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여행을 즐기는 가족이었다. 결혼 초창기에는 3박 4일씩 우리나라 권역별로 여행을 했고, 웬만한 곳은 다 돌게 되었다. 그 후에는 차박 캠핑에 빠져 주말에 산과 바다를 배경 삼아 하루 이틀 자고 왔다. 반복되는 월화수목금에서 벗어나 자연을 온몸으로 느끼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힘을 얻곤 했다. 하지만 이사를 온 이후로 웬일인지 여행이 줄었다. 대신 우리는 집으로 여행을 떠나고 있다. 다락에서 요를 깔고 자면 텐트 못지 않은 하룻밤을 보낼 수 있고, 마당에서 화롯불을 태워 불멍을 하면 캠핑 온 기분이다. 가끔은 2층 데크에서 바람을 맞으며 삼겹살을 구워 먹기도 한다. 신기하게도 차를 타고 멀리 가지도 않아도 내 집 앞에서 충분히 캠핑의 정취가 느껴졌다.
내 집에서 캠핑하기 첫 번째는 데크에서 식사이다. 우리는 원래 저녁을 신경 써서 맛있게 먹는 가족인데 가끔 날을 정해서 데크에 나가 삼겹살을 구워 먹는다. 먼저 테이블과 의자를 데크로 꺼내고, 식기도구는 약간 간소하게 준비해서 대접에 담아 데크로 나간다. 남편이 곁에서 고기를 구워 전달해주면, 굽는 연기는 다 밖으로 날아가고, 식구들은 바로 바삭한 삼겹살을 먹는다. 저녁 시간이라 따가운 햇볕도 없고, 집에서 입는 편안한 차림으로 우리는 야외에서 밥을 먹고 있다. 우리의 뒤로는 노을이 지고, 머리 위 거대한 하늘 아래 선선한 바람을 느끼면 평범한 집밥도 왠지 특별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밥을 먹으면 후식으로 라면이랑 과자까지 안 먹을 수가 없다. 이제 어둑해진 깜깜한 밤에 패드를 가져와서 영화를 틀고 다같이 본다. 2층 데크에서의 식사의 최대 장점은 평일에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언제든 마음의 여유만 낸다면 출근하고 집에 돌아온 날에도 펜션으로 여행 떠나온 기분을 낼 수 있다.
데크에서 삼겹살 구워먹기
내 집에서 캠핑하기 두 번째는 마당에서 불멍이다. 마당 불멍은 가을 초입에 화로를 사면서 시작했다. 마당 잔디 위에서 화로를 꺼내놓고, 땔감을 넣고 불을 붙힌 뒤, 캠핑 의자에 앉아 불을 쬔다. 간식이 꼭 있어야 하는데, 근처 마트에서 마감 세일로 저렴해진 초밥이나 치킨을 사와서 컵라면과 함께 먹는다. 까만 밤 춤추는 불빛을 보면 저절로 머리가 비워지며 근심 걱정을 잊고, 주변 공기는 쌀쌀하지만 두 손 두 발은 뜨거운 열기 앞에서 따뜻하다. 심지어 눈이 오고 있어도 불을 켜면 따뜻해서 눈 맞으면서도 불멍을 할만 하다. 괜히 맥주 캔을 눈에 꽂아서 냉장고처럼 시원하게 한다. 초등학생 아들은 불장난을 원 없이 할 수 있게 되어 놀아달라고 하지도 않고 신나게 불놀이에 열중한다.
여기는 교외는 아니고 이웃 집이 붙어있는 구조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불을 피우면 희뿌연 연기나 매캐한 냄새 때문에 주변 이웃들에게 피해가 갈까봐 신경이 많이 쓰였다. 하지만 날이 추워질수록 문을 안 여니 걱정이 사라졌다. 그리고 불멍을 오랜 시간 즐기려면 땔감이 많이 필요하다. 처음에 우리는 길가의 나무를 재활용했다. 시에서 가로수를 전지한 나뭇가지, 떨어진 솔방울을 주워다가 불을 피우기도 했다. 종이 쓰레기 나온 것도 태웠다. 이렇게 하면 다 좋은데 땔감이 마르지 않아서 불을 피울 때 연기가 많이 나고 나무가 두껍지 않아서 금방 불이 꺼진다. 그래서 인터넷으로 장작을 주문해서 썼더니, 한 번 피우면 오래 가고 연기도 일절 나지 않아서 불피우기 담당 남편의 쉴틈없었던 손이 많이 편해졌다.
불멍에 회 한점
내 집에서 캠핑하기 마지막은 다락 취침이다. 우리 집 다락은 보통 다락과는 다르게 층고가 높아 흡사 3층이라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셋이 누워서 자기에도 충분히 넓다. 그래서 날씨가 너무 덥지도 춥지도 않으면 다락에서 2박3일 자는 이벤트를 준비한다. 평소엔 아들의 레고 작품과 보드게임으로 가득하지만, 물건을 잘 치우면 침낭을 깔 수 있다.좁은 차 안에서 끼워 잤던 차박과는 달리 모두에게 넉넉한 공간을 즐기며 잘 수 있기에 부담스럽지 않다. 냄새나는 공동화장실이 아닌 아늑한 우리 집 화장실에서 깨끗히 씻고, 평소에 쓰던 이불과 배게 몇 가지를 챙겨서 다락으로 올라가면 호텔 못지 않게 편안하다. 자기 전에 심심하면 가족 보드게임을 하거나, 다락 흰 벽에 프로젝터를 화면을 쏘아서 대형 스크린으로 영화를 보기도 한다.
차박을 하다 보면 밤 중에 비가 올 때가 있었다. 내 몸 바로 위로 떨어지는 것 같은 세찬 빗소리를 들으며 자면 더 특별한 꿈을 꾸는 것 같았다. 비가 세차면 세찰수록 차 지붕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고, 자연 안에서 자는 것 같은 그 느낌이 차박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락에서 잘 때도 지붕을 때리는 빗소리를 가까히 들을 수 있다. 우리 집 층고높은 다락은 거대한 텐트같은 역할을 해주었다. 다락에서 함께자며 밤 새 굴러다니는 아들을 힘겹게 막은 것과, 이불을 뺏고 뺏기며 밤에 몇번씩 깬 것도 아침에 일어나면 다락에서 자기의 추억이 된다.
다락 캠핑
내 집에서 캠핑이 가능했던 건 외부 공간이 있고 내부 공간과 가깝기 때문이다. 외부와 내부가 멀지 않으니 자연스래 일상에 캠핑의 정취가 스며든다. 땔감을 구하느라 나뭇가지들을 주워서 끌고 다닐 때나 하늘, 바람, 불같은 자연을 원 없이 느낄 때 나는 왠지 원시인이 된 것 같으면서도 묘한 편안함을 느낀다. 그건 우리가 긴 시간동안 전국 각지와 산과 바다를 찾아다니며 느꼈던 감성이었다. 우리 집 앞에서 계절과 호흡하며 철마다 다른 여행을 떠날 수 있다. 자연 감성을 좋아하는 나에게 우리 집은 언제가도 질리지 않는 캠핑장이자 나에게 잘 맞는 여행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