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주택에는 조경이 필수이다. 최소 면적과 심어야 하는 교목과 관목의 수량이 있는 걸로 안다.우리의 1회 차 조경은 전적으로 건축사의 손에서 이루어졌다. 집 외부와 내부도 할 일이 산적했기 때문에 마당의 나무까지 욕심낼 처지가 못 되었다. 건축사는 적당한 비용에 적당한 나무를 골라 예쁘게 심어 주었다. 이사를 오고 몇 달 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제야 마당의 나무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큰 문제없이 다 좋았는 데, 단 하나 배롱나무가 어째 이리 삐치고 저리 삐친 모양새를 하고 있어 참 못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마당을 쓰는 빗자루가 생각나는 수형이다. 때가 되어 분홍색 꽃이 많이 피었으나, 외모가 못내 아쉬웠다. 내가 골랐으면 더 예쁜 모양으로 골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아쉬운 수형이지만 배롱나무의 첫 개화는 참으로 길고 아름다웠다.
그 외에 나무 사이사이 심어진 철쭉의 경우 다른 식물이 추가되면서 한쪽으로 위치를 옮겼다. 그렇게 1년 차 조경으로 잘 지내던 중 미산딸나무가 1년을 지나지 못하고 죽었다. 죽은 나무는 잎이 자라나지 않고, 가지가 갈라졌다. 마른 나뭇대는 한동안 오이 지지대로 쓰다가 오이가 다 마르고 잘려나갔다. 나무 밑동에서 새 가지가 하나 올라오길래 기다려 보았지만 결국 다 죽었다. 밑동을 뽑아내는 날, 죽은 나무라지만 뿌리가 생각보다 깊었다. 나무 주위를 빙 둘러가며 삽질을 한참 하고 삽을 꽂아 지렛대 삼아 한참을 누르자전체가 밖으로 드러났다. 예상대로 잔뿌리는 별로 없었다. 그리고 나무뿌리를 빙 둘러서 실려온 붉은 흙과 흙을 묶는 천까지 그대로 땅속에서 나왔다. 붉은 흙 색으로 우리 마당 색과 많이 차이가 났는데, 우리 땅과 결국 융화되지 못한 나무의 운명을 보는 것 같았다. 거대한 나무뿌리는 결국 우리 마당 캠핑 땔감이 되었다.
미산딸나무는 좋은 지지대였다
또 마당에 잣나무 3그루가 있는데, 제일 오른쪽 잣나무가 잎이 노란색으로 변하더니 나무 전체가 노랗게 변했다. 옆의 다른 잣나무 2그루는 괜찮은 데 하나만 말라죽었다. 이 잣나무 또한 겨울이 되어 뽑아냈다. 집 뒤편 좁은 화단에 심어진 회양목도 절반 정도 죽었다. 길에서 매연 먹고사는 회양목도 잘만 자라던데 우리 집 회양목은 물도 잘 줬는데, 잎이 노랗게 변하고 뿌리가 말라서 뽑으면 바로 뽑혀버리다니황당할 노릇이었지만 땅과 식물의 궁합이 좋지 않았음을 탓할 수밖에 별도리가 없었다. 아파트 살 때는 몰랐는데, 주택에 사니 길을 걸어도 다른 게 눈에 들어온다. 다른 이웃의 말로는 이사 1년 차에 나무가 많이 죽는다고 하여 죽어나간 1회 차 조경의 식물들에 대해 조금은 위안이 되었다.
다시 심은 회양목
이제 이사 온 지 2년 차 되는 봄이 되어, 2회 차 조경이 시작되었다. 나무 두 그루가 사라지고 빈자리에 어떤 나무를 심을까 고민이 되었다. 주변 주택을 살펴보니 많이 심는 나무는 소나무같은 침엽수였다. 제일 잘 보이는 곳에 제일 멋들어진 소나무가 있었다. 나도 자꾸 보다 보니 소나무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꽃 중에는 장미라면 나무 중에는 소나무가 있었다. 낙엽이 없고, 사시사철 푸른 위용이 있으며, 인자한 아름다움이 곧 부를 상징하기도 한다. 낙엽이 없어서 편하고, 사시사철 초록을 볼 수 있다. 하지만 100평 정도의 대지에 앞, 뒤, 양 옆으로 집들이 빼곡히 쌓인 도심주택지에서 큰 나무는 너무 부담스러웠다.
반면 어머니는 꾸준히 과실수를 원하셨고, 이사 왔을 때 미니사과나무를 한그루 심으셨다. 사과나무는 첫해부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 귀여운 사과 몇 개를 우리에게 내줬다. 이번에는 나무가 뽑힌 빈자리에 석류나무를 심고 싶어 하셨다. 우리 집으로 들어가는 골목 어귀에 있는 다른 집 마당에 석류나무가 있는데, 가을에 석류가 주렁주렁 달린 모습이 참 탐스러워 보였다. 어머니는 어느 봄날 친구와 나무시장에 갔다가 벼르던 석류나무 1주를 사 오셨다. 아직 어린 나무라 가지도 잎도 보잘것 없지만 잘 자라 예쁜 석류를 주렁주렁 달아준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다. 석류나무는 우리 마당 잣나무가 뽑힌 자리에 심겼다.이번 뽑기는 잘 되었기를 바라본다.
귀여운 미니애플 열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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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나 씨앗은 막 샀는데, 나무는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마치 장롱 고르듯이 골라야 할 것 같다. 일단 크기도 크고 옮기기도 쉽지 않고, 오래 쓸 것을 골라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집의 시그니처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혹시 미래에 단독 주택에서 살고 싶은 사람이라면 내 집에 어울리는 나무는 무엇일 지 미리 고려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