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가는거야

천 개의 파랑- 천선란

by 이브와 아담

하나의 성공을 얻기 위해, 하나의 별을 따기 위해, 하나의 트로피를 쟁취하기 위해 우리 모두는 바삐 달린다. 각자가 소망하는 목표들은 다 다르겠지만, 안식을 위한 우리의 생존본능은 끊임없이 몸과 마음을 재촉한다. 그렇게 우리는 수많은 것들을 놓치며 살아간다. 가정의 안정을 위해 바삐 달리는 사람이 소소하고 정겨운 일상들을 놓치고 사는 것처럼. “더 많이”에 굶주린 우리 인류가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해수면을 상승시켜 스스로를 파괴하는 것처럼. 올더스 헉슬리의 소설 [멋진 신세계]에서 묘사되듯 극도의 효율성으로 인해 인간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는 기꺼이 대가를 지불하며 달려나간다. 하나의 좁은 길을 통과하고 싶어 하는 수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있기에. 성공의 길은 그토록 힘겹기에.


성공이라는 좁은 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하는 까다로운 요건들이 있다. 일단 좋은 일류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적당히 인맥도 많아야 한다. 부유하고 화목한 가정 배경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좋다. 그리고 호감을 주는 외모도 하나 장착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우리는 정상과 비정상을 뚜렷이 경계 짓는다. 정상이라 여겨질수록 원활하게 그 좁은 길을 지나갈 수 있는 세상, 인류는 그런 세상을 만들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이미 이 행성은 인간 중심의 행성이 됐잖아요.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세상 밖으로 나가면 어느 동물도 살아남지 못해요. 동물들이 살 수 있는 네트워크가 아예 존재하지 않아요. 이걸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부분을 고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아예 다시 프로그래밍을 해야 된다는 말이에요. 이 사회가.

요즘 아프리카에 가면 상아 없이 태어나는 코끼리가 종종 발견된다고 한다. 본래 진화가 생존에 유리한 방향으로 진행되는데도 코끼리는 상아를 없애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의 무기를 과감히 없애는 쪽으로 진화의 방향을 틀었다. 상아를 노리는 밀렵꾼들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 별을 따기 위한 우리 인간의 목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는 조급한 마음에 길가의 꽃들을 밟고 있다.


성공하기 위해, 좁은 길을 지나가는 경쟁자들을 제거하기 위해 사람들은 때때로 비정상이라 여겨지는 누군가를 고립의 우물 속으로 빠트리고 상처의 화살을 서슴없이 발사한다. 생존 본능일까, 단순한 이기심일까. 오로지 우리의 목적이 1등이 되어버린다면 무리하게 달리던 소설 속 경주마 투데이처럼 관절이 나가버려 더 이상 주로에서 달릴 수 없게 될 것이다. 그렇게 역할과 존재 가치를 상실한 경주마들은 ‘쓸모가 없다’는, 우리 인류가 정립한 경제적 원칙에 의해 안락사당할 것이다. 본래 모든 생명은 살아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충분히 살아갈 자격이 있는데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만든 ‘정상’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다고 누군가를 함부로 ‘부적격’ 판정 내려서는 안된다.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인이 변화해야 할 때가 있지만, 적절하지 못한 환경이라면 당연히 사회가 변화해야 한다. 부적격으로 정의내려진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따뜻하고 소중한 각자의 작은 무언가를 발견하지 못하고 인간성을 상실하기 전에. 경주마들처럼 우리 역시 그렇게 역할과 존재 가치를 상실하고 스스로를 파괴하기 전에.

한 번 외출하기 위해 남들보다 많은 준비를 해야 하는 사람이 있어요. 하지만 준비를 한다고 나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의지나 실력이 부족한 것도 아닌데 끝내 포기하는 경우도 많아요. 어렵거든요. 도움이 없으면 갈 수 없는 길들이 많으니까요.
그 사람은 우리와 같은 온전한 두 다리를 갖고 싶은 게 아니에요. 다리는 형체죠. 진정으로 가지고 싶은 건 자유로움이에요. 가고자 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자유요. 자유를 위해서 많은 돈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잘 만든 바퀴 하나만 있으면 돼요. 문명이 계단을 없앨 수 없다면 계단을 오르는 바퀴를 만들면 되잖아요. 기술은 그러기 위해 발전하는 거니까요. 나약한 사람을 보조하는 게 아니라, 이미 강한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드는 거예요.

우리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서 살아간다. 베팅금액을 따 가려는 수많은 관중들의 기대를 업고 달리는 경주마들처럼 우리는 가족의 기대, 조직의 기대를 업고 부지런히 달린다. 완벽을 기약하며. 투데이의 기수이기도 한 로봇 ‘콜리’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생각한다. 이렇게 투데이를 채찍질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왜 말을 타다가 하늘을 바라본 거야?”

“하늘이 그곳에서 그렇게 빛나는데 어떻게 바라보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콜리는 경주마 기수를 목적으로 제작된 로봇이었다. 목적상 그는 인간적인 지능이 요구되지 않는 존재였지만 제작 과정에서 담당관이 실수로 인공지능 칩을 콜리에게 삽입해버렸다. 그렇게 기적이 탄생했다. 우리 인류가 조금은 속력을 늦춰야 할 필요가 있다고 얘기해 줄 수 있는, 너무 많은 꽃들을 짓밟고 있다고 얘기해 줄 수 있는 존재가 탄생한 것이다. 실수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기적 역시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발생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스스로를 너무 자책할 필요가 없다. 1등을 하지 못해도 자책할 필요가 없다. 천천히 가는 만큼 우리는 더 자세히, 더 풍성하게 볼 수 있을 테니. 우리는 기계와 달라서 일 퍼센트의 불씨만 있어도 백 퍼센트의 불빛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흐린 하늘에 가려진 영원한 햇살의 존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말마따나, 행복만이 유일하게 고통을 이길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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