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by 이브와 아담

아빠. 나에게 가깝고도 먼 존재인 아빠. 나 어릴 땐 아빠가 싫었어. 아빤 일만 보고 살았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아빤 앞만 보고 달렸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가끔씩 옆을 보지 않는 아빠가 섭섭했어. 어릴 적 내가 보고 싶어했던 길가의 꽃을 외면하고 잡히지 않을 별로 끌고 갔던 아빠 때문에 속상했어. 내가 보고 싶어하던 꽃을 그저 찰나의 아름다움, 곧 소멸할 무엇으로밖에 여기지 않아서. 날 인정해주지 않는 것 같아서. 치기 어린 풋내기로밖에 여기지 않는 것 같아서. 마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도 있는 것처럼, 난 아빠가 싫었어.


내가 느꼈던 아빠 인생은 달리기야. 살아남기 위한 달리기. 아무리 추워도 아빤 매일 새벽 한결같이 체육복을 입고 운동화 끈을 꽉 조이고 나가서 달렸어. 우리 가족이 아늑한 침대 속에서 따뜻하게 자는 동안. 그리고 새벽 달리기를 마치고 나면 항상 먼저 내 방에 와서 창문을 활짝 열었지. 난 눈살을 찌푸리고 투정을 부렸어. 살을 에는 추위가 내 몸을 에워싸는 느낌이 싫어서. 내 꿈을 깨우는 현실의 감각을 인정하기 싫어서. 아빤 때로는 나의 눈치를 보며, 때로는 무자비하게 그 추운 감각을 일깨워주곤 했어. 침대 안에만 있지 말고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그 생존의 감각을.


그래도 한결같은 아빠가 부러웠던지, 종종 아빠와 함께 달리러 나가곤 했어. 한창 혼란스러웠던 교복입은 풋내기는 아빠의 그 꾸준함과 우직함을 갖고 싶었거든. 종종 난 새벽에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리고 천근만근 몸을 이끌고 아빠와 함께 가시밭의 추위를 달렸어. 아빠와 조금은 더 가까워지는 것 같아서 좋았지만 아빠와 같은 길을 걷는 것 같아서 싫었어. 안전한 길, 표준의 길, 정석의 길. 아빠가 원하던 ‘별’을 얻기 위한 길. 그 길 자체가 나쁜 길은 결코 아니었지만 ‘꽃’을 보기 위한 길을 가뿐히 무시해버렸기에, 단지 그 이유로 싫었어.


아빠 사실, 그 꽃은 ‘낭만’이었어. 난 낭만이 없는 아빠가 싫었어. 어떠한 표현도 없는 무뚝뚝한 아빠가 싫었어. 엄마한테 꽃을 선물해주지 않는 아빠가 싫었어. 엄마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아서 싫었어. 취미가 없는 아빠가 싫었고 엄마의 발걸음에 맞추지 않고 무작정 뛰는 아빠가 싫었어. 대체 그 별이 뭐길래. 잡히지도 않을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저 예쁜 꽃들에 눈길 하나 없는지.


아빠 기억나? 아빤 지금도 내가 알고 있을지 모를거야. 아빤 힘든 일이 있으면 절대 표현 안하거든. 나처럼. 사실 엄마한테 들은 얘기야. 아빠가 울면서 오밤중에 동네를 수 차례 달렸던 일. 어린 나이에 꽤 놀랐어. 그토록 무뚝뚝하고 표현력 없는 아빠가 눈물을 흘리며 달렸다니, 그것도 깜깜한 밤중에. 그날은 아빠가 ‘별’을 쟁취하지 못한 날이었어. 그러니까 4년 동안의 아빠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버린 날이었어. 다른 사람들은 보통 힘든 일이 있을 때 방황도 하고 그러던데, 아빠는 그냥 달렸어. 여전히 가시밭의 추위를 느끼며. 꿈을 깨우는 현실의 감각,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의 감각을 일깨우며. 억울했을거야. 화도 났을거야. 마치 내가 아빠한테 느꼈던 감정처럼 아빠도 아빠를 인정해주지 않고 풋내기로 여기는 세상 사람들이 정말 미웠을거야. 근데 아빠는 단 한번의 군말과 투정이 없었어. 그저 아무도 안 보는 곳에서 조용히 눈물만 흘릴 뿐이었어. 아빠는 나와 달리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어른이었어.


