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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정원 Dec 26. 2023

주택의 셀프 인테리어

단독주택 살아보니 #23

 예전에 살던 아파트의 강화마루는 유난히 약했다.  핸드폰만 떨어져도 모서리에 닿은 부분이 깊게 파이곤 했다. 무언가를 떨어뜨릴 때마다 바닥에 흔적이 남는 것이다. 신축 아파트라 깨끗한 바닥으로 출발했지만, 점점 크고 작게 패인 부분이 보기 흉해지기 시작해서 '메끄미'를 이용해 패인 부분을 채우기 시작했다. 이것이 소소한  보수의 시작이었다. 보수의 경험은 해를 더하며 더 다양해졌다.

바닥의 홈과 보수 테이프

 그다음은 배수구 뚫기였다. 어느 날 김치를 자르고 남은 김치 국물을 싱크대에 비웠더니 부엌 수채 구멍에 물이 빠지는 속도가 점점 려지더니 기어이 막히고 말았다. 체 형태의 배수관 클리너 붓고, 음으로는 가루 형태를 부어보아도 물이 전혀 내려가지 않았다. 이렇게 화학적인 방법이 실패하고, 물리적인 방법으로 해결을 시도했다. 인터넷으로 펜션 사장님들의 극찬 후기를 받은 고압 뚫음 기계를 사고 길게 들어가는 관통기를 샀다. 싱크대 밑 하부장을 열어 풀 수 있는 모든 연결부를 풀고, 바닥의 배관을 향해 펌프질을 시작했다. 7년 쓴 배수구에서는 관통기를 따라 검고 끈적이는 것들이 묻어 나왔고, 고압 뚫음 기계에서는 하얀 연기가 나며 막힌 곳이 펑 뚫리는 듯했다. 기쁜 마음으로 배관을 다시 연결하니 물이 잘 빠졌지만, 금방 어디선가 물이 새어 나와서 부엌 바닥이 전부 물바다가 되었다. 물에 젖은 가구와 바닥을 닦아내고, 다시 모든 과정을 반복해서 드디어 물이 시원하게 내려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씨름하는 남편 뒤에서 이쯤에서 배관 기사님에게 출장 요청 전화를 할까 말까 삼 일간 고민했는데, 남편의 끈질긴 시도로 결국 해결이 되었다. 그 후로 김치국물은 절대로 싱크대 수채구멍으로 버리지 않는다.

물과 이물질과의 싸움

 주택 보수의 최고봉은 셀프 페인팅이었다. 여느 아이 키우는 집처럼 우리 집 벽은 스티커와 정체 모를 낙서들로 가득했다. 아이가 유치원을 졸업하고 우리는 이제 깨끗한 집에서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품고, 지저분한 벽을 모두 페인트 칠하기로 했다. 남편 시킨 준비물들이 속속 택배로 도착했다. 페인트는 흰색으로 통일하고, 거실 벽 한 면만 산토리니를 연상하는 하늘색으로 포인트를 줬다. 거실, 안방 두 군데를 칠하기로 하고 스위치와 콘센트에 묻지 않게 마스킹 테이프를 붙였다. 그리고 남편과 내가 하루 반나절을 꼬박 칠했다. 지저분한 낙서를 가릴 때는 신났지만, 손이 잘 닿지 않는 벽 맨 위까지 구석구석 균일하게 칠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로의 작업을 봐줘가며 결국 마무리 지었다. 페인트가 마르고 마스킹 테이프를 떼어내니 7년 된 아파트가 새 집같이 환했다.

페인트칠과 산토리니 벽

 아름다운 우리의 집을 짓고, 꿈에 그리던 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집 안에서 하는 보수는 아파트나 주택이나 비슷하지만, 집이 커지고 바깥 공간이 추가되는 점이 다른 것 같다. 우리가 이사 가자 마자 했던 보수는 바닥이든 창틀이든 구멍이 있으면 다 막는 것이었다. 문은 방충망 아래 손가락 한 마디 만한 구멍이 있는 데 벌레가 들어올 수 있어서 방충망 테이프를 찾아서 붙였다. 화장실에서 그리마가 몇 번 출몰한 이후로는 화장실 배수구에도 동그란 방충망 테이프를 사다가 붙였다. 락방 창틀의 미세 틈도 클레이로 막았다. 2년 차 때는 아들의 손때가 탄 벽을 페인트로 부분적으로 칠했다.  

페인트칠과 실리콘 작업

 이사 오자마자 집 밖에서도 보수할 게 있었는데, 바로 주차장에 메지를 모래로 채우는 것이다. 우리 집 주차장은 투수 블록을 깔았다. 블록 블록과 틈새가 있는데, 그 사이가 벌어져 있으면 미관상 좋지 않고, 물건이 빠지거나 걸려서 넘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메꿔야 한다. 틈새가 넓지 않아 꽉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남편이 이사 오는 날 집에  들어오고 홀로 발로 모래를 끌어서 사이사이를 메꾸는 데 오후에 시작해서 해질 때까지 한 나절꼬박 걸렸다.  저렇게 까지 해야 하나 이해가 가지 않았는데, 주택에서 해야 할 수많은 보수 중 하나였다. 또 EBS "건축탐구 집"에서 봤던 어느 한옥 집도 떠오른다.  집주인아저씨는 일 년에 한 두 차례 지붕으로 올라가서 낙엽을 치운다고 했다. 지붕의 낙엽을 치우지 않으면 낙엽이 홈통을 막아서 집에 누수가 발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솔직히 위험하고 너무 고된 일처럼 보였는 데, 안 하면 누수라니 안 할 수도 없고 주택의 노동은 어디까지 인가 싶었다. 그래서 우리 집에도 홈통이 있는 데 낙엽이 들어가면 큰일이겠다 싶어서 촘촘한 망 처리가 된 삽목 상자로 덮어놨다. 지붕 위로 올라가서 해야 할 일은 없어서 참 다행이다.

보수용품함과 메지 완료된 주차장

  보수라는 게 사람만 부르면 골치 아플 것 없이 다 해결할 수 있겠지만, 직접 고치고 손질하는 것도 나름의 재미가 있었다. 내가 사는 집이니 직접 고치고 손질하면 더 정이 가고, 더 마음에 드는 인테리어를 할 수 있었다. 거기다 인터넷에 셀프 인테리어에 대한 글과 영상이 넘쳐나고, 비용도 훨씬 저렴하다. 예를 들어 다이소에 가면 저렴한 보수용품이 많은데, 정말 없는 것이 없다. 우리 집에서 야금야금 사모은 보수용품들이 큰 바구니 2개를 다 채운다. 그리고 아파트 살던 시절부터 무한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남편 덕분인지 주택에 와서도 소소한 보수 정도는 스스로 하며 살아갈 것 같다. 이제는 남의 집이 되었지만 예전에 살던 아파트를 떠올리면 청량한 산토리니 지붕을 연상시키던 포인트 벽이 제일 생각난다. 살면서 소모만 시키는 집, 팔아서 돈으로 바꾸는 집이 아니라 내가 살면서 가꿔주고 아껴주는 집이 진짜 내 집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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