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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꽃정원 Nov 02. 2023

정원은 끝나지 않았다

단독주택 살아보니 #21

 뜨겁던 여름의 온도가 점점 내려가더니, 단풍이 지고 낙엽이 하나 둘 떨어지는 가을이 왔다. 아침저녁으로 추워진 날씨에 감기라도 걸릴까 반팔은 옷장 깊숙이 숨어버렸다. 주택으로 오기 전에는 가을 정취를 느끼는 감성이 가을이었는데, 마당을 가진 자로서 가을은 마당을 정리하고 내년을 준비하는 계절이 되었다.


 일단 본격적인 겨울이 오기 전 식물을 정리해줘야 한다. 서리가 오기 전에 칸나 구근을 캐고, 여름 식물을 정리했다. 우람한 기세로 앞 집 에어컨 실외기 바람의 공격에도 끄떡하지 않고 우리의 담장이 되어준 칸나의 대를 잘랐다. 식물 카페 나눔으로 다섯 덩이 정도 심은 것 같은데, 주렁주렁 덩이가 불어났다. 뿌리를 모두 잘라내고 이틀에 걸쳐서 엉겨 붙은 흙을 털어냈다. 다시 적당하게 나눠서 스티로폼 박스에 넣어서 실내로 들였다. 이사오기 전에 실내에서 키우던 식물들이 질려서 실험 삼아 바깥으로 보내봤는데, 대부분이 잘 컸다. 강한 여름 햇살의 힘으로 폭풍 성장을 해서 몬스테라, 알로카시아는 사람 얼굴만 한 잎을 뽑아냈다. 아쉽지만 다시 실내로 들어갈 시간이다. 다는 못 들어가고 일부만 추려서 실내 화분으로 옮겼다.  


  바깥에 머무는 식물들도 관리가 필요하다. 더벅머리처럼 정신없이 자라난 나무 가지들을  잘라. 우리 집은 2년 차라 그렇게 자를  많지 않다. 배롱나무 죽은 가지와 제멋대로 뻗어버린 단풍나무의 윗부분을 잘랐다. 도구가 마땅찮아서 인터넷으로 톱을 다. 단풍나무줄기가 굵진 않은데 그래도  끊어 내려면 사방으로 돌려가며 톱질을 해야 했다. 건물 수목관리인이 된 기분이었다. 다음으로 울타리목 홍가시나무 죽은 가지를 잘라내고 한 줄기 싹만 하게 뻗은 황금사철나무 잘랐다. 시원하게 잘라주니 옆집이 더 잘 보인다. 옆집도 부부가 나와 마당의 각종 나무들의 가지를 치고 가지 쓰레기를 정리하고 있다. 을 지은 지 10년이 넘은 이라 전지 작업을 한번 해주 정원의 인상이 훤해 보인다. 마당이 넓은 다른 은 일꾼이 와서 하루 종일 전지 작업을 하는 데, 일 년에 두 번은 정기적으로 하는 것 같았다. 


  추워지니 모기가 좀 줄었나 싶더니 어디선가 송충이가 출몰하기 시작했다. 1층 데크 천장에 10마리 넘게 붙어있어서 깜짝 놀랐는데, 아무리 죽여도 계속 나다. 이웃에게 들으니 마을에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시기가 있다고 한다. 매일 정원 여기저기서 나타나는 송충이들을 떼서 밟는 것이 일과가 되었다. 고양이가 한동안 안 싸던 똥을 싸기 시작해서 똥도 매일 치운다. 가을을 맞으니 동물들도 나름의 준비를 하는 듯했다.


  가을엔 이처럼 할 일이 있지만, 아직 꽃을 보는 재미 있다. 작년에 사 온 국화꽃이 여름 내 자라다가 꽃망울을 달았다. 꽃망울이 하나둘 터지는 과정이 얼마나 애를 닳게 했는지 모른다. 자칫 심심할 뻔했던 가을 정원에 멋진 노란색과 보라색 입혀줬다. 에는 코스모스, 갈대가 휘날리고, 초록잎은 노랑, 갈색 낙엽으로 바뀌어 흩날린다. 가을은 참 낭만적인 계절이다. 곧 꽃이 다 사라질 것을 아는 아쉬움으로 마지막 꽃 잔치를 즐겼다. 버들마편초, 밀레니엄 벨, 백일홍, 한련화까지 봄부터 쉬지 않고 달려온 일년초들도 아직 살아있다. 이 고마운 꽃들을 내년에는 더 많이 심어서 더 오래 곁에 두고 싶다. 핸드폰 속 정원 사진첩을 처음부터 다시 넘겨 보며 올해 정원이 지나온 모습과 내년에는 어떤 정원을 만들어야 할지 부지런히 상상에 빠졌다.


마지막 가을을 불태우는 꽃들

 식물의 경우 무언가를 해주면 당장 바뀌는 것은 거의 없고, 빨라야 한 달 길면 년도 기다려야 한다. 사람이 절로 부지런해지게 된다.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내년에 볼 것이 없다. 정원의 식물 종류가 늘어나서 뭐를 어디에 심었는지 잘 기억이 안나는 지경에 이르렀다. 몇몇 종류는 겉으로는 아예 보이지 않아서 존재 자체를 잊기도 한다. 이름표를 만들어서 땅에 꽂아 놓고, 집으로 돌아가 정원 식물 지도를 만들었다. 위치에 맞게 이름을 죽 쒔더니 이것 저것 2년간 참 많이도 가져다 심었다. 과감히 버리고 정리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내년에는 좀 단순하면서도 오래가는 화단이었으면 좋겠다. 


 메인 꽃으로 '델피니움'을 골랐다. 꽃씨를 여러 개 뿌렸다. 겨울 내 집에서 키워서 내년에 군락을 이루게 해보고 싶다. 또 화단에 크리스마스에 장미를 보여준다는 겨울 꽃 헬리보루스를 심었다. 구근도 주문해서 미니 수선화 10개를 주르르 심고, 사이사이 빨강 튤립을 심었다.  매년 봄이 오면 노랑과 빨강의 콜라보가 펼쳐질 것이다. 이미 식물이 많은데 주기적으로 오는 식물 택배를 보면 이제 좀 멈춰야 하지 않을까 싶지만, 지금 심어야 내년에 볼 것이 있다는 다급함에 자꾸 지갑을 열게 된다.


 작년에는 가을에 텃밭을 정리하고 땅에 비닐만 덮어 놓고 겨울을 보냈다. 하지만 긴긴 겨울을 빈 터로 보내는 것은 너무 지루했다. 땅에서 열심히 겨울을 이겨내는 채소들을 보는 재미를 느끼고 싶어서 월동채소에 도전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고 가장 간편해 보이는 마늘, 시금치, 봄동을 심기로 했다. 마늘과 시금치는 땅 만들기가 중요하다. 토양살충제와 석회비료를 사서 상토에 섞어 뿌렸다. 며칠이 지나 가스가 빠진 뒤, 마늘을 심고, 시금치와 봄동 씨앗을 뿌렸다. 이제 물 좀 주고 잘 자라는지 이따금씩 봐주면 된다. 과연 글로 배운 농사가 성공할 것인지 내년 봄이 기대된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며 자라나는 채소들을 보면 나도 힘이 날 것 같다. 이런 일들을 다 끝내 놓으니 나도 이제 마음 편하게 겨울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싹이 난 월동 마늘, 알타리, 쪽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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