그래. 아빠라는 어른은 포기를 모르는 사람이었어. 결국 아빠의 그 집념은 당신 스스로가 아닌 우리 가족을 위한 것이었어. 그걸 어떻게 깨달았냐면, 어느새 별은 내 발 밑에 있었거든. 아빠가 따다 준 밝은 별이 어느새 우리 집을 단단하게 지탱해주고 있었거든. 아빠는 그 순간을 위해 기꺼이 행복과 여유를 포기할 수 있던 사람이었고, 낭만을 포기할 줄 알던 사람이었고, 심지어 치기 어린 자식의 인정까지 포기할 줄 알던 그런 사람이었어.


20년이 넘는 실패와 인내의 기간동안 우리 아빠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의 희미해진 꿈, 자식들의 생존이 담겨있는 그 둥지를 지키면서 얼마나 심장이 아팠을까. 별을 드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모진 자괴감을 견뎌냈을까. 얼마나 골백 번 포기하고 싶었을까. 지금에서야 어렴풋이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왜냐하면 내가 지금 그렇거든. 골백 번 포기하고 싶거든. 애써 자괴감을 견뎌내고 있거든. 종종 내 선택을 후회하고 있거든. 그렇게 자유롭고 싶으면서 뭔 스스로를 바꿔보겠다고 일말의 고민도 없이 규율과 통제로 가득한 길을 택했는지. 그치만 나도 포기는 못하겠어. 좋은 가르침을 주시는 동료분들이 보고 계시기에. 날 믿고 따라와주는 용사들이 있기에.


스스로를 바꾸기 위한 고통이 가끔씩 견디기 힘들 때면, 나도 달려. 아빠처럼. 달리기는 기어코 목적지에 도달하게 만드는 운동이잖아. 아무리 폐가 아파도, 숨이 차도 특정 거리를 반드시 완주하겠다는 그 유치한 집념이 두 다리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운동이잖아. 그렇게 나도 별을 들기 위한 힘을 기르고 있어. 아빠처럼. 아직 눈 앞이 캄캄하긴 하지만 나를 한 발자국이라도 내딛을 수 있게 만드는 건 바로 아빠라는 밧줄이야. 아침마다 창문을 열고 매서운 추위로 나를 깨우곤 했던 아빠의 서늘한 가르침으로 이젠 하루하루를 정신 차리며 살아가.


언젠가 이 모든 걸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오겠지. 마치 파도에 휩쓸려 사라지는 모래처럼, 우리도 그렇게 사라지는 날이 오겠지. 인정하긴 싫지만. 결국 별을 들어올린 아빠도 그만큼 깊어져 버린 세월의 주름 속으로, 아득한 공허 속으로 하루 하루 발자국을 내딛고 있을거야. 우리에게 모든 행복을 준 채로. 그냥 지켜보고만 있진 못하겠어. 그래서 나도 아빠와 함께 걸을거야. 별을 얻기 위한 그 길을 함께 걸을거야. 아빠의 끝나지 않은 그 길을 이젠 나도 손 잡고 동행할래. 평생동안 홀로 외로웠던 사람아.


근데 한 가지 약속만 하자. 별의 길을 걸을 때 각자 손에 좋아하는 꽃 한 송이씩 쥐고 걷는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바꾸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난 이 꽃 한 송이는 포기하지 못하겠더라. 고통 속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가 더 아름답기에. 완벽의 가시밭과 희생의 언덕을 걸으면서도 그 과정이 조금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아직은 풋내기인 나 이지만 한 번만 믿어줘. 아빤 그 누구보다도 행복할 자격이 있어.


사실 아빠가 행복을 찾는 것 같아서 기쁜 요즘이야. 아빤 모르겠지만 난 보여. 아빠가 꽃을 찾는 모습이. 자식들이 이제 둥지 밖으로 나가기 시작해 아쉬운 마음이 들어서 그랬는지 잘 모르겠지만, 서투른 애정의 표현을 가끔씩 내뱉는 아빠가 귀여워서 배를 잡고 웃을 때가 있어. 곧 휴가 나간다고 카톡을 보냈을때 ‘제발 나오너라’는 아빠의 짧고 굵은 답장이 눈물나게 정겹고 고마운 것처럼 말야. 맞아, 이제 세상 밖으로 나간다. 얼마만인지. 이번에 내가 나갈 세상은 어릴 적 아빠가 종종 무시하곤 했던 찰나의 아름다움, 곧 소멸할 무엇인 세상인 것 같지만 언제나 나에겐 그런 세상이 필요해. 해가 지기 전에 우리 다시 달려보자. 옛날처럼. 이젠 기꺼이 아빠와 함께 그 길을 달릴 거야. 기꺼이 아빠 손에 꽃을 쥐어주며 행복을 경험하게 할 거야. 이불을 걷혀 생존의 감각을 일깨워줬던, 그 차디 찬 공기를 함께 숨 가쁘게 들이마시자. 나의 역사이자 나의 미래. 언제나 당신을 존경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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