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작은 것에 무너진다

눈썹이 나를 찌른다.

by 찐빵

언제부턴가 불편했다. 처음에는 뻑뻑하더니 곧 진물이 났다. 70대 의사 선생님은 눈을 많이 쓰지 말라고 하셨다. 면역력이 약해져 있으니 잘 쉬라고도하셨다. 다정한 말 뒤에 갑자기 간호사님께 나를 붙잡으라고 하고는 내 눈썹을 사정없이 뽑으셨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터라 그 빠른 손놀림이 야속했다. 꼭 닭털 뽑히듯이 뽑힌 눈썹을 보면서 수치심과 슬픔이 동시에 올라왔다. 잘 길러서 언젠가는 마스카라를 바르려던 그 눈썹이었는데 눈꼬리 뒤쪽이 훵~하니 바람이 숭숭 통했다. 외부 자극에 대한 보호망 한쪽이 무너진 이 허전함이란.


왜 눈썹이 나를 찌르기 시작했을까. 무슨 일이 생기면 원인 분석에 들어가는 것은 내 오래된 습관이었다.

'요즘 일이 많았어. 모니터를 너무 오래 봤나?'

'스트레스 푼다고 핸드폰을 많이 봐서?'

'살이 처지기 시작한 거 아니야?'

그때 어르신들이 그 비슷한 증상 때문에 쌍꺼풀 수술을 한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소리 없이 등치 큰 우리 외삼촌도 어느 날 쌍꺼풀 수술을 하고 나타나셨다. 1cm도 안 되는 눈썹이 60대 외삼촌 전체를 변화시켰다. 내가 처음 쌍꺼풀 수술한 사람을 본 것은 어린 시절 우리 골목 맞은편 석유집 아줌마였다. 어린 우리들의 눈에 보기에도 이상해 보였는지 우리 집에서는 쌍꺼풀 수술이 잘못된 사람을 "석유집 아줌마 같다."는 말로 불렀다. 외삼촌은 꼭 석유집 아줌마 같았다. 우리는 서로 당혹스러워 시선을 피하는 것을 약속한 듯 행동했다. 짧은 대화도 먼 곳을 응시하면서 하곤 했다. 우리의 시선이 살짝살짝 느껴졌는지 눈썹이 눈을 찌르고 진물이 나서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하셨다.

그런 눈썹이 이제 나도 찌르기 시작하다니. 내 살이 처지고 있는 거 아니야?

오늘 아침, 거울 앞에 서서 마음을 단디 먹고 셀프로 눈썹을 뽑아댔다. 의사 선생님 앞에서 뽑히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손톱에 잔뜩 힘을 주고 뽑으면 한 개도, 세 개도 움푹움푹 뽑혀나갔다.


'약 먹으면 괜찮아질 거야.'

'잘 자고 나면 좋아지겠지.'

아무리 약을 먹어도 잠을 억지로 청해 자도 눈은 쉽사리 좋아지지 않았다. 잠시 괜찮은가 싶다가도 다시 눈썹이 자라면 나를 여지없이 슬프게 했다. 우리는 작은 것에 무너진다.

그즈음 서서히 나의 미래를 어둡게 점치고 있었다. 몸이 약해져서 이제는 무엇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일이 몰아칠 때 '오늘 밤새워서 하면 되지 뭐. 죽기야 하겠어.' 했었다. 잠 한 번에 피곤을, 아픔을 몰아내던 시절이었다. 언제까지나 건강할 것처럼 지나치게 자신만만해서 신께 벌을 받을 게 아닐까. 이제 새로운 일을 벌이는 것은 무리라고 혼자 다독이고 있었다. 가끔 눈물을 훔치면서.


몽땅 눈썹이 뽑히던 날, 허전해하는 나를 보면서 간호사 언니가 위로했다.

"다시 날 거예요."

이 눈썹은 다시 나면 뽑힐 운명의 눈썹 아닐까.

다시 날 것을 기뻐해야 할까, 슬퍼해야 할까. 서랍 속 마스카라는 누구에게 줘야 하나. 좀 비싼 걸 살 걸 그랬다. 세 개에 2만 원도 안 되는 걸 사서 누구 주기도 애매했다. 주인 잃은 마스카라는 언젠가 소리 없이 버려졌다.

어쩔 수 없는 젊음 동경의 시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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