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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정원 Nov 29. 2022

내 집 앞 공짜마트

단독주택 살아보니 #5

 집을 지을 때 마당 한쪽에 텃밭을 잡아놨다. 같이 사는 시어머니나 나나 텃밭을 가꿔본 적은 없지만 땅이 있으니 놀리지 말고, 가볍게 채소나 키워서 먹자 하는 데 마음이 모였다. 주차장을 깔고 남은 투수 블럭으로 텃밭의 경계를 박고, 가운데 물이 빠져나올 도랑을 파니, 꽤 그럴듯한 텃밭의 모양새를 갖췄다. 어머니께서 농사짓는 친구에게서 듣고 거름을 미리 뿌려놓아야 한다고 하셔서, 거름 두 포대를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텃밭에 쏟고 삽으로 흙과 잘 섞어 놓았다. 그리고 따뜻한 5월이 되어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장을 찾았다.


 북적거리는 손님들로 활기가 넘치는 5월의 모종 가게에 난생 처음 가게 되었다. 이름은 익숙하나 그 어린 모습은 처음 보는 여러 작물의 모종이 보였다. 호박도, 방울토마토도, 고추도 종류가 아주 많았다. 잘 자랄지는 모르지만 일단 호박, 애플수박, 방울토마토, 가지, 깻잎, 고추, 옥수수, 고수, 파프리카까지 키워보고 싶었던 모든 작물을 서너개씩 다 골랐다. 그렇게 모종은 주인장의 익숙한 솜씨로 박스에 차곡차곡 담겨 우리집 마당으로 왔다.


텃밭의 모습

 

 구획을 나눠서 같은 작물끼리 심고 가끔씩 물을 주었다. 하루가 다르게 모종이 쑥쑥자라는 것이 보였다. 토마토, 고추, 가지는 키가 커서 지지대를 세워주어야 했다. 지지대 끝에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플라스틱 빈 병을 꽂아 놓아두고, 집에 있는 모든 빵끈을 동원하여 줄기와 지지대를 묶었다. 그리고 알로 된 비료를 사다가 한 두번 뿌려줬다. 아직 전문적 지식은 없는 터라 줄기를 잘라주는 순지르기나 잡초를 예방하는 바닥 멀칭도 하지 않았는데, 식물들은 쑥쑥 키가 컸다. 과연 햇볕과 대지의 힘을 받아 식물들은 탈 없이 꽃이 피고 열매를 맺었다. 정글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지만 그 안에 쏙쏙 달릴 것은 달려 있었다.

텃밭 당근, 루꼴라, 상추, 아욱, 가지

 

 열매가 열리기 시작하자 몇달간 수시로 수확이 가능했다. 방울토마토는 여름부터는 매일 한 주먹씩 따서 간식으로 먹었고, 잎채소인 상추, 부추, 깻잎도 수시로 먹었다. 저녁을 차릴 때 반찬거리가 없으면 얼른 마당에 가서 상추, 깻잎, 부추를 따서 액젓, 고춧가루, 들기름을 무치면 맛있는 한국식 샐러드가 나왔다. 부담없고 신선해서 대충 만들어도 맛있었다. 고추와 방울토마토도 매일 식탁 위에 올릴 수 있었다.


 방금 딴 작물에는 신선한 맛이 있다. 나는 원래 가지를 안 좋아하는 데, 방금 딴 가지는 부드러운 맛에 신기해서 먹게 되었다. 오이도 보통 껍질을 벗겨내고 먹는데, 방금 딴 오이는 껍질까지 먹어도 될 만큼 유난히 부드러웠다. 마치 항상 먹던 갈치지만, 제주도에서 먹을때는 살이 부드럽고 녹아내렸던 제주도 갈치가 떠올랐다. 상추를 따면 하얀 즙이 새어 나오고, 호박을 따서 썰면 땀방울 같은 즙이 맺힌다. 애플 수박은 별로 달진 않았지만 제법 수박다운 모양새를 갖추며 커서 한 여름에 잘라 먹었고, 옥수수도 작았지만 몇개 달려서 식구들과 신기해하며 먹었다. 이보다 더 싱싱할 수 없는 채소들을 먹으면 건강해지는 기분이 든다.


