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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정원 Dec 08. 2022

층간소음 없는 집에 산다

단독주택 살아보니 #6

 아파트에 살던 시절 어느 토요일 아침이었다. 외출하려고 현관문을 열었더니 낯선 쪽지가 붙어있었다. 장문의 쪽지는 바로 아랫집에서 보낸 읍소문이었다. 내용인즉슨 우리 집에서 쿵쾅거리는 소리를 내서 아래층에서 밤에 잠자기가 힘들다는 내용이었다. 경고 전화 한번 받은 적이 없어서 이런 상황인 줄 몰랐는데,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가 하나 있기에 바닥에 대형 매트도 진작에 깔았고, 놀아도 침대 위에서만 놀고, 밤에는 아예 못 뛰게 했는데, 아래층에서 시끄러워서 잠을 못 잔다고 편지를 보낼 지경이라니 허무하기도 했다. 미안하다고 연락을 하고 선물과 함께 조심할 것을 약속하고 지냈으나, 그 이웃은 결국 이사를 갔다. 그 다음 이웃은 아들 둘을 키우는 집이었는 데 2년간 아무런 말이 없이 살다가 이사를 갔고, 그 다음 이웃은 우리 집으로 수시로 전화를 했다. 그래서 아이가 조금이라도 뛰는 것 같으면 아이를 단속해야만 했다. 


 층간소음을 내는 입장뿐 아니라 듣는 입장에도 처해보았다. 화장실에서는 들려오는 윗집 아기 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아침 동 틀무렵이면 아무도 끄지 않는 진동 알람소리까지 매일 들어야 했다. 그래도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한번도 전화를 해본 적은 없었다. 당연히 생활 중에는 소리가 나고 잘못된 것은 하나도 없지만, 너무 늦거나 너무 이른 시간에, 반복적으로 들어야 할 때는 짜증이 너무 났다. 윗집 아랫집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하는 게 공동주택의 숙명이었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점점 쌓여갈 무렵 주택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층간소음에서 해방되었다.


 이사를 오고 나서 아이에게 제일 먼저 한 말은 “마음껏 뛰어!”였다. 아이는 기다렸다는 듯이 계단을 오르내리느라 다음날 다리에 근육통이 생겼다. 그리고 새 집에서 숨바꼭질을 하며 새로운 숨을 자리를 발견하고 밤이고 낮이고 마음껏 뛰어다녔다. 바닥에서 구르고 뛰어다녀도 전혀 스트레스가 없다. 공을 꺼내서 마음껏 바닥에 튕기고 주고 받아도 되고, 줄넘기를 꺼내서 거실에서 줄넘기를 해도 된다. 어른인 나도 왠지 모르게 털썩거리며 걷고 싶어진다. 예전엔 아이가 뛰거나 조금이라도 크게 행동을 하려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이제 부드러운 눈빛으로 아이의 모습을 바라보게 되었다. 예전에 침대 위에서 눈치보며 놀았던 모습들이 떠오르며 더 어릴 때 이사를 왔으면 좋았을 껄하는 마음도 절로 들었다. 주택은 아이에게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 자유를 줬다.


숨바꼭질과 계단에서 노는 아이


 층간소음에서 해방되어 또 하나 좋은 점은 운동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날씨가 좋으면 밖에서도 할 수 있지만 너무 춥거나 더운 시기에는 집으로 들어온다. 더운 여름에는 시원한 다락에 매트 한 장만 깔고 유튜브 요가선생님을 모셨다. 날이 추워진 요새는 집 안에서 줄넘기를 시작했다. 집에서 운동을 하니 어디 오가는 시간도 줄고, 가족들은 영화를 볼 때 혼자 옆에서 조용히 운동을 하면 '따로 또 같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장점이 크다. 도저히 운동을 피할 있는 핑계가 없자 작심 삼일을 반복하던 운동이 왠일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집 주변이 절간처럼 고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 집은 도심에 있는 주택이라 옆집과 가까운 편이고 앞 뒤로 다른 주택이 많다. 그래서 마당에 나가면 피아노 연습하는 소리, 청소기 돌리는 소리, 집 안에서 싸우거나 부르는 소리 같은게 들리기도 한다. 마당에 나가거나 창문을 열어 놓으면 잘 들린다. 집안에서도 2층의 발걸음 소리가 1층에 들린다. 1층에 사는 시어머니는 2층에서 나는 발소리를 듣고 "일어났구나", "뭘 하는구나" 하고 아신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얼굴도 모르는 이웃에게 조심해 달라는 전화를 받던 아파트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자유롭다. 


다락은 요가를 하기 좋다


 우리 집은 평소 라디오를 켜놓고 생활한다. 음악이나 라디오 소리가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이 익숙하다. 집에는 항상 음악이 흘러야 한다는 남편의 추천으로 클래식 FM을 듣게 되었다. 광고가 없고 항상 음악소리가 나와서 매일 켜놓기 좋았다. 이사오고 나서 우리는 습관적으로 라디오를 2층 거실에 설치했다. 2층은 방이 있는 생활 공간이고 3층은 다락이다. 다락과 2층을 서로 뚫려있다. 그런데 남편이 라디오를 다락에 설치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그래서 라디오를 다락으로 옮기고 틀었더니, 다락으로 부터 2층을 향해 음악이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나는 음향에 민감한 사람은 아니지만 머리 위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왠지 색다르게 들렸다. 어느 날은 구수한 국악소리가, 어느 날은 정열의 탱고가, 어느 날은 깊은 첼로의 울림이 온 집안을 채웠다. 누군가가 끊임없이 보내주는 BGM이 나의 평범한 일상을 특별하게 만들어 줬다. 평면적인 삶에 익숙한 나는 새로운 공간인 '위'를 통해 또 다른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았다. 위에서 누군가의 발소리 말고 빗소리나 아름다운 선율을 듣게 되다니, 이런 호사가 어디 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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