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바?! 빨래바!
처음 우리 집에 이것이 배달되어 왔을 때 가족들은 예상했다고 했다. 지금의 모습을.
이제 막 고상한 취미생활을 시작하고 처음 한 일이 옷 검색이었다. 발그레한 살구빛 슈즈, 마음까지 야리야리하게 만드는 타이즈, 선을 강조하는 레오타드, 샤랄라 스커트를 샀다. 처음에는 편한 옷 입고 해도 된다고 학원 원장님이 말씀하셨지만 꼭 이 옷을 사는 것이 목표였던 것처럼 머리를 뒤틀어 올리고 다음 시간부터 쫙 빼입고 갔다. "어머! 벌써 사셨어요?" 라며 놀라는 원장님 물음에 살짝 부끄러웠다. '너 아직 동작도 잘 모르잖아. 막 흔들거리잖아.'라고 묻는 것 같았다. 어릴 적 오빠의 옷을 물려 입었던 것이 한이 되었는지 이 옷은 나를 한껏 부풀게 했다. 여자 옷의 끝판왕 같았다. 오빠의 바지에서 발레복까지, 나의 옷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혼자 감격하고 있었다.
얼마나 하늘하늘 예쁜지 옷만 입어도 기분이 좋았다. 집에서 밥 할 때 가끔 입어보기도 하고 슈즈만 신고 거실을 누비기도 했다. 학원에서 거울 속 내 동작을 보는 것은 괴로웠으나 상관없었다. 난 발레 하는 여자니까~~!! 수업이 시작될 때는 먼저 매트에 누워서 몸을 이완시키는 것부터 시작했다. 개구리처럼 누워 팔, 다리를 늘였다. 앉아서는 발끝에 포인 하기도 하고 손으로 허공을 안듯이 앞으로, 옆으로, 사선으로 움직였다. 안 쓰던 근육 하나, 하나를 움직이고 바짝 힘을 줬다. 자세의 흐트러짐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리고 만난 것이 이 물건, 발레바였다.
줄 맞추어 발레바에 한 손을 올리고 따라 하는 동작이 그렇게 멋있을 수 없었다. 에드가 드가의 '발레' 그림 속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그 시절에는 발레리나처럼 절제된 걸음걸이로 걷고 배에 힘을 주었으며 턱을 아래로 당겨 아름답게 다니려고 노력했다. 그래서였을까? 키를 재어보니 2cm나 커 있었다. '이건 또 무슨 보너스래?' 동작을 잘 따라 할 수 없고 균형 못 잡아 우스꽝스러워도 괜찮았다. 급기야 일을 저질러 버렸는데 그 거대한 발레바를 집에 들이고 말았다.
사고의 흐름은 이랬다. '발레는 좋은 운동이다. -> 평생 해도 되겠다. -> 집에서도 연습하면 좋겠다. -> 나이 들어서 걷기 운동에도 도움이 될지 모른다. -> 그럼 평생 사용이 가능하겠네? -> 그럼 사자!' 사실 집에 배달되었을 때 생각보다 커서 나도 움찔 놀라긴 했다. 세 아들과 남편은 발레바를 둘러싸고 마음껏 비웃었다.
"이게 뭐야. 뭐가 이렇게 커. 이걸 어디에다 놔?"
"발레바? 곧 빨래바 되겠는데? 창가 쪽에 놔."
한동안은 아들들이 벽에 바짝 붙이고 올라가 평균대처럼 사용하기도 하고 바벨처럼 들어 올리며 근육 자랑용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언제나 거울 앞을 지켜내려고 했다. 나의 곧은 허리와 흐트러짐 없는 자세를 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창가 쪽은 아니야~!라고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몇 년이 흐른 오늘, 우리 집 창가에는 윗옷 11개, 바지 5개가 발레바 두 번째 봉에서 햇볕 마사지, 바람 샤워 중이고 베란다에는 긴 바지 5개가 걸려 흔들거리고 있다. 세탁실에서는 돌돌돌 소리를 내며 건조기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다. 어제 하루, 단 하루 빨래를 안 했을 뿐인데 오늘 아침 나는 대역죄인이 되었다.
"엄마! 내 옷 어디 있어? 빈트리!"
"뭐? 빈티지? 그게 뭐야? 무슨 색인데?"
"아, 됐어. 옷 찾는데 20분 걸렸다고."
빨래 담당인 남편이 어제 출장을 갔는데 그냥 모른 채 한 것이 화근이었다. 매일 빨래를 해야 한다. 우리 집은. 상하수도 사용료 고지서에는 다자녀 감면에도 다른 집보다 항상 많이 나왔다. 산더미 같은 빨래가 바구니를 넘어 토해져 있었다. 옷, 수건, 운동복, 교복... 세 아들이 만들어내는 빨래는 장난이 아니다. 언젠가 빨래를 개고 있는데 예고도 없이 찾아온 이웃집 언니들이 "너 진짜 애쓴다. 빨래 장난 아니다.'"만 하고 간 적이 있었다. 지금은 집안 업무 변동으로 빨래 담당은 남편 몫이 되었다. 수북이 쌓인 빨래가 아침마다 거실에 나란히 놓여있다. 수많은 빨래를 개다 잠들었을 남편을 생각할 때마다 짠함이 올라온다. 일 다해놓고 파티에 올 테면 오라고 했던 사람이 신데렐라 엄마였나 팥쥐 엄마였나 잘 기억나지 않지만 그 못된 역할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해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많은 빨래를 정리하고 잘 테면 자보라고 하는 것 마냥.
아이들이 하나, 둘 독립해서 빨래도 조금씩, 조금씩 줄어들면 오늘을 추억하며 무슨 이야기를 할까.
내가 다시 발레바에서 레오타드, 스커트, 타이즈, 슈즈를 갖춰 입고 하늘거릴 수 있을까. 미니멀리즘에 꽂혔을 때 당근에 한참 물건을 내다 팔았지만 차마 이것들은 내놓지 못했다. 언젠가는 나도 다시 하늘거리다 날아오르리라. 널려있는 빨래들이 내 앞길을 막을지라도 언젠가는 꼭.