게 되었다. 바쁜 업무 속에서 언성 높이고 배려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것만 같던 사람들이 여유로운 연휴 속에서 돌이 갓 지난 자녀들과 영상통화를 하며 사랑스러운 애교를 부리시고, 와이프와 저녁 데이트 약속이 있다고 일찍 자리를 뜨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저분들도 누군가의 듬직한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생각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그리고 그 신선한 충격은 현재 내가 있는 곳을 더 사랑하게 만들 수 있었기에, 연휴가 주는 선물이라 할 수 있겠다. 별 사건 없이 편안한 휴식 취할 수 있었기 때문에 그 감사한 마음 계속 유지하려고 했는데, 일이 터졌다. 부대에 침입자가 발생한 것이다.

군사보안사항에 위배되지 않는 시설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부대 안에 운동시설이 한 군데밖에 없어서 점심을 먹고 선배님과 운동을 하러 막사로 가던 중 행정실 문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어디서 굴러들어온 고양이인가 보다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갈 길 가려했으나 울음소리가 예사롭지 않았다.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울음소리가 아니라 맞이하는 울음소리였다. 고민하다 내가 조금 다가가자, 아니나 다를까 그 녀석은 겁도 없이 나를 향해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


본래 길고양이라는 동물은 마주치면 누가 일시정지 버튼이라도 누른 듯이 동시에 멈춰 누가 먼저 움직이나 긴장하며 서로의 동태를 살피다가 그 모습이 귀여워 다가가면 얼음 땡 꼬리가 빠져라 도망가는 존재가 아니었던가. 마치 사람 깨무는 법을 알게 된 참새를 마주친 것처럼 덜컥 두려움이 들기 시작했다. 허연 송곳니 두 개를 드러내며 위풍당당하게 다가오는 그 녀석의 모습을 보며 동네에서 심심풀이로 길고양이를 놀래키던 어릴 적의 철없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그동안 내가 미안했어. 제발 다가오지 말아줘. 뒷걸음질을 쳐도 지겹게 다가오는 그 녀석을 보며 우워워하는 내 모습을 보고 선배님은 무서워하지 않아도 된다며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고 그 고양이를 쓰다듬기 시작했다. 고양이는 인연의 축복을 만끽하려는 듯 온몸으로 선배님의 품을 파고들었다.


송곳니가 너무 큰데,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지켜보다 살금살금 다가가 고양이 앞에 쭈그려 앉았다. 고양이는 고민 없이 다가와 눈을 감고 내 다리에 머리를 대고 비비기 시작했다. 가까이서 보니 다른 길고양이들과 달리 몸이 꽤 컸다. 피엑스 음식 많이 먹었나 보네, 선배님이 낄낄거리며 말씀하셨다. 사람 음식 많이 먹었더니 둔해진 건가, 강아지 같은 고양이를 마주치니 반가운 마음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해지기 시작했다. 그 고양이가 우리 때문에 날카로운 동물적 본능을 상실한 것 같아서. 낯선 이를 경계하고 근육의 긴장을 늦추지 않는 그 동물적 본능이 그들만의 생존 방식이었는데 자연에 가하는 우리의 인위적인 조치가 그들을 약하게 만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우리를 편하고 강하게 만드는 것들은 동시에 우리를 불편하고 약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책, 모니터 화면 등의 수단을 통해 멀고 거대한 세계를 보고 배울 수 있게 되었지만 당장 눈 앞에 있는 것이 무엇인지 보는 능력은 약해졌다. 벽돌 귀퉁이에 핀 꽃, 실낱같은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볼 줄 알아야 할 텐데, 점점 그러지 못하게 될 것 같아 마음 한 켠이 쓸쓸해졌다. SNS 상에서 보는 다양한 사람들의 화려한 삶은 어쩌면 우리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불만으로 느끼기 쉽게 만들었다. 또한 책 대신 영상을 보며 우리는 이야기를 생생히 볼 수 있게 되었지만 동시에 꿈꾸고 상상하는 것을 어려워하게 되었다. 우리의 감각을 대신 할 것들이 있기에.


문득 고양이 녀석과 단 둘이 손 잡고 야생 그 자체의 공간에 던져지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우리의 잃어버린 본능을 되찾기 위해. 소중한 것들을 발견하기 위한 감각을 되찾기 위해. 미안해. 부대에 불시에 방문한 침입자를 끌어안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고양이는 여전히 눈을 감았고 마치 웃는 것 같았다. 그래, 넌 행복하구나. 그거면 됐다. 언젠가 너의 본능을 일깨워줄 누군가가 나타나길 빌게. 너의 그 멋진 송곳니를 썩히지 않고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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