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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정원 Jan 10. 2023

사람을 길들이는 주택의 고양이들

단독주택 살아보니 #8

 고양이가 대유행인 것 같다. 인터넷에는 '나만 없어 고양이'같은 글귀가 자주 보이고, 지인 중에는 고양이를 좋아하고 키우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고양이에게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사를 오고 난 후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시작은 어느 따뜻한 봄날이었다. 길고양이가 한 마리 나타났는 데 곁에는 귀여운 아기 고양이 네다섯 마리가 천방지축 활개를 치고 있었다. 작고 귀여운 생명체들을 멀리서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작은 아기 고양이들이 꼬물거리는 모습이 귀엽고 신기했다.


 그 후 포슬한 모래로 덮혀진 뒷 화단에 동물 대변이 나타났다. CCTV를 돌려 확인해 보니 얼룩 고양이 한 마리가 유유히 걸어오더니 우리 집 뒷 화단에 볼일을 보고 유유히 사라지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화단이 고양이 화장실이 될까 우려되었던 우리는 고양이가 모래에 볼일 보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갈을 주워다가 모래 위를 싹 덮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주택에 고양이가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래서 남편은 고양이 퇴치액을 사서 뿌렸다. 해롭거나 독한 성분은 아니고, 식초향과 찰흙냄새가 나는 액체였다. 이 액을 뿌리면 한 시간 정도는 고양이가 얼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에는 다시 원래대로 돌아갔다. 동물 대변은 잔디 위, 텃밭, 돌 틈 등 여기저기 수시로 나타났다. 고양이 똥만 삽으로 퍼서 마당 한쪽에 버려야 했다.


 우리 집 음식물 쓰레기를 담아서 내놓은 일반쓰레기봉투가 찢기기 시작했다. 마른 갈빗대와 고기 뼈다귀들이 튀어나오고, 버린 다시 육수 팩도 뜯긴 채 멸치만 사라져 있었다. 뼈와 마른 새우, 같이 튀어나온 셀 수 없는 보리알맹이들을 쓸어다 쓰레기봉투에 넣고 테이프로 붙여서 세워 놓았다. 몇 시간 뒤 밖으로 나가보니 쓰레기봉투가 다시 또 뜯겨 있었다. 다시 붙여 놓고 밤에 나가보니, 다시 또 뜯겨 있었다. 쓰레기봉투 여미기를 하루 세 번을 반복했던 기가 막히는 날도 있었다. 깊은 통 속에 숨겨놓아도 집요하게 찾아서 뜯어대는 통에 음식물쓰레기를 꺼내 놓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지자 자충수로 마당 한편에 음식물 쓰레기를 넓게 펴서 놓기 시작했다. 고양이가 냄새를 맡고 와서 뼈다귀나 멸치 같은 것을 마음껏 골라 먹게 한 뒤, 더 이상 먹지 않으면 그때 싸서 버렸다. 나도 모르게 고양이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입장이 된 것이다.


  고양이는 수시로 우리 집에 나타났다. 사람이 없으면 햇볕 좋은 명당인 현무암 판석에 누워 쉬거나, 마당에 꺼내놓은 푹신한 암체어 위에 앉아서 털투성이로 만들어 놓기도 했다. 땅에 수선화 구근을 심어놨더니 다 파헤쳐 뒤집어 놓았다던지, 식물을 심으면 줄기를 한번 먹어보기도 했다. 옆집과 우리 집 담장 사이에 고양이 구멍을 만들어 놓았다. 아기 고양이들이 커가면서 영역싸움을 벌이는지 고양이끼리 싸우는 소리가 시끄럽게 나기도 하고, 한 밤의 추격전을 펼치기도 했다. 자기 집도 아닌데 자꾸 들락거리며 일을 만드는 고양이가 귀찮고 싫었다.

데크로 올라와 택배함에 훌쩍 올라가는 고양이


하지만 이제는 고양이의 방문에 익숙해졌다. 주변에 항상 있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다. 가끔 고양이 먹으라고 소시지를 까놓기도 하고, 고양이 똥도 군말 없이 치운다. 고양이를 관찰하는 것도 은근히 재미있다. 고양이도 성격이 다양한지 항상 싸우는 고양이가 있고, 내가 밭일 하면 가까이 와서 볼 정도로 겁이 없는 고양이도 있다. 음식물 쓰레기도 뜯지만 스스로 사냥도 하는데, 어느날 박각시를 잡아먹었다. 박각시란 멀리서 보면 꼭 물총새처럼 생겼는데 실제로는 나방인 곤충이다. 가을에 우리 집 마당에 자주 나타나서 열심히 패랭이꽃의 꿀을 빨았다. 고양이가 우리 마당으로 오더니 박각시 곁에 앉아 노려보다가 한 번에 확 잡아먹었다. 빠른 몸놀림이 마치 사자의 사냥을 보는 것 같았다. 고양이 입장에서 우리 집은 지나가다가 변을 보는 휴게소 같은 역할을 하는 곳인데, 잔디밭으로 걸어 다니면 발이 따가우니까 사람이 다니는 징검다리 돌 길로만 다닌다. 그리고 고양이들은 더운 여름엔 그늘진 수국 밑에서 쉰다. 여우같이 주인 없이도 잘 사는 모습이 신기하다.


주택에 살다 보니 우리 집 마당은 고양이의 영역에 들어가게 되었고, 모든 것은 고양이의 마음이었다. 우리 앞 집은 낮은 썬룸이 있는데, 고양이는 그 위를 올라가는 것을 좋아한다. 썬룸을 미끄럼틀처럼 오르내리며 천장 부분에 앉아 쉬기도 한다. 그 집 입장에서 보면 머리 위에 고양이가 떠있을 것이다. 이렇게 고양이는 어디 한 곳에 메이지 않고, 사람들이 철저히 나눠놓은 구역을 유유히 넘나들며 살아가는 참으로 자유로운 존재들이었다. 어찌 말 못 하는 동물을 미워할 수 있을까. 주택에 살다 보니 결국엔 반 집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마을을 돌아다니다 보니 다른 집도 우리와 비슷한 처지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음식 테러와 대변에 분노하다가 정이 들어서 거의 반 키우고 있는 집들이 많았다. 사료 사다 주고, 집 마련해 주고, 고양이 장난감을 사 와서 놀아주고, 고양이가 안 오면 언제 오나 기다린다고 한다. 주택에 살다보면 다 비슷하게 고양이 집사 생활을 하게 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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