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잘 하는 사람은 없다

by 이브와 아담

“아니, 무슨 책을 그렇게 빨리 읽습니까?”


내가 책 읽는 모습을 보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날 따라 옆에서 같이 책을 읽기 시작한 관측반 용사가 한 명 있다. 나보다 빨리 읽는 사람들 널리고 널렸는데, 무심하게 툭 던지자 그 용사는 히죽거리며 한 마디 보탠다. 솔직히 이해 안 하고 종이만 넘기는 거 아니냐고. 그 말을 들으니 옛날 생각이 나 웃음이 픽 새어나온다. 맞아, 난 원래 지독히도 책을 못 읽는 사람이었는데.


그토록 글을 좋아하는 나는 원래 10분 이상 앉아서 책을 읽지 못하던 사람이었다. 아니, 좀만 더 자세히 말하자면 원래 글을 쓰는 건 좋아했지만 글을 읽는 건 버거워했던 사람이었다. 글을 쓰는 건 펜을 잡던 타자를 치던 뭐라도 움직이는 행위가 있었는데 읽는 것은 오로지 가만히 있어야만 했기에, 인내심이 필요했기에 견디기 힘들었다. 어쩌면 나는 자기주장만 강하고 철저히 다른 이의 생각에 무관심했던 것일 수도 있다. 글쓰기가 자기표현이자 창조의 과정이었다면 독서는 듣는 것이자 배움의 과정이었기에 책을 펼치면 10분 안으로 스르륵 잠에 들곤 했던 나는 어쩌면 배울 줄 모르던, 고집만 센 철부지였다.


이런 내가 독서에 욕심을 내게 된 건 중학교 때 한 영어 선생님의 일화를 듣고 나서부터였다. 수능 성적이 매우 좋아 교실 뒤편에 자신의 성적표를 게시하곤 했던 그 선생님은 학창 시절 집중력이 10분을 넘기지 못하는 고민을 가지고 계셨다. 성적에 욕심이 있던 그분은 집중력을 기르기 위해 좋아하는 만화책을 방에 한가득 쌓아놓고 즐길 주전부리들을 손 닿을 거리에 설치(?)한 다음 볼일을 볼 때나 씻을 때를 제외하고는 미동도 없이 만화의 세계에 빠지셨다고 한다. 엉덩이 붙이기 연습. 그분은 자신만의 방법을 그렇게 명명하셨다. 참신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방학, 우연히 기회가 생겼을 때 나는 도서관에서 독서가 수면제인 와중에도 재밌게 읽곤 했던 베르나르 베르베르, 스티븐 킹의 소설들을 빌려 방에 쌓아둘 정도는 아니지만 소소하게 7권 정도 펼쳐두고, 바닥에 본드 붙였다 생각하고 앉아서 읽기 시작했다. 애초에 글에 관심이 없었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일이었겠지만 적어도 글 쓰는 걸 좋아했기 때문에 기왕이면 읽는 것도 좋아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찌 첫 술에 배부르랴, 나도 모르게 스르르 감아버린 눈을 뜨고 있었다. 기어코 잠이 들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평소 역마살이 있던 나는 가만히 앉아만 있는 걸 버거워했다. 2주 안에 7권을 다 읽고자 했던 나의 목표는 그저 2권밖에 채우지 못한 채 도서 반납함에 툭 던져졌다. 이 정도밖에 안되는구나, 좋은 성적 아무나 받는 게 아니구나.


그 시절 마음 깊숙이 자괴감 하나가 자라고 있었던 것 같다. 난 좋아하는 것조차 잘하지 못한다는, 그런 자괴감. 몇 년 뒤였을까, 중학교 때였는지 고등학교 때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친구와 한번 크게 싸운 적이 있었다. 그 때의 우울했던 나를 위로해 준 것은 가족도 아니고 친구도 아니었다. 바로 음악이었다. 엄마는 종종 집에서 젊었을 적 연주했던 클래식 음악을 백색소음처럼 틀어놓곤 했다. 그 날은 드뷔시의 ‘달빛’이라는 곡이 무한 반복중이었는데 상념에 빠져 넋 놓고 듣고 있다가 문득 깨달았다. 내가 반나절 동안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다는 것을. 해가 지는 줄도 모르고 나는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에 빠져, 감히 표현하길 완벽한 몰입 상태에 있었다. 친구와 대판 싸운 날 갑자기 그게 왜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엉덩이 붙이기 연습에 성공한 것이다! 기뻤다.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일이 예상치 못하게 현실이 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쓸 줄만 알고 읽을 줄 몰랐던 나는, 들을 줄 모르고 자기 말밖에 할 줄 모르는 고집불통이었다. 타인의 조언을 들으려 하지 않았고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볼 줄 몰랐다. 그 이기심이 내 독서를 방해한 원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기적이었던 내가 차분하게 앉아서 듣는 귀를 열 수 있었던 것은 음악, 바로 예쁜 말 덕분이었다. 내 귀가 어느 말에 경청하게 되는지, 어느 말에 경청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면서 나 역시 말 한 마디를 신중하게 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기 위해 피땀 흘려 노력하는 음악가들처럼. 환하게 뜬 달을 보며, 좋은 선율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고 결심했다.


뭔 책을 그렇게 빨리 읽냐고, 대충 읽지 말라고 놀리던 용사한테 이 얘기를 해주려다가 말았다. 난 딱히 경험담을 맛깔나게 말하는 능력도 없고 어떻게 책을 잘 읽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 자체가 뭔가 자랑만 늘어놓는 것 같아서, 무엇보다도 나는 막 엄청나게 읽는 그런 달인같은 사람이 아니다. 사실 그런 경험을 했다고 해서 내가 무슨 마법처럼 진득하게 앉아서 책을 오래도록 읽게 된 것도 아니다. 그런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를 발전시키는 것은 마법이 아니라, 수많은 시행착오와 적지만 짜릿한 성취를 담은 ‘경험’이다. 음, 확언하는건 아니다. 정말 마법같은 일이 생길지 어떨진 모르겠지만 벌써부터 기적만 바라고 살 생각은 없다. 물론 마법같은 일이 생긴다면 뛸 듯이 기쁘기야 하겠지만.


지금의 내가 오로지 과거의 나와 비교해봤을 때 책을 그래도 전보다 제대로 수월하게 읽을 수 있던 동인은 기어코 오래 앉아 읽겠다는 의지였다. 들을 줄 몰랐고 배울 줄 몰랐지만, 듣기 위해 배우기 위해 그냥 졸음을 참아가며 읽었던 것 같다. 그 음악이, 그 예쁜 말이 나에게 선물한 것이 그 ‘의지’였기 때문에. 그 의지를 가지고 견디다 보면 우리는 어느새 우리가 박수치곤 했던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어느새 책을 빨리 읽는다는, 그런 말도 안되는 말을 듣는 존재가 되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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