 잎채소도 성장이 대단했다. 아파트 살 때 바질 씨앗을 뿌린 적이 있었다. 아무리 화분의 위치를 옮겨줘도 쑥쑥 크질 않아서 여리여리한 잎을 피자에 데코레이션으로 한번 뿌려먹고 정리했다. 하지만 노지에서는 바질 잎이 크고 양도 많았다. 먹을 수 있는 양보다 더 많아서 부담스러울 정도 였다. 그래서 바질 잎이 무성해지면 줄기 째로 잘라내서 잎을 갈아서 바질페스토를 만들어 먹었다. 한 포트 심었던 애플 민트도 너무 많아져서 줄기 째로 뜯어다가 잎을 말려서 차로 마셨다. 마트에서는 이 만큼에 얼만데 여기서는 공짜다라는 생각에 돈 번 기분이 들면서 흐뭇했다.


민트차, 바질 페스토 파스타


 텃밭이 쉽기만 하고 성공하기만 한 건 아니였다. 첫 번째 실패한 작물은 파였다. 파 뿌리를 흙에 심으면 다시 파가 자라는 걸로 유명하다. 그래서 마당에 요리하다 나온 파 뿌리를 많이 꽂고, 쪽파 모종, 대파 모종도 사서 야심차게 파 밭을 만들었다. 올해 파는 안사먹어도 되겠다 싶었다. 하지만 파 하나에서 알이 나오더니 알에서 진딧물이 생기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모든 파를 다 점령하고, 부추에까지 옮겨 갔다. 환공포증을 유발하는 생김새도 그렇고, 순식간에 퍼지는 것이 더 스트레스를 유발했다. 식용 텃밭이라 농약은 치지 못하고 인터넷에서 검색하여 찾아낸 마요네즈에 물을 섞은 난황유를 뿌렸다. 스프레이를 누르느라 손가락이 얼얼하게 뿌려놔도 진딧물과 알은 건재했고, 결국 파와 부추를 모두 뽑아냈다.



 또 다른 복병은 애벌레였다. 농약을 안하는 밭이라는 것이 소문이 났는지, 나비가 하나 둘 날아오더니, 곧 이어 애벌레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겨자, 상추 사이사이에 숨어서 잎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잎을 따러 밭에 가보면 구멍이 숭숭 뚫려있고, 뼈다귀 처럼 잎맥만 남겨 두기도 했다. 퍼져나가는 것도 순식간이라 언제부턴가 벌레들이 먹고 남긴 것을 인간이 먹는 듯했다. 땅과 가까운 잎채소가 특히 심했다. 그 외에도 땅을 뒤집으면 온갖 벌레들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밖으로 오픈된 밭에는 이름 모를 여러 적들이 있었다.


 이사 온 첫 해 농사라 아무런 지식도 없이 시작했지만 돌아보니 많은 추억이 남았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보면 여타 단점들 때문인지 텃밭을 아예 안하는 집도 보인다. 하지만 마트나 식당에서 만나는 잘생기고 큰 채소보다 우리 집 텃밭의 작고 못생긴 채소에게 더 정이가고 남길 수가 없다. 점점 예측할 수 없는 기후 덕에 텃밭도 점점 더 빈약해지지만, 나는 그래도 이런 추억과 맛있는 기억들 때문에 내년에도 텃밭을 가꿀 생각이다. 이 땅에서 살며, 이 땅에서 난 식물들을 먹고 살았으니, 죽어서도 이 땅에 묻히는건 아닐까 하는 감상적인 생각에 젖으며 우리 집 공짜 마트는 내년에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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